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병원 중환자실의 차가운 공기는 김도윤의 뺨을 스쳤다. 그의 의식은 점차 또렷해지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무력감과 잔류 사념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의 차가운 감촉은 그가 더 이상 '비질란테'가 아닌, 법에 갇힌 죄수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햇살조차 그에게는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강재혁 경감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당신은 이제 죄인이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고, 그로 인해 사회에 혼란을 초래했으며, 결국 모방범이라는 괴물까지 만들어냈다. 한때 정의를 꿈꿨던 검사는, 이제 벼랑 끝에 몰린 도망자가 되었다.
‘형… 포기하지 마세요… 제가… 제가 형을 꺼내줄게요….’
혼미한 의식 속에서 들려왔던 유하준의 목소리가 다시금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유하준은 분명히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편, 그의 마지막 희망. 김도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지쳐 있었지만, 그 안에 작은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 시각, 경찰청 비질란테 전담팀은 김도윤의 체포 작전을 개시했다. 강재혁 경감은 지휘실에서 김도윤의 사무실과 거처를 동시에 급습하는 명령을 내렸다.
“김도윤 검사의 사무실과 자택을 즉시 압수수색한다! 김도윤이 비질란테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그의 모든 협력자를 찾아내라! 특히 그의 동생 유하준의 행적을 면밀히 추적한다!”
강재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했고, 그 능력을 이용해 법을 무시한 자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법의 수호자로서, 그는 '비질란테'라는 이름의 무법자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대중의 비난 여론은 그의 신념에 더욱 불을 지폈다.
수십 명의 수사관들이 김도윤의 사무실과 자택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사무실은 말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자택 또한 며칠간 사람이 살지 않은 듯 먼지만 쌓여 있었다. 하지만 강재혁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도윤이 사라지기 전 남긴 미세한 흔적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서류, 그리고 유하준의 해킹 흔적까지.
“경감님! 김도윤 검사의 컴퓨터에서 수상한 접속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외부 IP를 통해 지속적으로 그의 계정에 접속한 흔적이 있습니다. 매우 정교한 해킹입니다!”
수사관의 보고에 강재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유하준의 짓인가…!”
그는 김도윤의 동생 유하준이 뛰어난 해킹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김도윤의 도피를 돕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유일한 약점이자, 동시에 유일한 조력자였다. 강재혁은 유하준의 해킹 흔적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유하준은 자신의 은신처에서 경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컴퓨터 화면에는 경찰의 압수수색 현장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고, 그의 해킹 시스템은 경찰의 역추적을 방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 김도윤의 도피를 돕고 있었다.
“형… 경찰이 형의 사무실과 자택을 급습했어요. 제 흔적을 찾고 있어요.”
유하준은 김도윤에게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냈다. 김도윤은 병실 침대에 누워 그 메시지를 확인했다. 유하준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알기에, 김도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제발… 무사해야 한다, 하준아.’
유하준은 김도윤이 중환자실에 갇혀 있지만,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그를 탈출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병원 내부 네트워크에 침투하여 김도윤의 병실 구조, 감시 시스템, 그리고 경찰의 교대 시간까지 파악했다. 그의 계획은 대담하고 위험했다. 병원 자체의 보안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동시에 경찰의 시선을 돌려 김도윤을 탈출시키는 것.
하지만 경찰의 추적도 만만치 않았다. 강재혁 팀은 유하준의 해킹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했고, 그의 IP 주소를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유하준은 자신의 위치가 발각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른 서버로 우회하고, 가상 사설망을 수없이 변경하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이는 마치 첨단 기술을 이용한 숨바꼭질 같았다.
“제 위치가… 거의 특정되고 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형을 탈출시키려면… 저도 움직여야 해요.”
유하준은 마침내 결심했다. 그는 더 이상 안전한 은신처에 숨어 있을 수 없었다. 김도윤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모든 해킹 도구와 비상 탈출 장비를 챙겼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그날 밤, 유하준은 경찰 병원 주변에 잠입했다. 그는 병원의 외곽 통신망에 직접 침투하여 중앙 보안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병원 전체의 전자기기가 순간적으로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CCTV는 꺼지고, 전등은 깜빡였으며, 비상 알람이 오작동하며 울려 퍼졌다. 병원 안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강재혁 경감은 지휘실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다.
“유하준! 이 녀석이 움직였다! 즉시 병원 전체에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모든 출입구를 봉쇄해라! 김도윤의 병실을 사수해라!”
강재혁은 유하준이 김도윤을 탈출시키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병원 내 모든 경찰 병력을 김도윤의 병실로 집결시키도록 명령했다.
그 사이, 유하준은 김도윤의 병실로 향했다. 그는 의료진 복장을 하고 혼란을 틈타 병원 내부로 침투했다. 경찰 병력이 김도윤의 병실 문 앞에 집결하는 동안, 유하준은 다른 경로를 통해 병실 안으로 진입했다. 환풍구를 통해, 혹은 비상 계단을 통해. 그의 민첩한 움직임은 숙련된 요원과도 같았다.
김도윤은 병실 안에서 유하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이 아직 불안정했지만, 유하준의 강렬한 의지와 동생에 대한 염려가 사념으로 느껴졌다. 이내 병실 창문이 조용히 열렸다. 유하준이었다.
“형! 괜찮아요?! 어서 이쪽으로!”
유하준은 김도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도윤은 망설임 없이 유하준의 손을 잡았다. 그의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유하준의 손을 잡는 순간, 그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듯했다.
그들은 병실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을 부축하며 병원 외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병실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강재혁 경감이 특수 기동대원들을 이끌고 병실로 들이닥쳤다.
“젠장! 놓쳤다! 김도윤이 탈출했다! 즉시 병원 전체에 수색 작전을 개시한다! 유하준도 함께 있다! 절대 놓치지 마라!”
강재혁의 분노에 찬 외침이 병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의 눈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는 김도윤이 자신을 농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하준까지. 그들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김도윤과 유하준은 병원 외곽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유하준은 미리 준비해 둔 차량에 김도윤을 태우고 빠르게 병원을 벗어났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지만, 그들은 이미 도주 경로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상태를 살피며 운전했다. 김도윤은 뒷좌석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그의 눈빛에는 깊은 절망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준아… 나 때문에… 너까지….”
김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형. 저는 괜찮아요. 형을 구하는 게 제 목표였으니까요. 이제… 우리 둘 다 도망자가 됐네요.”
유하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의 손은 운전대를 꽉 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었다. 더 이상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김도윤은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어둠을 응시했다. 한때 그가 지키려 했던 도시, 그가 신념을 바쳤던 법.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자신을 추격하는 올가미가 되어버렸다. 그는 검사로서의 지위, 가족, 명예, 그리고 비질란테로서의 신념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이제 법의 바깥,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김도윤은 자신에게, 혹은 유하준에게 묻는 듯했다.
유하준은 백미러로 김도윤의 얼굴을 확인했다. “일단은 경찰의 추적을 따돌려야 해요. 제가 미리 준비해 둔 은신처가 몇 군데 있어요. 걱정 마세요, 형. 제가 형을 안전하게 지킬게요.”
유하준의 말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이제 김도윤의 그림자이자,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들의 운명은 이제 하나로 묶였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도피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일부 노출시켰고, 해킹으로 인해 위치를 추적당하는 등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다. 그는 이제 김도윤과 같은 처지가 되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들은 밤새도록 달렸다. 도시의 불빛은 점점 멀어졌고, 그들을 쫓는 사이렌 소리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김도윤은 자신이 도피자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는 더 이상 빛 속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싸움은 어둠 속에서 계속될 것이었다.
그때, 김도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유하준이 급하게 운전하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강재혁 경감의 문자 메시지였다.
[강재혁] 김도윤. 도망쳐 봤자 소용없다. 너는 이제 세상의 모든 법이 쫓는 범죄자다. 그리고 네 동생도 너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유하준은 메시지를 읽고 입술을 깨물었다. 강재혁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숨을 곳조차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김도윤은 고개를 들어 유하준을 바라봤다. “하준아… 정말 미안하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에요, 형. 우리는 함께 가는 거예요. 저는 형이 믿는 정의를 믿어요. 그리고… 형을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두 형제는 어둠 속을 달렸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세상의 비난과 경찰의 추격을 피해, 그들은 이제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왜곡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 도피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