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31화

by BlackBearLeo


축축한 땀이 시트를 축축하게 적셨다. 김도윤은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며 침대 위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눈꺼풀 안쪽으로 섬광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려 퍼졌고, 피와 내장이 뒤섞인 역겨운 냄새가 코를 마비시켰다. 싸늘한 금속성의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최면술사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그의 뇌수를 파고들었다.

“제발… 멈춰….”

김도윤의 입에서 핏기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은 불덩이 같았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듯 뒤틀렸고, 뼛속 깊이 파고드는 통증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머릿속은 깨질 듯 아팠다. 마치 내부에 있는 모든 장기가 제자리를 벗어나 뒤엉키는 기분이었다. 그의 시야는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기괴한 형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잔류 사념의 역류는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 속의 고통과 감정을 몇 배로 증폭시켜 그의 신경망을 불태우는 듯했다.

“형! 정신 차려봐요, 형!”

어렴풋이 익숙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유하준이었다. 녀석은 김도윤의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놓으며 연신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물수건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이 잠시나마 불타는 열기를 진정시켜주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뜨거운 열기가 치고 올라왔다. 김도윤은 마치 거대한 용광로 속에 던져진 듯했다.

이곳은 유하준의 은신처였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동시에 약품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주변에는 노트북과 각종 전자기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간이 침대가 놓여 있었다. 낡고 허름했지만, 김도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김도윤은 이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을 테고, 온 세상에 그의 초능력이 폭로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검은 조직'에게 붙잡혀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상태를 주시하며 옆에 놓인 체온계와 혈압계를 확인했다.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깊은 걱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 밤낮을 새며 김도윤을 간호했을 터였다. 녀석은 이마의 물수건을 다시 적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짧은 순간에도 김도윤은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김도윤의 의식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각과 싸웠다. 최면술사의 잔류 사념이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그 남자의 뒤틀린 욕망과 희생자들의 절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처단하던 자신의 잔혹한 기억들이 뒤섞여 김도윤의 정신을 잠식하려 들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이 고통은… 끝나지 않아.’

‘네놈도 결국 우리와 같은 괴물이 될 거다.’

‘네 손에 묻은 피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아.’

환각 속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했다. 김도윤이 단죄했던 범죄자들의 얼굴, 그리고 그들 때문에 희생된 피해자들의 절규가 엉겨 붙어 거대한 형상을 이루고 그를 덮쳐왔다. 그는 마치 거대한 블랙홀이 자신의 모든 정신을 빨아들이려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내가… 내가 악몽이 될 수도 있어….'

그 공포가 가장 컸다. 정의를 위해 사용했던 능력이 이제는 자신을 옥죄는 족쇄가 되어 돌아왔다. 잔류 사념. 그것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주었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게 했다. 매번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그의 정신은 조각조각 부서지는 듯했다. 이제는 처단할 대상을 찾기 전에 자신이 먼저 파멸할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곧 이 잔류 사념의 바다에 가라앉아, 자신이 처단했던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미 그의 손은 수많은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는 과연 깨끗할 수 있을까?

"형!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봐요!"

유하준이 다시 다가와 그의 뺨을 약하게 두드렸다. 녀석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의 귓가를 강타했다. 김도윤은 겨우 실낱같은 의식을 붙잡고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유하준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들어왔다. 녀석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하준…아….”

겨우 한마디를 뱉어내자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의식은 또다시 잔류 사념의 혼란 속으로 가라앉았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의 작은 손이 김도윤의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듯했다. 녀석의 체온과, 자신을 걱정하는 진심 어린 온기가 어둠 속에서 김도윤을 붙잡는 유일한 끈이었다. 유하준의 손을 잡은 채, 김도윤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꼬박 사흘이 흘렀다. 김도윤의 고열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었다. 유하준은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구한 의학 논문들을 뒤지고, 해킹으로 몰래 빼돌린 약품들을 김도윤에게 투여하며 필사적으로 그를 살리려 애썼다. 작은 몸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김도윤의 곁을 지키는 유하준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였다.

"형… 제발…."

유하준은 김도윤의 손을 잡은 채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이 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도윤이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자,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이 되어준 존재였다. 그런 형이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유하준은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유하준의 눈에 김도윤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들어왔다. 은색으로 된 단순한 펜던트였지만, 김도윤은 항상 그것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유하준은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잡았다. 펜던트가 열리자 그 안에는 낡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앳된 모습의 김도윤과 그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다정한 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유하준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김도윤의 과거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형은… 이 모든 걸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였어.'

유하준은 사진을 다시 목걸이 안에 넣고, 김도윤의 목에 조심스럽게 걸어주었다. 그리고는 김도윤의 이마를 감싸쥐었다. 그의 마른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하준은 컴퓨터로 돌아가 새로운 정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김도윤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방법, 잔류 사념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 심지어는 초능력의 근원에 대한 온갖 음모론과 연구 자료들까지. 그는 어떤 작은 실마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보를 파고들었다.

김도윤은 꿈을 꾸었다. 아니, 악몽이었다.

무한히 펼쳐진 어둠 속에서 수많은 손들이 그를 향해 뻗어 왔다. 손가락 끝은 시커먼 피로 물들어 있었고, 손톱은 길고 날카로웠다. 그 손들은 그를 붙잡고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넌 우리의 죄를 심판했지. 이제 네 죄를 심판받을 시간이다.”

“네가 정의라고 착각한 살인!”

“우린 너의 정신을 갉아먹을 거야. 조금씩, 천천히.”

그때였다. 눈앞에 최면술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지만, 기괴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

“어리석은 정의로운 자여. 넌 이제 나와 같다. 고통 속에서 영원히 허우적거릴 존재.”

최면술사의 손이 김도윤의 심장을 향해 뻗어 왔다. 김도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그의 가슴을 꿰뚫고 심장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통증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작고 따뜻한 손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유하준의 손이었다. 그리고 그 손길과 함께 멀리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점차 강해져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형… 버텨요….’

‘혼자가 아니에요.’

유하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김도윤은 그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그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웃던 자신의 모습. 잔디밭을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평화로운 풍경. 그 기억은 잔류 사념의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크흑…!”

김도윤은 몸을 일으키며 거친 기침을 쏟아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극심한 두통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환각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익숙한 지하 은신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든 유하준의 모습. 녀석은 김도윤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지만, 깊은 잠에 빠져든 듯 보였다.

김도윤은 겨우 팔을 들어 유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이 느껴졌다. 녀석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 애썼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죄책감과 동시에 깊은 감사함이 밀려왔다.

자신은 악몽에 잠식될 뻔했지만, 유하준의 존재가 자신을 붙잡아 주었다. 잔류 사념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김도윤은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작은 간이 주방으로 향했다. 목이 탔다. 물을 찾아 컵에 따르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초췌하고, 수척해진 얼굴. 깊게 패인 눈 밑 다크서클. 하지만 그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절망과 공포 대신, 희미하게나마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는 여전히 고통받을 것이고,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혼자 싸우지 않을 것이다.

차가운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했다. 김도윤은 유하준이 잠든 침대 옆으로 돌아와 앉았다. 녀석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옆에 놓인 담요를 덮어주었다. 유하준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김도윤은 자신에게 남은 능력을 다시 한번 시험해 보았다. 손을 뻗어 주변의 물건들을 응시했다. 과거의 잔류 사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어떤 텅 빈 느낌. 마치 한계에 다다른 배터리처럼, 그의 능력이 완전히 고갈되거나 심각하게 손상된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미세한 흐름이 그의 몸속을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희미하고 불확실했지만, 그것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비질란테로 활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고, 그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정의를 향한 그의 갈망은 여전히 그의 심장 속에서 뜨겁게 뛰고 있었다.

유하준의 노트북 화면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화면에는 해킹 프로그램들이 띄워져 있었다. 유하준이 자신을 위해 밤샘 작업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도윤은 노트북 옆에 놓인 작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유하준이 적어놓은 글이었다.

‘형, 최면술사가 언급한 ‘검은 조직’에 대해 알아보고 있어요. 아직 정보가 부족하지만, 뭔가 거대한 조직인 것 같아요. 그리고… 형의 능력에 대한 논문도 찾아보고 있어요. 혹시 능력을 제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요.’

김도윤의 눈이 메모지 위에 멈췄다. '검은 조직'.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비밀. 그는 깨달았다. 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능력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고통과 희생은 더 큰 진실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김도윤은 조용히 유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준 이 작은 동생을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이 모든 것의 끝을 봐야 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진정한 정의를 찾고, 이 모든 고통의 의미를 찾아내야만 했다.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김도윤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피폐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한 뼘 더 성장한 듯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비질란테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할 기로에 서 있었다. 그의 회복은 단순한 육체적 치유가 아닌, 그의 정체성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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