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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즈 Mar 31. 2023

카고바지의 흔한 절교

뻔한 소개팅 이야기 하나.

꽃이피고 새싹이 돋아나니 생각나는

오래전 이즈음 이야기하나.

(뻔한 남녀간의 내용이라 불편하실 수 있으니 원하지 않는 분은 읽지 말아 주세요.

그냥 적어보니..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학교 수업에서 알게된 녀석이었다. 

자주 보진 않았지만 금새 어느정도 곁을 두는 사이가 되었다.


수더분하게 생긴 이친구와 공강시간에 점심을 먹게 되었고

남자들의 단골 주제인 여자친구 얘기가 자연스레 등장.

쓱 보니 휴대폰 메인사진에 있는 여자친구분이 꽤나 미인이셨다.


'오 곰이 구르는 재주가 있네.'


20대에, 다년간의 자취생활로 30대 문턱을 한참 넘긴 것처럼 뵈는 친구다.

단정을 넘어 답답한 스타일에 지극히 평범언저리의 비주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여친님은 꽤나 눈에 도드라지는 발랄한 미인이셨다.


친구 : "만나는 사람없어? 소개해줄까?"

나 : "아 괜찮은 사람있으면... 아무나 해줄필욘 없고..."

친구 : "내 여자친구 친구인데 애 괜찮아~ 너랑 잘어울릴것 같고

        나도 몇번 봤던애야. 한번 만나봐~"



'끼리끼리 놀테니 저녀석 여친이랑 비슷한 스타일이겠네~

흠...

이러면 어쩔수 없잖아. 

직접 봤다니 모 검증된 자리구만, 괜히 다른거 묻지말자. 

나랑 잘어울릴것 같다니 오호.

여자친구 보니 이성관이 나와 다르지는 않는듯 하니까.

그래, 사진보단 마음의 눈으로 찾는거니까.

그래, 이렇게 우연으로 인연을 만드는거니까...'


희망회로의 논리를 따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허락하듯 어색한 승낙을 했다.


...

그리고 몇일 뒤,

상대방 여성의 연락처를 받게 되었고 한두번 메세지를 하면서 자연스레 약속장소를 잡았다.


두둥.

장소는 바로,

열정과 로맨스의 도시 압구정동!

토요일 낮!


첫만남 몇일 전부터 친구의 관리(?)가 들어온다.


괜찮은 애니깐 잘해보라는 둥

매너있게 해야 된다는 둥

나중에 넷이 같이 만나자는 둥

잘되면 다같이 여행을 가자는 둥


기분이 상할만큼 디테일한 지적에

가르치고 보채기 까지.

꽤나 세심한 녀석... 


'그래, 나도 잘되었으면 좋겠다 이녀석아.'


...

그리고 다가온 약속 당일!

또다시 걸려온 친구의 전화.


친구 : 잘 가고 있어? 뭐 입었어?

나 : 어, 그냥 편하고 깔끔하게 입고 가고 있어. 카고바지에 티셔츠 입었어.

친구 : 뭐? 카고바지? 야야~~ 좀 신경쓰지~ 왜그랫어~

나 : 어어... 그래... 머 갈아입을순 없으니 일단 가야지 모... 미안미안. 미안해에~


'그래도 요새 많이 입는 스타일인데...

미안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머 이렇게 까지 신경을 써주다니 원 참

고마운건지... 모르겠네..'


버스안에서의 짧은 통화가 그렇게 지나갔다.


차가 꽤나 막히는 토요일 오후.

우주의 모든 눈들이

이곳을 향하고 있는듯한 에너지를 느끼면서

대낮보다 밝은 불빛이 거리를 비추는듯 하고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별이 내리는듯한 거리속에서

계속 두리번거리며

어색하게 전화를 걸어보는데!


이사람인가?

이사람?

저사람?

...

아무도 대화와 입모양이 맞는 사람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머지...

머지....


두개뿐인 눈으로 

천명을 동시에 살펴본다.


....!!!


그러다 흘러가는 인파의 흐름속 저 너머에

정지화면처럼 보이는 한사람

...

...

아...


나의 카고바지와 티셔츠를 비웃기라도 하는듯

그녀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의 수수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석의 사진속 여자친구와는

결이 전혀 다른 그녀...


서로를 알아보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면서

길을 나란히 걷기 시작하였다.


무서우리만치 당당하게 날 노려보면서 건넨

첫마디는 더 과감했다.


그녀 : 마음에 들어요?

나 : .. 아... 네... 제가 모... 잘 몰라서요...


더이상의 그날은 잊기로 하고


여튼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는

소개팅은 그렇게 중략하고

..

.

그날 밤부터 걸려오는 주선자인 친구녀석의 전화는 한통화도 받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피해서 다녔다.

왠지모를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인연의 어려움을 되뇌이면서.


그래, 삶은 이런 맛이었지.

잊고 있었네... 잠시나마.

꿈을 꾼것으로.


그냥 흔하고 뻔한 소개팅 

이렇게 친구를 만나고 잃는것도 흔하고 뻔한 일

그래도 이렇게 적어보고 나면

나름의 추억이네요.


부디

내 지나간 친구와, 그 여자친구와, 그리고 소개팅의 그녀.

모두모두 좋은 인연 만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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