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중순. 대한민국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블랙 스크린'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주요 범인들이 모두 검거되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잠시나마 사회 전체에 안도감이 돌았다. 언론은 연일 김도윤 검사와 경찰의 쾌거를 칭송했고, 피폐해졌던 피해자 가족들은 희미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도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의 고뇌는 사건 해결의 기쁨마저 삼켜버릴 듯 깊었다.
법정에서 마주한 범인들의 눈빛은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함과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변호사들은 이미 디지털 증거의 위변조 가능성, 시스템의 익명성, 그리고 자신들의 의뢰인이 단순 커뮤니티 회원일 뿐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그들의 전략이 잔인할 정도로 치밀하며, 법의 허점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김 검사님, 검거된 박영철의 변호인이 오늘 접견을 왔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자신들은 단순 커뮤니티 회원일 뿐이며, 영상 제작이나 유포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들은 그저 '관람자'였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다크 웹의 익명성과 불명확성을 악용하는 겁니다."
수사관의 보고는 김도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고, 그는 책상에 놓인 커피잔을 꽉 쥐었다. 그들의 뻔뻔함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김도윤은 검거된 범인들의 압수수색 현장에서 수집된 물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들의 PC, 휴대폰, 외장 하드 등 범죄에 사용되었던 기기들. 그는 그 물건들에 손을 대어 **'잔류 사념'**을 감지했다.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섬뜩하고 끔찍한 감각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극심한 고통과 절규, 그리고 범인들의 왜곡된 쾌락과 오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들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김도윤은 충격적인 암시를 느꼈다.
'이 모든 건 잠깐일 뿐이야. 이까짓 법으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우리의 쾌락은 끝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돌아올 거야. 더 교묘하고, 더 은밀하게. 이 시스템은 영원히 우리 손아귀 안에 있을 거야.'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잔류 사념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암시이자, '재범'에 대한 노골적이고 확신에 찬 선언이었다. 잔류 사념이 과거의 흔적뿐만 아니라, 범인들의 내면에 깊이 각인된 미래의 의지까지, 그들의 변질된 정신 상태까지 보여주는 듯했다. 김도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의 몸은 극심한 두통과 함께 피로감에 휩싸였고, 코에서는 또다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악의가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악마들은… 결코 변하지 않아. 이대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해도,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않을 거야. 감옥에서 몇 년 살다 나오면 또다시 같은 짓을 반복할 거야. 법은 그들의 뿌리 깊은 악의까지 뽑아낼 수는 없어. 피해자들은 또다시 절망해야 할 거야.'
김도윤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법은 죄인을 처벌하지만,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추악한 본질, 재범 의지까지는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단지 증거를 찾는 것을 넘어, 이런 악의의 씨앗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은 그를 더 큰 고뇌에 빠뜨렸다.
'내가…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건가? 법의 한계가 명확하다면, '비질란테'로서 이들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하는 건가? 이들의 악의를 영원히 봉쇄해야 하는 건가?'
김도윤은 또다시 '처단'의 유혹에 빠졌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피로와 함께, 결연하고도 위험한 의지가 스쳤다. 정의를 향한 그의 신념과 법의 한계 사이에서, 그는 끝없는 딜레마에 시달렸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의 손이 다시 피로 물들어야 하는 것인가. 이번에는 단순한 물리적 처벌이 아닌, 그들의 삶 자체를 끝내버리는 파괴적인 처단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내면에서 갈등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김도윤의 사무실은 연일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블랙 스크린' 사건의 잔여 수사와 다음 재판 준비, 그리고 검거된 범인들의 재범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는 잠시도 쉬지 못했다. 유하준은 김도윤과의 약속대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돕기 위해 검찰청 서버에 원격으로 접속해 있었다. 그는 김도윤이 보낸 추가 자료들을 분석하며 범인들의 패턴을 더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이상한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블랙 스크린' 사건이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도윤은 여전히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고, 그의 눈빛은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유하준은 김도윤이 사건 현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진통제를 찾는 모습, 그리고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알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피가 맺힌 코를 보며 확신을 굳혔다.
'이 남자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야.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그리고 그 능력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어. 마치 저주처럼 그를 갉아먹고 있어. 하지만 그는 그 능력을 포기하지 않아. 왜일까?'
유하준은 김도윤의 '비상식적인 직감'이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특정 정보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김도윤이 자신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 비밀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비밀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다. 그는 김도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결국 유하준은 김도윤을 찾아 검찰청에 나타났다. 그의 방문은 김도윤에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김 검사님, 할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시간 되십니까?"
유하준은 늘 그렇듯 시니컬한 표정으로 김도윤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에너지 드링크 캔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김도윤은 고개를 들어 유하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유하준 씨? 아직 '블랙 스크린' 잔여 증거 분석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면…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습니까?"
김도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테이블에 놓인 비어가는 진통제 통과 코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휴지 몇 장을 흘끗 보았다. 그리고 김도윤의 얼굴에 드리워진 짙은 피로와 고뇌를 응시했다. 그는 더 이상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아니요,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문제죠. 저는 당신이 주는 단서가 너무 완벽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검사님, 당신은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 능력으로 이 괴물들을 심판하고 싶은 거겠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당신은 단순히 수사만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진실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정적 속에서 김도윤은 얼어붙었다.
김도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유하준이 자신의 비밀을 알아챘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동시에, 평생을 혼자 감내해야 했던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긍정의 의미였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지만, 그의 폐는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는 듯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의자를 끌어 김도윤의 테이블 앞에 바싹 앉았다. 그의 눈빛에는 이제 이해와 공감이 담겨 있었다.
"저는 사법 시스템을 믿지 않습니다. 법은 너무 느리고, 너무 나약하고, 너무 많은 구멍이 있습니다. 저 '블랙 스크린'의 놈들 보세요. 겨우 몇 년 살다 나오면 또 다시 같은 짓을 할 겁니다. 그들의 눈빛에서 '재범'에 대한 확신이 보입니다. 당신도 느꼈겠죠? 아니, 봤겠죠. 그들의 추악한 영혼을."
유하준의 목소리에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과 함께, 김도윤의 능력을 이미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다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 그는 김도윤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김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유하준의 말이 너무나도 정확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잔류 사념'으로 느꼈던 그들의 '재범'에 대한 확신을, 유하준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자신의 능력이 타인에게도 감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래서 당신은 혼자서 그들을 처단하려는 거겠죠. 법이 할 수 없는 일을 직접 하려는 거겠죠. '비질란테'처럼. 당신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고."
유하준은 김도윤의 별명, '비질란테'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김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불안과 함께 체념이 스쳤다. 이제는 숨길 수도, 부인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아셨습니까? 왜… 왜 모르는 척하지 않으셨습니까?"
김도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무너지는 듯했지만, 동시에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유하준은 시니컬한 미소를 지었다.
"초능력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흘러다닙니다. 당신의 행적과 과거 사건들을 분석해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당신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괴물'이지만, 혼자서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의 능력은 강력하지만, 동시에 당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이 그 증거입니다. 당신은 지금 너무나 지쳐 보입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눈 밑 깊게 드리워진 다크서클과 피로에 찌든 얼굴, 그리고 그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육체적 고통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김도윤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유하준은 팔을 뻗어 김도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컴퓨터를 만지는 것 외에는 무심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손을 잡으면 김도윤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듯한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지 마라.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말하라. 당신의 비밀을 지켜주고, 필요한 디지털 정보를 제공할 것임을 약속한다. 나는 당신이 법의 한계를 넘어 악을 처단하는 것을 돕겠다. 당신이 '비질란테'라면, 나는 당신의 그림자가 되어주겠다. 나 역시 이 썩어빠진 세상에 질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악을 처단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하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보고 있으니."
유하준의 제안은 김도윤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평생을 혼자 싸워왔다. 자신의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였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천재 해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것은 김도윤의 오랜 고독을 깨부수는 듯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김도윤은 유하준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복잡한 감정으로 물들었다. 신뢰와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유하준과의 동맹은 자신의 비밀을 더욱 위험하게 노출시킬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혼자 감당하던 짐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강재혁 경감의 집요한 추격 속에서, 김도윤은 이제 새로운 조력자와 함께 어둠 속에서 더욱 깊이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었다. 그는 결국 유하준의 손을 잡았다. 굳건한 악수가 오갔다.
두 남자의 은밀한 동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법과 기술, 그리고 초능력이라는 상이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이 도시의 숨겨진 악들을 뿌리 뽑는 새로운 '비질란테' 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은 그들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악과 맞설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들의 협력은 강재혁의 추격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