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34화.

by BlackBearLeo

지하 은신처의 희미한 불빛 아래, 유하준은 김도윤의 옆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며칠 밤낮을 해킹과 간호에 매달린 탓이었다. 그의 마른 어깨가 들썩이며 곤한 숨을 내쉬었다. 김도윤은 미약하지만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눈을 떴다. 고열은 여전히 있었지만, 며칠 전처럼 정신을 잠식하는 환각은 더 이상 없었다. 다만, 온몸의 근육통과 심장이 욱신거리는 듯한 통증이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유하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노트북 화면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유하준이 잠들기 전 띄워놓은 뉴스 창이었다. 무심코 화면을 응시하던 김도윤의 눈이 순간 얼어붙었다.

[속보] '정의의 심판자' 비질란테, 활동 재개? 또 다른 악질 범죄자 의문사!]

화면 가득 시신의 사진이 섬뜩하게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피해자는 한 달 전 출소한 성범죄자 이영호였다. 그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아 사회의 공분을 샀던 인물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이영호의 은신처였고, 그의 목에는 차민준처럼 질식사 흔적이 선명했다. 현장에는 비질란테가 남기는 시그니처와 유사한 형태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김도윤의 심장이 발작하듯 쿵쾅거렸다. 거친 숨을 들이켰지만 폐부까지 차오르는 것은 공포와 혼란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이영호를 ‘처단’했다. 모방범. 그 단어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자신이 활동을 멈춘 사이, 누군가 그의 방식을 모방하고 있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 화면을 응시했다. 뉴스 기사들은 앞다투어 이번 사건이 비질란테의 소행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비질란테가 잠적 기간 동안 더욱 잔인해졌거나, 혹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구치소 외부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여론은 다시 한번 들끓기 시작했다. 비질란테를 옹호하던 이들은 '역시 비질란테다! 법이 못한 일을 해냈다!'며 환호했고, 그를 비난하던 이들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어! 당장 잡아야 한다!'며 경찰을 비난했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고,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되는 듯했다.

김도윤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이 정의를 위해 시작했던 행동이, 이제는 통제 불가능한 파장을 불러왔다는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법이 외면한 정의를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이름은 '모방범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자신이 낳은 괴물이 자신을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김도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았다. 자신이 시작한 비질란테 활동이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그는 철저히 익명성을 유지했고,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원칙에 입각해 움직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처단'은 결국 사람들에게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악인을 단죄하는 것. 그 행위 자체가 가지는 파괴력과 유혹을 그가 간과했던 것이다.

모방범은 누구일까? 그 역시 자신처럼 법이 닿지 않는 악행에 분노하는 자일까? 아니면 단순히 비질란테의 이름을 빌려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파괴 욕구를 충족하려는 자일까? 김도윤은 후자의 가능성에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모방범이 선량한 사람에게 해를 가한다면? 비질란테라는 이름 아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그 모든 책임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괴물을 만들었고, 그 괴물이 활개 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도윤의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육체적인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잔류 사념의 역류는 멈췄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불러온 '파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족쇄가 채워진 듯했다. 그는 자신이 누워있는 이 은신처가 마치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졌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가면 자신과 유하준 모두 위험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경찰은 그를 쫓고 있었고, 이제는 모방범까지 등장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곁을 지키며 그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감지했다. 김도윤은 뉴스를 접한 후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었고, 눈에는 깊은 고뇌와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유하준은 형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김도윤에게 다가갔다.

“형… 괜찮아요?”

유하준의 목소리에 김도윤은 겨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준아… 이건… 내가 아니야.”

김도윤은 목이 메인 듯 겨우 말을 이었다. 유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형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니… 단순히 그게 아니야. 내가… 내가 이런 일을 만들었어.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몰라.”

김도윤의 목소리에 깊은 자책감이 묻어났다. 유하준은 그의 손을 잡았다. “형은 정의를 위해서 한 거잖아요. 형이 아니었다면 그 악당들은 여전히 활개 치고 있었을 거예요. 모방범은 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비뚤어진 생각 때문이에요.”

유하준의 위로에도 김도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유하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통제 불능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그를 괴롭혔다. 그는 비질란테라는 이름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려 했지만, 그 이름이 이제는 누군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강재혁 경감의 비질란테 전담팀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구치소 사건의 미세한 전자기파 교란 흔적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차민준의 죽음으로 이어졌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유하준의 정교한 조작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영호 사건의 발생은 수사팀에 더 큰 혼란을 안겨주었다.

“강 경감님! 이영호 사건 현장에서도 비질란테의 시그니처가 나왔답니다. 이번에는 구체적인 메시지까지 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강재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이영호의 범죄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법으로는 단죄할 수 없었던 악질이었다. 하지만 그는 비질란테가 구치소 안에 갇힌 차민준을 어떻게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영호의 죽음. 김도윤이 이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을 리 만무했다. 그의 몸 상태는 언론에 흘린 정보에 따르면 거의 초죽음 상태였을 터였다.

‘모방범인가….’

강재혁은 직감했다. 비질란테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모방범죄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고 대담하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는 즉시 이영호 사건 현장의 모든 자료를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특히 비질란테 시그니처와 메시지를 면밀히 분석하라고 했다. 모방범이라면, 진짜 비질란테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터였다. 필적, 메시지의 뉘앙스, 처단 방식의 세부적인 부분. 강재혁은 그 작은 차이에서 진실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었다.

언론은 강재혁의 예상대로 광분했다.

“비질란테, 진화인가? 퇴화인가?”

“두 명의 비질란테?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정의의 그림자!”

매일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들은 경찰에 대한 비난을 더욱 증폭시켰다. 시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비질란테가 두 명이라면, 어떤 비질란테가 진짜인가? 둘 다 진짜라면, 법은 대체 무엇을 하는가? 경찰은 대체 왜 이들을 잡지 못하는가? 경찰청장은 강재혁 팀에게 **‘일주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팀을 해체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압박은 극에 달했다.

지하 은신처에서 김도윤은 밤늦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강재혁 경감의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옆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봤다. 김도윤의 눈은 깊은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 혼란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쓰러져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악이 단죄되는 것은, 결코 그가 바라던 정의가 아니었다.

“하준아, 모방범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김도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유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아마 모방범이라면, 형처럼 치밀하게 흔적을 지우지는 못했을 거예요. 분명히 허점이 있을 겁니다.”

유하준은 노트북 화면을 빠르게 조작했다. 이영호 사건 관련 모든 공개 정보를 긁어모았다. 언론 보도, 경찰 발표, 온라인 커뮤니티의 분석 글들까지. 그는 비질란테 모방범의 행동 패턴, 메시지, 그리고 범죄 현장의 미세한 차이점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형… 뭔가 찾은 것 같아요.”

유하준은 김도윤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영호 사건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였다. 비질란테가 주로 사용하는 서체와 구문은 유사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특정 단어의 철자가 미세하게 틀려 있었고, 문장 구조가 조금 더 거칠었다. 그리고 시그니처 마크의 디테일이 원본과 달랐다. 진짜 비질란테라면 결코 하지 않을 실수였다.

“그리고… 이영호 시신에서 발견된 미세한 섬유 조각. 현장 감식팀은 단순한 먼지로 치부했지만, 제가 확보한 사진을 확대해보니… 구치소 내부에서 사용되는 죄수복 섬유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건 아마 차민준을 죽였던 방식과 유사한, 하지만 좀 더 원시적인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모방범은 구치소 출신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하준의 분석에 김도윤의 눈이 번뜩였다. 모방범은 어쩌면 차민준과 관련된 인물, 혹은 구치소 내부 사정에 밝은 인물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 자신은 외부의 악인들만을 처단해왔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림자를 뒤쫓는 또 다른 그림자와 마주해야 할 상황이었다.

김도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의 정신은 전보다 훨씬 명료해졌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시작한 파장이라면, 자신이 수습해야 했다. 모방범의 존재는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더 이상 정의를 가장한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하준아…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아.”

김도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유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 그의 눈에도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제 두 그림자는 함께 움직여야 했다. 하나는 쓰러진 영웅, 다른 하나는 그를 지키는 조력자. 그들은 도시의 혼란을 잠재우고, 비질란테라는 이름 뒤에 숨은 또 다른 악의 정체를 밝혀내야 했다.

밤은 깊었지만, 그들의 결심은 더욱 굳건해졌다. 강재혁 경감의 압박은 그들을 옥죄어 왔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움직일 명분을 주었다. 이 복잡하게 얽힌 진실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김도윤과 유하준은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싸움은 단순히 모방범을 잡는 것을 넘어, '비질란테'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싸움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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