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자유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가끔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울 때가 있었다.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해도 되나.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은 꽤 어렸을 때 시작되어 아직도 해소되지 못했다. 편안하고 안정되어 있는 순간조차 마음 한편이 불안해지는 것은 불만족의 저주와도 같았다. 쉬는 시간에도 불안했기에 외부를 통한 자극을 통해서야 나는 종종 몰두와 자유를 느꼈다. 운동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영화 보는 시간, 무언가 교감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면 끊임없이 잡생각이 파고들었다.
흐르는 시간을 보며 인생이 허망하게 느껴진 적도 많았다. 이렇게 살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슴 시리도록 무기력하게 다가오던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는 문장이 참으로 반가웠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만이 살아 있다는 역설. 살아있음에 집중하지 않고 덧없음에 집중할 때 인생이 더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유한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생명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사라진다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강아지와 산책해 본 사람들은 그 과정이 얼마나 물 흐르듯이 이루어지는지 안다. 이 멋진 생명체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 냄새에 집중하며 온몸을 세상에 맡긴다. 가끔 집중이 흐트러질 때는 너무 좋다고 꼬리 치며 같이 걷던 보호자에게 함박웃음으로 되돌아올 때뿐이다. 딱 이 정도로 삶에 몸을 맡긴 채 가끔씩 주위와 살아있음을 축하하고 즐길 수 있다면.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하며 흐름 따라 마음 놓고 떠내려가는 일이라는 나지막한 읊조림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침의 피아노>는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임종 3일 전인 2018년 8월까지 메모장에 썼던 234편의 단상을 엮은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