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불행을 견디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리를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나는 마모된 몽돌이다. 까맣고 동그란 몽돌. 바다는 나를 끌어당겼다가 멀찍이 밀어놓기를 반복한다. 누구에게나 불행을 견디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불행을 참아내고 있다.
-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도발적인 제목 보다도 더 내용이 강렬한 책을 만났다. 열다섯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 시각장애인이 된 그녀의 사연만 듣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책을 펼 수도 있지만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시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산전수던 다 겪은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숙연해지면서도 유머 가득한 글에 경탄이 나온다.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 그리고 때로는 속이 시원해지는 발언들에 더운 여름 맥주 한 캔 들이킨 것 같은 쾌감을 느낀다.
눈이 안 보인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도 탱고와 플라멩코를 배우며 스페인 여행을 꿈꾸고 있는 작가에게도 어두운 날은 있나 보다. 한없이 해맑은 활동지원사의 장애가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눈이 먼 게 불행한 게 아니라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코로나로 겨우 몇 달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답답해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평생을 그리 살기도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그녀.
몸을 말아 앞뒤로 흔들다가 층간소음으로 난 싸움을 들으며 불행을 견디는 작가의 밤. 누구나 크고 작은 힘듦을 안고 산다며 내 아픔 또한 견뎌내고 있는 것임을 자각하고 위로받는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힘차게 살아내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보다 어둡고 힘든 날을 시니컬하게 견뎌낼 때도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 나를 더 기운 나게 한다. 바로 주옥같은 에피소드 하나하나 중에서도 <정지된 도시>에 주목한 이유다. 남다른 정신력을 가진 그녀에게도 삶은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꼿꼿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도 아직도 열었다 피가 철철 흘러서 다시 닫은 상처들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또 다른 터널 속에서 나는 그런 그녀의 솔직 담백한 고백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