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병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언어
Depression is a discourse with a language to be learned, rather than strictly a pathology to be treated.
-Julia Kristeva, <Black Sun>-
한 작가가 한국을 여행하고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살펴보았다는 평을 했다길래 찾아보니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신경 끄기의 기술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ck>의 저자 마크 맨슨이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나름 한국이 이것도 극복해 내리라는 희망적 어조로 끝나지만 우울이 팽배한 사회에 살고 있는 일인으로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또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같은 영상에 대한 나종호 교수의 이런 분석도 있다).
우울증이 힘든 것은 우울증에 걸려봤던 사람조차 회복 후에는 공감해 주기 힘든 병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그렇게 힘든지, 왜 의욕이 안 생기는지, 특히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가 생기는 파워 E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세상에 한 번도 우울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마음이 축 쳐지고 무기력하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은 그런 날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단기적인 우울감이 지속되는 것이 우울증이라면 평소에 우울의 언어를 배워 놓는 것이 우울증에 빠지더라도 소통의 끈을 잃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심리상담이나 정신과를 찾는 것이 취업이나 이직에 불이익을 줄까 봐 금기시되고는 했다.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선입견과 색안경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느라 마음을 돌보는 데는 조금 서툴렀던 우리가 이제는 내면을 더욱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언어를 배우듯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와 유교의 최악의 조합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국민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일개 국민인 나로서는 내 마음을 더 잘 돌보고 나 역시 이 이슈에 편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우울은 병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언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