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김도윤에게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이성을 산산조각 내는 분노이자, 자신을 갉아먹는 고통의 시작이었다. 박광수는 완벽하게 법망을 비웃으며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가며 김도윤은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와 방청석에서 터져 나오는 피해자 가족의 울부짖음을 뒤로했다.
"저런 악마가 어떻게… 어떻게 풀려날 수 있어요!"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법원의 차가운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박광수는 법원 문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김도윤의 시선과 마주친 순간,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봤지? 너희의 법은 날 잡을 수 없어." 그 무언의 조롱이 김도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김도윤은 그의 표정에서 다시 한번 잔류 사념으로 느꼈던 비웃음 섞인 광기를 읽었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이 발작하듯 욱신거렸다.
검찰청 사무실. 밤늦도록 김도윤은 홀로 남아 있었다.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고,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책상 위에는 박광수 사건의 서류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모든 증거는 그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법은 그를 무죄로 풀어줬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응시했다. 극심한 두통이 그의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욱신거리는 통증은 '잔류 사념'이 활성화될 때마다 더욱 강렬하게 그를 괴롭혔다.
"흐읍… 윽… 젠장…!"
그의 시야가 다시 일그러졌다. 사무실의 차가운 벽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숲에서 보았던 어린아이의 피 묻은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의 비명이 귓가에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하나의 비명이 아니었다. 첫 번째 피해 아동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흐느낌이 겹쳐졌다. 아이들의 극심한 공포와 고통, 그리고 박광수의 끔찍한 웃음소리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그의 정신을 덮쳤다.
쿵… 쿵…!
심장이 발작하듯 격렬하게 뛰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발이 저려왔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팔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마치 이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밖으로 밀어내려는 듯했다. 하지만 사념은 끈질기게 그의 뇌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이 괴물은… 또다시…."
김도윤의 내면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그의 모든 감각과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절규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검사였다. 법과 원칙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였다. 하지만 법은, 이 잔혹한 괴물을 심판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아이들의 고통이 헛되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비명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대가로 얻은 진실이었다. 이 고통을 겪고도, 그를 풀어줄 수는 없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윈 손으로 꽉 쥐어진 주먹에는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냉철한 검사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혼란과 고통, 그리고 불타는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법의 한계가 그를 자신만의 심판으로 내몰았다. 그의 검사 신분은, 그저 이 괴물을 찾아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김도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복도는 이미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의 구두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울렸다. 그는 검찰청 로비를 지나쳐 어둠이 깔린 거리로 나섰다. 싸늘한 밤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지만, 그의 내면은 뜨거운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차량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 주차된 차는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검은 야수 같았다. 차에 시동을 걸기 전, 그는 룸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낯설었다. 깊게 패인 눈 밑 그림자, 핏기 없는 입술, 그리고… 섬뜩할 정도로 차갑게 변해버린 눈빛. 그것은 더 이상 '정의'를 외치던 신참 검사의 눈빛이 아니었다. 어딘가 깊은 심연이 깃든 듯한, 그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눈빛이었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법이… 법이 하지 못한다면…."
그의 목소리가 룸미러를 향해 낮게 울렸다. 맹세하는 듯, 혹은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것은 비극적인 결의로 가득 찬 미소였다.
"내가… 내가 이 더러운 손으로 직접 심판하겠다. 이 비명들을 끝내주겠다."
피해 아동의 고통이 그의 영혼에 각인된 이상, 그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이성이 아닌, 본능적인 복수심과 억눌린 정의감이 그를 지배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더 이상 법의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괴물이 되는 길, 혹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그림자 속으로 숨어드는 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았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괴물을 멈춰 세워야 했다. 거울 속 자신의 변해가는 눈빛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그는 액셀을 밟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차는 밤의 그림자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박광수의 주거지는 서울 외곽의 오래된 연립주택 단지였다. 김도윤은 차를 멀찍이 세워두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박광수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주변은 고요했고, 집집마다 불은 꺼져 있었다. 박광수의 집 창문에도 희미한 불빛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뻔뻔한 괴물은 태평하게 잠을 자거나, 혹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을 터였다.
김도윤은 박광수의 현관문 앞에 섰다. 낡고 삐걱거리는 나무 문은 불길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차가운 금속 손잡이에 손을 대자, 희미하지만 강렬한 잔류 사념이 그의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비웃음… 조롱… 만족감… 그리고… 기쁨?
역겨운 쾌락의 감정이 그의 정신을 오염시켰다. 박광수는 자신이 법을 완벽하게 농락했다고 생각하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야가 다시 핏빛으로 물들었다. 박광수가 아이들을 유린하는 잔혹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숲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더욱 끔찍한 이미지들이 그의 뇌를 마구잡이로 유린했다. 아이들의 절규, 그리고 박광수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의 악취미적인 행동들, 아이들의 작은 유품들을 기념품처럼 보관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이 잔인할 만큼 선명했다.
그리고… '진짜 증거'. 사념은 그가 숨겨둔 결정적인 증거의 위치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파노라마 영상처럼 그의 머릿속에 기지의 설계도가 그려지는 듯했다.
낡은 서재의 벽 뒤편… 숨겨진 공간… 아이들의 머리핀… 작은 인형의 팔 조각… 피 묻은 장갑….
그리고… 부엌 찬장 안쪽, 오래된 조미료 통 뒤… 범행에 사용했던 칼… 희미하게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김도윤은 구토가 치밀었지만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증거 인멸에 사용했던 약품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숨겨진 진실이었다. 박광수는 법망을 완벽하게 조작하고 빠져나갈 계획이었지만, 그의 죄악은 이 '잔류 사념'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완벽하게 발가벗겨졌다. 그의 추악한 내면이 김도윤의 정신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김도윤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작은 도구들을 꺼냈다. 검은색의 얇고 정교한 도구들이었다. 검사 시절 범죄 현장 분석을 통해 익힌 기본적인 도구들을 능숙하게 다뤘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잠금장치가 열렸다. 그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박광수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집 안은 희미한 악취와 함께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공기 중에는 눅눅한 습기와 알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거실을 지나 서재로 향했다. 사념이 이끄는 대로 낡은 책꽂이를 밀어내자, 뒤편에 희미한 틈새가 보였다. 손을 집어넣자 차가운 금속이 느껴졌다. 작은 금고였다. 김도윤은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아이들의 머리핀, 작은 인형 조각, 그리고 피 묻은 장갑이 있었다. 피는 이미 말라붙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작은 유품들이, 아이들의 마지막 고통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그리고 부엌 찬장. 낡고 오래된 조미료 통 뒤편에 숨겨진 칼을 찾아냈다. 날카로운 칼날에는 희미한 혈흔이 남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도구였다. 박광수는 이 모든 것을 숨겨둔 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뻔뻔하게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김도윤의 눈빛은 살의로 번뜩였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박광수의 집 창문으로 새어 나오던 희미한 불빛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안에서는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듯했다. 가끔은 짧은 비명 같은 소리도 들리는 듯했지만, 폭염에 지쳐 일찍 잠든 주변 이웃들은 그저 '옆집 사람이 늦게까지 뭘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을 뿐, 그 안에서 어떤 끔찍한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새벽녘, 박광수의 집 불은 마침내 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집 안을 감싸고 있던 불길한 기운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김도윤은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조용히 박광수의 집을 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더 이상 주저함은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서려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다시 한번 붉은 피가 흘러내려 턱선을 타고 검은 셔츠 옷깃에 붉은 얼룩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죽은 듯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영혼의 일부가 파괴된 듯한 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 쨍한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박광수의 집으로 출동했다. 며칠째 박광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웃의 증언 때문이었다. 집 안으로 진입한 경찰은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했다. 집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박광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혹은, 사고로 위장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혹은 영원히 미궁 속에 남을 실종자로 기록될 터였다. 현장에는 박광수의 혈흔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김도윤의 코피 흔적이나 기타 특이한 흔적 또한 완벽하게 사라진 후였다.
경찰은 미제 사건이 해결된 것에 안도했지만, 동시에 박광수의 '의문의 실종'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증거가 사라진 현장은 오히려 불길한 의문을 남겼다. 경찰 내부에서는 쉬쉬했지만, 박광수가 며칠 전 풀려났던 '살인 용의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 기묘한 실종에 대한 불길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언론은 연일 **'정의의 심판자'**라는 미명 아래 의문의 처단이 시작되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대중은 법망을 비웃는 악인들을 처단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비질란테'**의 등장을 알리며 열광했다. 그들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림자 영웅에게 환호했다.
하지만 김도윤은 사무실에 앉아 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첫 처단의 성공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밀려오는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죄책감, 그리고 초능력의 부작용(악몽, 불면증, 극심한 두통)이 그를 덮쳤다. 그의 손은 피로 물들어 있지 않았지만, 씻을 수 없는 더러움이 묻어있는 듯 느껴졌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고뇌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검사가 아니었다. 밤의 그림자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정의를 집행하는 **'비질란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선 아이들의 비명이, 그리고 박광수의 광기가 섞여 끊임없이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