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기쁨을 위해서 견디고 가는 일
좋아하는 걸 했을 때 너무 행복하고 그걸 갖지 못해서 너무 힘들어하고 노력하고. 그래도 한 번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견디고 가는 일이 내 인생 같다.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
엄정화, <슈퍼마켙 소라>
슈퍼모델 이소라의 유튜브에 오랜 절친 가수/배우 엄정화가 나왔다. 그녀가 서핑을 하며 배운 인생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서핑을 마흔다섯에 처음 배웠다는 사실 자체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지만 나를 더 주목시킨 내용은 그다음에 이어졌다. 바로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마음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너무 마음이 급해서 바로 타잖아? 그럼 다시 넘어져. 그럼 다시 출발 지점까지 밀려가. 그럼 또다시 가야 돼. 다시 또 갔다가 한참 기다려. “이 파도 탈 수 있을까? 이거 못 타겠지? 나 저기까지 또 가기 싫으니까 기다려보자.” 그러면 또 하루의 반나절이 지나간다. 그러다 진짜 좋은 파도가 와서 탔어. 그 파도를 탔던 경험이 너무 행복해서 다시 또… 다시 가. 왔던 길을 또. 좋아하는 걸 했을 때 너무 행복하고 그걸 갖지 못해서 너무 힘들어하고 노력하고. 그래도 한 번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견디고 가는 일이 내 인생 같다.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
한 번의 기쁨을 위해서 견디고 가는 일이 내 인생 같다고 읊조리는 모습에 눈물이 나는 건 우리의 인생사가 그렇게 평범하고 지난한 순간들과 가끔의 환희로 차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무대에 서고 인기도 많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일상도 지루하고 고된 순간들로 메꾸어져 있다는 것이 주는 묘한 위안과 깨달음이 있다. 이런 삶의 속성이 어떻게 보면 삶을 좀 더 울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힘을 내어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만약 같은 서핑을 하며 느낀 점을 그래서 사람은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거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교훈성 멘트로 마무리했다면 그 감동이 조금 덜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한 묘사로 상황을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 준 후 그런 게 인생인 것 같더라는 말로 해석을 각자의 몫으로 맡겨서 인지 더 여운이 짙다. 내 인생의 반나절이 이미 지나가 버린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서 너무나 힘들 때, 이 에피소드는 그래도 언제 또 다른 좋은 파도가 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국 최상의 파도가 오지 않더라도 그 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더 큰 자연의 이치 또한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시간 안에서 때로는 기다리고 때로는 도전하며 가끔 행복을 맛볼 뿐이다.
나도 더 늦기 전에 서핑에 도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