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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r 03. 2024

친절하고 친근해도 해치지 않아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낯선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하지 말라.

그들이 변장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까.


-곽아람, <나의 뉴욕 수업>-


어렸을 때부터 나는 순하게 생겼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좀 선 굵고 센 인상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이런 유해 보이는 겉모습과 소극적인 성향이 합쳐져 내가 종종 쉬운 상대 또는 호구로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의 주 타깃이 되는 것도 싫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랫동안 강아지보다는 도도하고 (싫은 것에 대한) 의사 표현이 분명한 고양이가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도시 생활의 각박함과 함께 나는 점점 낯선 사람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 뉴욕에 대한 책을 읽다가 오히려 파리의 영어책 전문 서점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벽에 적혀 있다는 이 문구가 내게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은 그래서였을까. 내가 그간 많은 천사들을 문전박대한 것은 아닌지 늘 마음 한편에 있던 죄책감도 같이 올라왔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나는 길을 알려줄 여유도 없이 그렇게 허겁지겁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을까. 나는 왜 도움을 주고 싶으면서도 아직도 경계심과 두려움이 그토록 많을까.


아주 오래간만에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구글맵도 없던 시절, 여행 책자의 종이 지도를 찢어서 들고 다니던 나에게 사기나 해코지는커녕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길을 알려주던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했다. 나의 작은 도움이 정말 간절한 사람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면 가끔은 (천사는 커녕) 길 찾기를 가장한 사기일지라도 시도는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쉽게 다가오게 한 나의 다정함이 고마웠다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친근함 또한 축복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를 동경하지만 우리 집 식구가 된 강아지의 그 출구 없는 매력에도 푹 빠졌다. 좋은 것을 좋다고 온몸을 다해 표현하는 이 작은 아이를 보며 상처받을까 봐 애써 감춰온 나의 친근함은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또 다른 강점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 친절해도 괜찮아. 사실은 우리 모두 변장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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