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긍정적 존중만이 내면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게끔 한다고.
인간의 가치는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만이 내면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게끔 한다고, 그제야 인간은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고.
-신고은, <하루 심리 공부>-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되뇌면 되뇔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조건적인 사랑, 무한한 긍정, 이를 처음 느꼈을 때의 감동이 따사로운 햇살처럼 나를 감싼다. 영화나 책, 리얼리티쇼에서 “네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해,“ ”네가 어떤 결정을 하던 난 너를 지지할 거야. “라는 말을 들으면 가끔 눈물 나도록 부럽기도 했다. 무뚝뚝한 양육 방식과 줄 세우기식 경쟁 사회로 인해 나는 과보호이면서도 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느꼈다. 나의 결정은 부모님이 정해놓은 영역 안에서만 존중받았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노파심과 불안, 비난(때로는 일종의 저주까지)도 감내해야 했다. 저자도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부모는 아이를 다그치고, 조건에 부합해야 칭찬을 한다. 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자녀를 비난하는 명분이 된다.’고 지적했다. 적당한 훈육과 규율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지만 내가 내 자식을 제일 잘 안다는 생각, 더군다나 성인이 되어서도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내 자식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넘쳐난다면 이제는 거리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를 이해하고 부모 역시 그 상황과 능력 안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것임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를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은 스스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허하지 않아서 무너지고는 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나에게 좋은 말을 해줘도 내가 스스로 아니라고 하는 데는 답이 없다. 저자 역시 반려견의 무조건적 사랑을 예로 들며 (개도 해내는) 이 행위를 우리는 쉽게 해 내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책에 언급된 연구에 의하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는 인생의 자랑거리는 바로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주는 어른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고통과 실패에 맞닥뜨렸을 때 온화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런 성향을 타고나지 않은 나로서는 더 많은 노력과 스스로에 대한 친절이 필요함을 나는 몇 번이고 시련에 고꾸라져 보고야 알았다.
살아가면서 나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매일 느낀다. 원인이 무엇이든 내가 어떤 기질을 타고났든 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존중해 주는 것뿐이다. 책에는 ‘위험하거나 두려운 일의 가능성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와 같은 비합리적 신념,‘ ‘사소한 사건 때문에 인생이 엉망이 될 거라고 과장되게 해석하는 인지적 왜곡인 파국화,’ ‘부정적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 좋은 점을 축소하는 인지적 왜곡‘ 등 많은 이들이 매일 싸워야 할 머릿속 관념들이 나온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정신력에 더욱 의기소침해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고 긍정적인 마음을 먹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그 생각에 더 강력하게 사로잡힌 다면, 생각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두는 대신, 생각하지 않으려는 대상이 마음속에 파고들지 못하게끔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나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과 소확행들을 더 자주 떠올려 보아야겠다. 이 글은 그저 그렇게 느끼는 게 나 혼자가 아님을, 매일 같이 다시 시도하고 버티고 또 떨쳐 내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이 여기도 있음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담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