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33화

by BlackBearLeo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 은신처. 눅눅한 공기 속에서도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이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김도윤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유하준은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자판 위를 날아다녔고, 화면에서는 복잡한 코드와 구치소 내부 도면, 그리고 수많은 데이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의 얼굴은 며칠 밤샘 작업으로 핼쑥했지만, 눈은 광기 어린 빛으로 번뜩였다. 형을 살려야 한다는, 그 한 가지 생각만이 그의 피곤한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김도윤의 고열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었다. 유하준은 그의 옆을 지키며 간호하는 동시에, 김도윤이 차민준의 죽음 현장에 남겼을지도 모르는 모든 미세한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구치소 독방. 그곳은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요새와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유하준에게는 '뚫어야 할 성'에 불과했다. 그의 특출난 해킹 능력은 이런 보안 시스템을 우습게 보기에 충분했지만, 문제는 그 후에 남겨질 **‘흔적’**이었다.

"젠장…."

유하준은 마른 입술을 씹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지금, 태어나 처음으로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국가의 중요한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고, 데이터를 조작하며, 결정적으로 살인 사건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 지금까지 그는 불법적인 해킹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파헤치고, 때로는 비질란테의 정의로운 활동을 도왔을 뿐이었다. 그는 정보의 그늘에 숨어 진실을 밝혀내거나, 약자들을 돕는 해커였다. 직접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선량한 해커였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하려 노력했고, 자신의 능력을 악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도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생명의 은인이자,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이 되어준 형. 김도윤이 없는 세상은 유하준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죄책감과 동시에 이 행위가 과연 옳은가에 대한 깊은 도덕적 갈등이 그의 마음속을 할퀴었다. 그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그의 심장은 폭풍처럼 요동쳤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정의는 때로 이렇게 더러운 손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오직 김도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적인 열망만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유하준의 목표는 명확했다. 차민준의 죽음 현장에서 김도윤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는 것. 그리고 경찰, 특히 강재혁 경감의 수사망을 교란하고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강재혁 경감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은 그의 지난 추적을 통해 충분히 깨달았다. 그는 녀석의 예리한 촉을 분산시켜야 했다.

그는 가장 먼저 구치소 내부 CCTV 시스템에 접근했다. 강재혁 경감이 차민준 독방 주변 CCTV를 확인했을 것이 분명했다. 유하준은 사건 발생 찰나의 전자기기 오작동으로 생긴 녹화 오류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것은 김도윤의 능력이 남긴 희미한 흔적이었고, 동시에 유하준에게는 침투할 수 있는 틈이었다. 이 오류를 조작하여 경찰의 시선을 돌려야 했다.

그는 정교하게 조작된 더미 데이터를 삽입했다. 단순한 삭제는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시스템 오류로 인해 영상이 훼손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특정 시간대의 영상 프레임을 미세하게 지연시키거나, 픽셀을 흐리게 만들어 의도적인 노이즈처럼 위장했다. 때로는 영상 속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세한 빛 번짐이나 그림자를 삽입하여 경찰의 눈을 속이려 했다. **‘오류’**로 위장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구치소 시스템 내부를 돌아다니며, 김도윤의 능력이 작동했을 때 발생했을 법한 모든 미세한 흔적들을 찾아내고 지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십 개의 가상 서버를 오가며 자신의 IP 추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소화전 덮개의 흔들림. 강재혁 경감이라면 분명 그 부분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유하준은 해당 시간대에 구치소 외부에서 발생한 유사한 진동을 찾아내고, 그것이 원인인 것처럼 보이도록 데이터를 조작했다. 예를 들어, 구치소 인근 공사장의 발파 작업 기록이나, 심야에 구치소 주변을 지나가는 대형 화물차의 진동 데이터를 끌어와 해당 시점의 구치소 건물 진동 데이터와 교묘하게 겹쳐 보이게 만들었다. 때로는 지하철 통과 시 발생하는 미세한 지반 진동 데이터를 끌어와 조작된 기록에 삽입했다. 그렇게 미세한 흔들림은 단순한 외부 요인으로 치부되도록 유도했다. 그의 손끝에서 거대한 데이터의 퍼즐이 맞춰지고, 왜곡되고 있었다.

다음으로 유하준이 집중한 것은 전력 시스템과 통신망이었다. 김도윤의 능력이 발현될 때면 항상 전자기파 교란이 발생했다. 이는 그의 능력의 가장 큰 단서였다. 유하준은 구치소 전체의 전력 공급 기록과 통신망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는 특정 시간대의 전력 사용량 급증 기록을 찾아내고, 그것을 구치소 내부의 노후화된 전력 시스템 문제나 일시적인 과부하로 보이도록 조작했다. 예를 들어, 특정 구역의 전등이 순간적으로 깜빡였거나, 내부 통신망이 잠시 끊겼던 기록들을 찾아내고, 그것이 단순한 시스템 결함인 것처럼 보이도록 보고서를 위조했다. 통신망에는 대량의 스팸 트래픽을 유입시켜 강재혁이 찾을 만한 비정상적인 데이터 흐름을 교란시켰다. 그는 가짜 해킹 시도 기록을 남겨 경찰의 수사팀이 엉뚱한 방향으로 수사력을 낭비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유하준은 자신의 해킹 실력이 최고 수준임을 자부했지만, 이번 작업은 차원이 달랐다. 상대는 단순한 보안 시스템이 아니라, 정부 기관의 최고 수준 보안망이었다. 게다가 강재혁 경감이라는 뛰어난 수사관이 자신을 쫓고 있었다. 그는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녀석의 손끝은 쉴 새 없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고,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눈은 모니터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작은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이 싸움은 그의 모든 재능과 정신력을 요구했다.

모니터 화면 속에서 구치소 도면이 점멸했다. 해킹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유하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일의 파급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정의를 빙자한 폭력을 돕는 것. 이는 그가 늘 경계했던 일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정의는 법과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배웠다. 해킹이라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지만, 그는 항상 그 경계를 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시스템을 파괴하는 대신, 시스템을 통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돕는 이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의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그의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김도윤을 돕는다면, 자신도 결국 법망을 피해 도망 다니는 범죄자가 될 터였다.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뀔 것이었다. 평범한 삶, 대학에 가고 싶다는 소박한 꿈,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그의 모든 소망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는 어둠 속의 조력자로 영원히 숨어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침대에서 김도윤의 거친 기침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유하준은 고개를 돌려 김도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며칠 밤낮을 간호하며 지켜본 김도윤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렸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잔류 사념의 역류는 그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갉아먹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 의지가 바로 유하준이 그에게 매료된 이유였고, 그를 위해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였다.

'형은… 형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어. 세상의 더러운 부분을 혼자서 감당해왔다고.'

최면술사에게 붙잡혀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김도윤이 나타나 그를 구해냈다.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악인들을 처단하고, 수많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그는 단순히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진정한 정의를 구현하려 애썼다. 그의 방식은 논쟁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의 의도만큼은 순수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 유하준은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양심은, 그의 마음은, 김도윤을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하준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망설임은 사라졌다. 김도윤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그의 모든 도덕적 갈등을 압도했다. 그는 이 작은 지하 공간에서, 거대한 국가 시스템과 홀로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의 싸움은 김도윤을 위한 것이자, 동시에 그가 믿는 '진정한 정의'를 위한 것이었다. 법이 미처 닿지 못하는 어둠을 밝히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의 정의 구현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며 도시의 회색빛 아침이 밝아왔다. 유하준은 마지막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 '엔터'. 그 한 번의 클릭으로 구치소 시스템에는 이제 김도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모든 데이터는 깨끗하게 조작되었고, 어떤 전문가가 분석하더라도 단순한 시스템 오류나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해킹을 마치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눈빛은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해커가 아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이 잠든 침대로 다가갔다. 형의 이마에 손을 얹으니 열기는 조금 가라앉은 듯했다. 대신, 김도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손을 꼭 잡았다. 녀석의 손은 작고 여렸지만, 그 안에는 형을 향한 강철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형… 이제 제가 형을 지킬게요."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결의에 차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겁먹고 숨어 지내던 어린 해커가 아니었다. 김도윤의 존재는 유하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단지 해킹으로 돈을 벌거나 남을 괴롭히는 데 쓰일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지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도윤이 그에게 '정의'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듯이, 유하준 역시 김도윤에게 '숨겨진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그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이제 비질란테의 그림자이자, 그의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었다.

강재혁 경감이 아무리 뛰어난 수사관이라 해도,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으면 속수무책일 터였다. 유하준은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위장막 뒤에서 김도윤을 지켜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법의 수호자를 피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지켜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그는 자신이 걷게 될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외롭고 고된 길일 것이었다.

유하준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가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거리는 아직 고요했지만, 곧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시작할 터였다. 그리고 그들 중 아무도 이 지하 공간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그로 인해 뒤바뀌고 있는 거대한 정의의 싸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잠시 후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이번에는 김도윤의 회복을 위한 의학 정보를 검색하는 대신, '검은 조직'에 대한 정보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차민준의 죽음과 김도윤의 능력이 심상치 않게 얽혀 있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찾아내고, 그를 완벽하게 해방시킬 방법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 그의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는 형의 그림자 속에서, 세상의 더 깊은 어둠을 파헤칠 시간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세상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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