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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y 05. 2024

과정을 즐기고 집중하는 법

영원히 혼자 탈 수 없는 자전거일지라도


죽었다 깨도 저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무수한 수전에게 기대어보렵니다. 영원히 혼자 탈 수 없는 자전거를 수전이 뒤에서 잡아주는 게 좋습니다.

-문보영,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영어는 내가 참 좋아하던 과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항상 좋아하는 과목에 어문계열을 썼던 기억이 난다. 놀면서 배우던 영어학원의 친절한 선생님들, 특히 Josephine 선생님과 훗날 몇 년에 걸쳐 펜팔을 하던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나는 한 때는 내가 적어도 외국인 치고는 영어를 아주 잘하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우물 안 개구리가 진정한 원어민의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놀이로 배우고 쉽게 할 때는 재미있었던 언어가 어느 순간 비교와 완벽주의의 벽을 맞닥뜨리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에겐 모국어가 있으니까라는 생각에 마음 한편에 통역사라는 직업을 품고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순발력이라는 넘지 못할 것 같은 유리천장이 보였고 결국 원하는 마음마저 사그라들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도 언어는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일종의 경지에 도달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도 이를 도구로 하는 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영어 관련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가끔 내 의견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지 못할 때 이게 내 모국어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이런 나의 오랜 고민에 상담을 해주신 분들은 언어가 도구일 뿐임을 강조했다. 틀리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려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내 뜻을 전달하는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사실 개똥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은 많다. 다만 나도 저 사람처럼 유려하게 말하고 싶다는 선망과 그와의 비교에서 벗어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감명 깊은 메시지를 전하는 나만의 롤모델을 설정했다가도 자꾸만 영어를 매끄럽게 말하는 사람에게 눈이 돌아간다.


그런 나에게 죽었다 깨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할 거라는 문보영 작가의 고백은 해방과도 같았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은 때로는 얼마나 멋지고 자유로운지. 그럼에도 작가는 매일 전화 영어를 하며 불면의 새벽을 보낸다. 거의 매일 바뀌어온 전화영어 수화기 너머 상대방을 ‘수전’이라 칭하며 작가는 영원히 혼자 탈 수 없는 자전거를 수전이 뒤에서 잡아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나에게도 역시 수많은 ‘수전’들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감사하다. 나도 언젠가는 유창하지 않아도 이렇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느낌이 좋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한때 내가 잘했던 것처럼 결과가 아닌 과정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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