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준이 죽었습니다.”
강재혁은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 가득 구치소 독방의 모습과 함께, 그 안에서 발견된 차민준의 시신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목에 선명하게 남은 자국은 질식사를 암시했지만, 현장에는 그 어떤 침입의 흔적도, 외부인의 개입을 의심할 만한 단서도 없었다. 독방 문은 굳건히 잠겨 있었고, 낡은 창살 밖으로는 철조망과 높은 담벼락만이 보일 뿐이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구치소 내부에서의 의문사. 경찰 상부는 서둘러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 했지만, 강재혁의 날카로운 직감은 끈질기게 다른 가능성을 외치고 있었다.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불길한 전율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이 모든 사건을 조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살로 결론 났습니다만, 납득이 안 갑니다.”
옆에서 보고하던 팀원 박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불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강재혁은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은 모니터 속 차민준의 시신을 넘어,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존재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자살이 아니었다. 차민준의 죽음은 그동안 경찰 조직을 뒤흔들었던 그림자, ‘비질란테’의 소행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전율과 함께 찾아왔다. 녀석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욱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법의 심장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구치소까지 파고들어 왔다. 이는 단순한 도발을 넘어선, 경찰 조직 전체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전담팀 꾸려. 당장.”
강재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강철 같았다. 팀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비질란테는 이미 반년 가까이 도시를 활보하며 수많은 범죄자들을 단죄해왔다. 그때마다 여론은 들끓었고, 경찰은 무능하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는 전담팀까지 꾸려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는 도시의 신화가 되었고, 동시에 경찰의 수치였다.
“구치소 CCTV 전부 가져와. 한 프레임도 놓치지 말고 분석해. 차민준 독방 주변은 물론이고, 모든 수감자 동선, 교도관 근무 기록, 식사 배급 시간, 심지어 환기 시스템의 미세한 변화까지 전부 다 확인해. 공기 흐름에 이상은 없었는지, 외부 소음은 없었는지, 전력 사용량에 급격한 변화는 없었는지까지. 그리고 사건 당일 구치소 주변 모든 CCTV, 블랙박스 영상까지 확보해. 24시간 감시 체계에 들어간다. 어떤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마. 필요하다면 구치소 직원들의 통화 기록까지 뒤져.”
강재혁의 지시는 세밀하고 날카로웠다. 그는 비질란테가 평범한 범죄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강재혁은 평생 범죄자를 쫓아온 베테랑이었다. 완벽한 범죄란 없었다. 아무리 교묘하게 숨으려 해도, 반드시 미묘한 단서, 실낱같은 연결고리가 있을 터였다. 그는 김도윤의 움직임과 연결될 만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망을 좁혀갔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수십 개의 경우의 수와 잠재적인 침입 경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속보입니다! 법의 심장부까지 뚫린 치안! 비질란테, 그는 영웅인가, 괴물인가?!”
“법 위에 군림하는 자, 이대로 지켜볼 것인가? 시민들의 불안감 고조!”
“정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폭력, 과연 용납될 수 있는가? 경찰은 대체 무엇을 하는가!”
TV 뉴스는 온통 비질란테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차민준의 죽음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시민들은 격렬하게 논쟁했다. 어떤 이들은 비질란테를 '법이 외면한 정의를 실현하는 국민 영웅'이라 칭송하며 열광했다. 그들은 범죄자들이 법망을 피해가는 현실에 지쳐 있었고, 비질란테의 등장은 그들에게 일종의 대리 만족을 주었다. "경찰이 못 하면 누군가는 해야지!",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해줬잖아!"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질란테를 지지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그의 행적을 미화하는 팬아트나 웹소설, 심지어는 '비질란테 챌린지' 같은 기이한 현상까지 등장하며 사회적 파급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를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위험한 무법자'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다!", "누가 그에게 심판할 권리를 주었는가!", "자유롭고 안전한 사회는 법과 질서 위에서만 가능하다!"라고 외치며 법과 질서의 수호를 주장했다. 특히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비질란테의 존재 자체가 민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법무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비질란테를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중범죄자'로 규정하고, 경찰에게 신속한 검거를 촉구했다. 언론은 이런 양극단의 여론을 자극하며 시청률과 조회수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되었다. 매일 아침 신문 1면은 비질란테 관련 기사로 채워졌고,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시민들이 비질란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풍경이 흔해졌다. 도시 전체가 비질란테라는 이름 아래 들썩이고 있었다.
경찰청 내부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상부의 압박은 극에 달했다. 경찰청장은 매일 아침 회의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 비질란테 검거를 최우선 과제로 지시했고, 언론 브리핑에서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비질란테 검거에 모든 수사력을 집중하겠다는 발표를 연일 내놓았다. 강재혁 팀은 비질란테 전담팀으로 재편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민들의 분노와 불신이 극에 달하면, 경찰 조직 전체가 와해될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일부 간부들은 강재혁에게 '정면 돌파'가 아닌 '여론 잠재우기'에 집중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재혁은 그런 얄팍한 술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진실을 파헤치고 비질란테를 잡는 것에만 몰두했다.
강재혁의 팀은 며칠 밤낮으로 구치소 내부 CCTV를 분석했다. 고해상도 영상 속에서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특별한 침입 흔적은 없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흔적도, 내부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이도 없었다. 마치 차민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재혁의 직감은 끈질기게 다른 가능성을 외치고 있었다.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비질란테는 분명히 이 사건에 개입했다. 어떻게든.
커다란 스크린에 구치소 전체 도면과 CCTV 영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팀원들의 눈은 이미 충혈되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커피 잔과 에너지 드링크 캔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김형사는 연신 눈을 비비며 컴퓨터 화면에 얼굴을 바싹 붙였다. 박형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지쳐 있었지만, 강재혁의 불타는 눈빛은 그들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그때였다.
“경감님, 여기 뭔가 이상합니다.”
피로에 절어 있던 팀원 김형사가 화면을 확대하며 강재혁을 불렀다. 김형사가 지목한 곳은 차민준의 독방 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 옆, 복도 벽에 설치된 소화전이었다. 독방 문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고, 자물쇠도 그대로였다.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다.
“사건 발생 1분 전, 소화전 덮개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흔들렸습니다. 마치 내부에서 순간적인 충격이 있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0.5초 뒤, 구치소 내부의 모든 전자기기가 순간적으로 오작동했습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전원 공급 기록과 CCTV 녹화 기록에 오류가 발생했어요. 보십시오, 이 부분에서 화면이 찰나의 정지 현상을 보였고, 전력 시스템의 미세한 스파크도 감지되었습니다. 너무 순식간이라 일반인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김형사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밤샘 작업 끝에 찾아낸 결정적인 단서를 내밀었다. 강재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주 미세한, 거의 놓칠 뻔한 단서였다. 전자기기 오작동. 이것은 비질란테가 능력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흡사했다. 그동안 비질란테가 나타났던 범죄 현장에서도 비슷한 전자기파 교란 현상이 보고된 바 있었다. 직접적인 물리적 침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건에 개입했다는 강력한 증거일 수 있었다.
“좋아, 소화전 내부를 확인해 봐. 덮개 안쪽에라도 뭔가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몰라. 작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좋아. 그리고 그 전자기기 오작동 범위, 구치소 전체의 전력망을 다시 한번 점검해. 혹시 외부에서 침투한 전자기파가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 유동 전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파악해. 그리고 주변 지역 변전소의 전력 공급 기록까지 확인해서 일치하는 패턴이 있는지 찾아봐. 혹시 통신망에도 이상은 없었는지 확인해. 녀석은 해킹 능력도 뛰어난 걸로 알고 있으니.”
강재혁은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비질란테는 대체 어떻게 차민준의 독방에 접근했을까? 아니, 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이제 비질란테가 단순히 무술이나 해킹 능력을 뛰어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현상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초능력자라니. 비현실적이지만, 그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의 존재는 기존의 상식과 과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영역에 있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비질란테를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일부 언론은 강재혁 팀의 무능력을 질타하며, 수사팀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거대한 압박이 강재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동료들의 피로와 좌절감도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압박이 그의 승부욕을 더욱 자극했다. 그는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미지의 존재를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만 했다.
‘네가 아무리 교묘하게 움직여도, 결국 흔적은 남기게 되어 있어. 아무리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행동해도, 세상에 완벽한 범죄란 없어. 그리고 난 그 흔적을 기필코 찾아낼 거다.’
강재혁은 모니터 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소화전 덮개를 응시했다. 이 작은 흔적이 비질란테의 꼬리를 잡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그는 범죄자의 흔적을 쫓는 데 평생을 바쳐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대상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는 존재였다. 흥미로우면서도 위험한 싸움이었다. 그의 존재는 법과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의미했다.
강재혁은 비질란테와의 싸움이 단순한 범죄자와 경찰의 대결을 넘어, 법과 정의, 그리고 인간의 윤리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싸움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과연 법이 모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비질란테의 존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 싸움의 결과가 앞으로의 사회 질서와 법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설령 그 답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라도.
밤이 깊어질수록 수사팀 사무실의 불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강재혁은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은 불타는 듯 뜨거웠다. 비질란테의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고 있었고, 경찰은 그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었다. 이 싸움의 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단지 강재혁은 이 싸움이 결코 평범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 쫓아왔던 어떤 범죄자보다도 더 강력하고, 더 예측 불가능한 상대와 마주하고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