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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Feb 11. 2024

그저 곁에 있어줄 수 있을 뿐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최선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

의학적인 충고에서부터 사랑과 상실에 대한 조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도와줄게, 내 말 들어봐.”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최선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같지만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파머는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고, 들어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치유 자원이 된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나이가 들면서 자꾸 ”조언”을 해주고 싶은 오지랖이 든다. 힘든 사람에게 나도 그랬다며 공감을 표시하고 돌아서서 나오면 ‘정말 내가 100퍼센트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그냥 듣고만 있는 내 자신이 뭔가 무력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해주려다 겪는 실수이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일들이 언뜻 보기보다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속 시원한 해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점점 깨달으면서도 여전히 처방전을 제시하고픈 마음, 이해는 가지만 도움은 되지 않는다.


되돌이켜보면 나 역시 나에게 묻지도 않고 참견과 조언을 쏟아내던 이들의 무례함과 저속함에 치를 떨던 때가 있었다. 취조하듯 질문 몇 개 던지고 내 미래와 인생을 단정 짓던 그들의 말에 조금은 휘둘렸던 나 자신도 왜 그랬나 싶지만 그렇게 일방적인 독백을 해놓고 마치 엄청난 지혜를 나누어준 것처럼 뿌듯해하던 그들의 착각도 안타까운 일이다. 나이가 좀 더 많다고, 소위 ‘경험’이 더 많다고,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남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충고는 요청받았을 때만, 그리고 그럴 때도 항상 먼저 듣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이젠 무슨 말이라도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힘겹게 말을 꺼낸 사람의 입을 닫아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결국 변화는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나와야 하는 법. 나에게도 정작 도움이 된 대화는 조용히 몇십 분을 들어주다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라고 스스로 되짚어 보게 했던 한 마디였다. 내가 스스로에 매몰되지만 않게 잡아주면서 경청하는 태도가 그분을 다시 찾아가게 만들었다. 그저 그 순간 경청하며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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