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17화.

by BlackBearLeo

2025년 9월 초. 서울 변두리의 유하준 오피스텔. 늦은 밤,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눅진한 공기 속에서도 유하준의 방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김도윤은 유하준이 내민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쾨쾨한 공기 속에서도 유하준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밤새 '블랙 스크린' 커뮤니티의 코드를 분석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그의 옆에 앉아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공식적인 수사 보고서와 함께, 자신의 초능력 '잔류 사념'을 통해 얻은 비상식적인 정보들을 교묘하게 섞어 흘렸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감'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사건의 핵심은 이 다크 웹 커뮤니티 '블랙 스크린'과 관련된 모든 서버와 사용자들의 흔적을 찾는 겁니다. 현재 저희가 파악한 것은 이렇습니다…."

김도윤은 준비해 온 자료들을 넘기며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유하준은 그의 설명 속에 뭔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했다. 김도윤의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화면 속 복잡한 코드와 네트워크 구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검사의 시선과는 확연히 달랐다.

"범인들이 피해자들에게 금품을 갈취할 때 사용한 가상화폐는 주로 모네로(Monero)입니다. 하지만 초기 몇 건의 거래에서는 비트코인을 사용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그 비트코인이 모네로로 전환된 시점을 역추적하면, 기존에 파악하지 못했던 다른 서버로 이어지는 단서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유출 흔적일 겁니다."

김도윤은 마치 자신이 그 거래를 직접 본 것처럼 정확하게 말했다. 사이버 수사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아주 미세하고 초기 단계의 정보였다. 그들이 확인한 것은 모네로 사용뿐이었다. 강재혁 팀조차도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정보였다.

유하준은 키보드를 치던 손을 멈추고 김도윤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 순간적인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비트코인이라구요? 저희가 확인한 모든 거래는 모네로였는데요? 초기 거래 기록까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건 거의… 데이터 흔적을 읽어내는 수준의 통찰인데요."

그의 목소리에는 의심과 함께 흥미가 섞여 있었다. 그는 김도윤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의 비범함에 집중했다.

김도윤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었다.

"피해자들의 진술과 몇 가지 정황, 그리고 범인들이 초기에 보인 패턴을 조합해 본 결과입니다. 범인들이 완전한 익명성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반드시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서버의… 특정 폴더, 즉 시스템 깊숙한 곳에 감춰진 더미 파일처럼 보이는 곳에 범인들의 채팅 기록과 협박 영상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겉으로는 삭제된 것처럼 보이지만, 완벽히 지워진 것은 아닐 겁니다. 복구가 가능할 겁니다."

그는 화면에 떠 있는 수많은 폴더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도윤의 눈에는 그 '숨겨진 파일'들이 마치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극심한 수치심과 범인들의 왜곡된 쾌락이라는 잔류 사념으로 인해 감지된 정보였다. 그의 뇌리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유하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김도윤이 가리킨 폴더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폴더는 단순한 시스템 파일처럼 보였고, 어떤 숙련된 해커도 그 안에 중요한 정보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교묘하게 위장된 위치였다.

'이건… 일반적인 수사 방식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인데? 마치 범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아니, 그들이 사용했던 PC나 서버에 남아있는 잔류 사념을 읽어내는 것처럼….'

유하준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는 김도윤이 가진 '특별한 능력'에 대한 소문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확신이 들었다. 그는 김도윤의 말에 따라 그 폴더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도윤의 말대로 삭제된 것처럼 위장된, 하지만 복구가 가능한 파일들이 그곳에 존재했다. 복구 프로그램을 돌리자, 끔찍한 영상과 채팅 기록들이 하나둘 복구되기 시작했다.

"젠장… 정말이네요? 어떻게… 어떻게 이걸 아셨습니까? 이건 그냥 '직감'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요, 검사님?"

유하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그의 시니컬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고, 그의 눈빛은 김도윤을 향한 깊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김도윤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랜 수사 경험에서 우러나온 직감. 그리고 범인들은 항상 자신들만의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패턴을 읽어낸 겁니다. 그 이상은 묻지 마십시오, 유하준 씨."

그는 자신의 초능력 존재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잔류 사념'이라는 비현실적인 능력을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만 야기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자신의 능력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직감'이라는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김도윤의 정보가 **'일반적인 수사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즉시 간파했다. 단순히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마치 디지털 세상의 암호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능력이었다. 그는 김도윤이 가진 비범함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남자… 범상치 않아. 초능력자? 아니, 그보다 더 기묘한 뭔가가 있어. 그는 그냥 검사가 아니야. '비질란테'에 대한 소문이… 설마….'

유하준은 김도윤이 단순히 유능한 검사를 넘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직감했다. 그는 과거 박광수 사건 때도 김도윤의 비상한 직감에 놀랐지만, 이번 '블랙 스크린' 사건에서 드러난 그의 능력은 차원이 달랐다. 마치 데이터의 흐름을 읽고, 삭제된 파일의 위치를 '보는' 듯한 능력이었다. 그는 김도윤이 '비질란테'일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추측에 더욱 강한 확신을 가졌다. 동시에, 김도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지친 기색과 미세한 떨림, 그리고 그의 눈빛 속 깊은 고뇌를 통해 그 능력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하지만 유하준은 김도윤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 그는 침묵하며 복구된 영상과 채팅 기록들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그가 본 것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의 기록들이었다. 피해자들의 얼굴과 그들의 절규, 그리고 범인들의 악마 같은 웃음소리가 그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유하준의 내면에도, 뜨거운 분노의 불꽃이 타올랐다.

유하준은 겉으로는 시니컬하고 냉소적이었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었다. 그 역시 어린 시절 불합리한 일을 겪으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는 화면 속 피해자들의 멍든 얼굴을 보며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런 피해자들을 향한 김도윤의 진심과 범죄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그의 눈빛에서 읽어냈다. 김도윤의 표정에는 피로와 고뇌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피해자들을 향한 깊은 공감과 악을 향한 불타는 증오가 분명히 존재했다.

'이 남자는… 나와는 다르군.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비웃고 시스템을 불신하며 관찰하지만, 이 남자는 직접 뛰어들어 싸우고 있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치… 나처럼 아웃사이더지만, 나보다는 더 뜨거운 불꽃을 품고 있어. 그 불꽃이 그의 몸을 태우고 있지만….'

유하준은 김도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아웃사이더' 기질을 느꼈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김도윤의 모습이,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스스로 고립되었던 유하준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했다. 유하준은 자신의 해킹 실력이 이 거대한 악의 시스템을 부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은밀한 흥분을 느꼈다.

"젠장… 이런 놈들은…."

유하준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시니컬한 얼굴에 처음으로 노골적인 분노가 드러났다. 그는 빠르게 코드를 입력하며 복구된 자료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는 듯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에는 막힘이 없었다.

"이 자료들로 범인들의 초기 IP를 역추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상화폐 흐름을 분석하면, 자금 세탁에 사용된 지갑 주소들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기존의 모네로 추적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부분을 비트코인 거래 내역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겠네요. 물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 며칠 밤은 새야 할 겁니다."

유하준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냉소적인 태도가 사라지고, 강한 의지와 함께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는 이미 이 사건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김도윤이 던져준 '비상식적인 정보'가 그의 천재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유하준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는 유하준이 자신의 능력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묻지 않고 오직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는 모습에서 미묘한 신뢰를 느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정의를 추구하는 두 남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 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스템의 한계에 고뇌하는 검사였고, 다른 한 명은 법을 불신하며 자유롭게 디지털 공간을 유영하는 해커였다. 하지만 그들은 '악을 심판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유하준에게 사건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유하준은 밤낮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다크 웹의 심연을 파고들었다. 라면과 커피, 에너지 드링크로 연명하며 며칠 밤을 새웠다. 그의 방은 더욱 지저분해졌지만, 그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그는 김도윤이 제공한 비상식적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예상치 못한 경로를 통해 범인들의 디지털 흔적을 추적해 나갔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복잡한 암호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갔다.

같은 시각, 강재혁 경감은 김도윤 검사가 이 사건에 비정상적으로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김도윤의 사무실에 찾아갔지만, 김도윤은 이미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그의 책상에는 밤샘 수사의 흔적과 함께, 김도윤이 이 사건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널려 있었다.

'김도윤 검사…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직감'은 어디까지 닿아 있는가. 당신의 그 '직감'이 유하준이라는 인물과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는가.'

강재혁은 자신의 수사망이 점점 김도윤에게로, 그리고 이제는 유하준이라는 새로운 인물에게로 좁혀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초능력'이라는 가설은 이제 단순한 가설이 아니었다. 그는 김도윤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하준은 마침내 범인들의 핵심 서버 중 하나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서버에서 '블랙 스크린' 커뮤니티 운영자들의 실제 IP 주소와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그것은 다크 웹의 깊은 심연 속에 숨겨진, 마치 보물 지도와 같은 정보였다.

"찾았습니다, 검사님! 이 녀석들, 완벽한 줄 알았겠지만… 이런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역시 디지털 세상에 완벽한 익명성이란 없지. 다만 그걸 찾아낼 능력이 없을 뿐이지!"

유하준은 화면을 가리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몰입 끝의 희열과 함께,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해냈다는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김도윤은 유하준이 가리킨 화면을 보았다. 그곳에는 다크 웹의 익명성 뒤에 숨어 있던 범인들의 실제 신원이 드러나 있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잔류 사념으로 감지했던 그들의 악의와 왜곡된 욕망이 이제 현실의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마침내 잡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하지만 동시에, '비질란테'로서의 충동이 그의 내면에서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과연 이들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정의를 구현해야 할까? 법의 한계가 또다시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강재혁의 추격은 점점 더 좁혀지고 있었고, 유하준과의 위험한 동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김도윤은 이제 자신의 능력과 천재 해커의 도움을 받아, 다크 웹의 심연에 숨겨진 악마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고통과 번뇌 속에서, 김도윤은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었다. 그의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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