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인간의 과업은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
젊은이의 과업, 동경, 책무는 앞으로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것이고, 성숙한 인간의 과업은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어쩌면 괜찮은 나이>-
운명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에 나는 아등바등하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려는 집념이 생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소한 것에 부리는 고집은 더 큰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기도 했다. 인생을 숙제처럼 처리해버리려고 하는 일을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되돌이켜보면 더 이상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긴 했다. 그 뒤에 또다시 생긴 욕심과 갈망은 물론 삶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원하되 실현되지 않아도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집착하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이라고 탄식했던 제갈공명이 떠오른다(만약 허구가 아니라면 과거 동남풍으로 승전했던 기억이 그에게도 떠올랐을까).
결국 내가 조금이라도 통제할 수 있을 부분이 더 많은 것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지일 것이다. 죽음의 순간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때가 찾아왔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 죽음을 대할지는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순간이 닥칠까 봐 불안해하며 평범한 일상마저 망칠 것인가 아니면 그 순간에도 더 의연한 자세를 취할 것인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면 자포자기가 아닌 받아들임을 실천할 수 있기를 꿈꾼다. 나를 내맡기는 것, 안 되는 것은 깨끗이 포기…까지는 안되더라도 체념할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는 삶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