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의 '직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미세한 단서들은 수락산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완벽하게 풀어냈다. 담배꽁초의 DNA와 CCTV 속 남자의 인상착의를 토대로 경찰은 빠르게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박광수, 평범한 외모의 40대 남성이었다. 그는 인근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김도윤이 잔류 사념으로 보았던 '작업복의 숫자 27'까지 일치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 사무실은 일순간 활기가 돌았다. 미제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던 수사팀은 김도윤의 활약에 혀를 내둘렀다.
"김 검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이렇게 완벽하게 용의자를 좁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요."
수사관 한 명이 감탄하며 커피를 건넸다. 그의 목소리에는 존경심이 묻어 있었다.
김도윤은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감정의 큰 동요가 없었지만, 내면에서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잔류 사념'으로 얻은 정보가 결국 빛을 발했다는 안도감과,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고통이 다시 현실로 소환되었다는 고통이 교차했다.
"박광수… 과거 전과는 확인됐습니까?"
김도윤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박광수의 인적 사항이 담긴 파일에 고정되어 있었다.
김영호 형사가 한숨을 쉬며 파일을 내밀었다.
"젠장…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요. 이놈, 과거에도 아동 관련 범죄 전과가 있습니다. 7년 전, 초등학생 성추행 및 상해 혐의로 기소됐었는데…."
김영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결과는요?"
김도윤은 박광수의 사진을 응시했다. 사진 속 남자의 흐릿한 미소가 왠지 모르게 비틀려 보였다.
"심신미약을 주장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그 후로는 조용히 살았던 모양인데… 결국 이딴 짓을 또 벌인 겁니다."
김영호는 이를 갈았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간 범죄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김도윤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심신미약'. 법이 가진 가장 끔찍한 면죄부 중 하나였다. 아이들의 고통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박광수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잔류 사념을 통해 느꼈던 그 광기, 비웃음 섞인 잔혹성이 그의 모든 감각을 다시 자극하는 듯했다.
“박광수, 체포 영장 발부됐습니다. 지금 당장 집행하겠습니다!”
다른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광수와의 첫 대면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서 취조실. 눅눅한 공기와 탁한 형광등 불빛 아래, 박광수가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40대 남성.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김도윤이 잔류 사념으로 느꼈던 그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박광수 씨, 당신을 수락산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김영호 형사가 박광수에게 고했다. 박광수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 시간에 일하고 있었습니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박광수는 팔짱을 끼며 비웃듯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섬뜩했다.
김도윤은 박광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잔류 사념으로 보았던 모든 단서들을 떠올렸다. 박광수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다. 알리바이, 증거 인멸,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정신 상태까지 조작해 놓았을 터였다.
"박광수 씨, 사건 현장에서 당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 스모크' 담배꽁초가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인근 CCTV에 당신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왼손 약지에 끼인 반지도 확인했죠."
김도윤은 침착하게 증거들을 제시했다.
박광수는 김도윤의 말을 끊고 코웃음을 쳤다.
“담배꽁초요?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CCTV 영상은 흐릿해서 저라고 단정할 수 없잖습니까. 길거리에 저와 비슷한 사람이 한두 명입니까? 반지는 흔한 겁니다. 게다가 저는 왼손잡이가 아닌데요.”
그는 능글맞게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표정은 한 치의 죄책감도 없이 뻔뻔했다. 김도윤은 그의 오른손을 보는 순간, 잔류 사념에서 보았던 왼손잡이의 잔상이 강렬하게 그의 뇌리를 스쳤다. 박광수는 분명 왼손잡이였다. 그는 능숙하게 오른손을 사용하는 척 연기하고 있었다.
김도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박광수의 눈빛, 그 미세한 떨림 속에서 그는 **잔류 사념에서 느꼈던 것과 동일한 '비웃음 섞인 광기'**를 다시 느꼈다. 그 광기는 단순히 잔혹한 범죄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법과 사회를 철저히 조롱하고, 자신의 지능적인 수법에 자만하는 오만함이 뒤섞인 광기였다.
“우리는 당신이 사건 현장에서 약품을 사용해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까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작업복 등판에 새겨진 숫자도 확인했죠.”
김도윤은 목소리를 낮추며 박광수를 압박했다.
하지만 박광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약품이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작업복이야 회사에서 지급하는 것이고, 숫자는 제 배정 번호입니다. 그게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라도 됩니까? 저는 그 시간 내내 다른 건설 현장에서 철야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증언도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조작된 알리바이와 증거 불충분을 주장하며 김도윤과 김영호 형사를 비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봐요, 검사 양반. 당신, 혹시 저한테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거 아닙니까? 제가 과거에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또 다시 이런 누명을 씌우려 하다니… 저는 그동안 정말 반성하며 살았습니다. 저를 이렇게 괴롭히면… 저는 또 심신미약을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신미약'이라는 단어가 김도윤의 뇌리에 박혔다. 박광수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는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7년 전, 이 괴물은 이미 한 번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금, 그는 또 다시 그 수법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김도윤의 주먹이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
며칠 뒤, 박광수의 구속영장 심사가 열리는 법정. 취조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숙하고 차가운 공기가 법정을 가득 채웠다. 방청석은 기자들과 피해 아동 가족들로 가득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피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아버지의 어깨는 슬픔으로 무너져 있었다.
김도윤은 박광수의 구속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가 제출한 증거들은 직접적인 살해 증거는 아니었지만, 정황상 박광수가 범인임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었다. 김도윤은 박광수의 과거 전과와 그가 가진 잔혹성을 강조하며 재범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때보다 강한 확신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박광수의 변호사는 노련했다. 그는 김도윤이 제시한 증거들이 '간접적인 증거'에 불과하며, '확실한 물증'이 없음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들은 모두 정황 증거일 뿐입니다. 담배꽁초는 현장에 무수히 많았을 수 있고, CCTV 영상은 흐릿하여 피고인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작업복 번호 역시 피고인 외에도 수많은 인부들이 사용하는 흔한 번호입니다. 피고인은 알리바이가 명확하며, 이 모든 것은 검찰의 억측에 불과합니다!"
변호사는 박광수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음을 역설하며 재판부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박광수가 직접 발언할 차례가 되자,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재판장님… 저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제가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정말 깊이 반성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또다시… 이런 끔찍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다니… 저는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잠겨 있었고, 얼굴은 죄책감과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완벽한 연기였다. 그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자신을 변호했다. 그의 눈빛은 다시 한번 김도윤을 향해 비웃음 섞인 광기를 드러냈다. '봐라. 너희의 법은 나를 잡을 수 없어.' 그 무언의 메시지가 김도윤의 정신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방청석에서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거짓말! 저놈은 괴물이야! 우리 아이를 죽인 괴물이라고! 법이 저런 악마를 왜 풀어주는 거야! 왜!"
그녀의 절규는 법정의 엄숙한 침묵을 갈랐다. 아버지 역시 주먹으로 방청석 의자를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그들의 절규는 김도윤의 뇌리를 강타했다. 아이의 잔류 사념, 그 끔찍한 고통과 슬픔이 다시 그의 정신을 잠식하는 듯했다.
김도윤의 내면은 분노로 들끓었다. 그는 박광수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또 다시 사회로 돌아올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가 풀려나는 순간, 또 다른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잔인한 예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법은, 이 괴물을 심판할 수 없었다. 이 사법 시스템의 한계 앞에서, 김도윤은 자신이 가진 '잔류 사념'이라는 비정상적인 힘에 대한 고뇌에 빠졌다.
그는 박광수의 번뜩이는 눈빛을 응시했다. 박광수의 얼굴 위로, 숲에서 보았던 어린아이의 피 묻은 얼굴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자신의 능력이 발현되던 순간의 끔찍한 광경이 떠올랐다.
이대로는 안 돼.
김도윤의 내면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이 괴물은 법으로 심판할 수 없다면, 다른 방식의 심판이 필요했다.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굳게 쥐어졌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냉철한 검사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타오르는 분노와 함께, 알 수 없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법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법정에서, 김도윤은 자신만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