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깊은 곳, 유하준이 어렵게 찾아낸 두 번째 은신처는 첫 번째 폐가보다 훨씬 더 허름하고 외딴곳에 있었다. 낡은 창고를 개조한 듯한 그곳은 차가운 시멘트 벽과 퀴퀴한 흙냄새로 가득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유하준은 김도윤을 부축하며 간신히 이곳으로 몸을 숨겼다. 경찰의 추격은 상상 이상으로 집요했고, 강재혁 경감의 집념은 섬뜩할 만큼 강했다.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그들의 뒤를 쫓아왔다. 숨소리마저 조심해야 할 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도윤은 창고 한쪽 구석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의 몸은 격렬한 능력 사용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며칠간의 도피로 인해 완전히 지쳐 있었다.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고,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온몸에는 능력의 후유증으로 인한 검붉은 반점과 피멍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강인하고 냉철했던 검사의 것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짐승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미미하게 떨리는 손끝에서는 더 이상 이전의 날카로운 기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김도윤의 망가진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자신이 김도윤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그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내가 형을 이렇게 만든 건가? 내가 형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법의 선을 넘게 만든 게 아닐까?’
유하준은 김도윤의 능력을 처음 알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형의 능력이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정의'의 수단이라고 믿었다.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악을 심판하고, 억울한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래서 그는 기꺼이 형의 그림자가 되어 도왔다. 정보를 수집하고, 증거를 찾아냈으며, 형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다. 그는 스스로를 김도윤의 '파트너'라고 자처하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김도윤의 모습은 그가 꿈꾸던 '정의의 심판자'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능력의 폭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망가져가는 모습, 세상의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도망쳐야 하는 처량한 신세.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 불러온 결과 같았다. 자신이 형을 부추겨 법의 경계를 넘어서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유하준을 짓눌렀다. 그의 마음속에는 후회와 함께 형을 향한 미안함이 소용돌이쳤다.
“형… 제가… 너무 무리하게 만든 건가요? 제가… 형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유하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김도윤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김도윤의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그의 맥박은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김도윤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흐릿했지만, 유하준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했다.
“아니야, 하준아… 너는… 너는 아무 잘못 없어.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야. 처음부터… 나 혼자 시작한 일이었어.”
김도윤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는 유하준의 손을 잡고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하준을 위로하려는 듯했지만, 동시에 체념과 비극적인 운명을 담고 있었다. 유하준은 형의 그 미소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형은 자신 때문에 이렇게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는 형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상처를 치료하고, 간이 침대에 눕혔다. 그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죄책감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 당장 김도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 정보를 수집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김도윤의 '파트너'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그는 경찰의 수사망을 파악하기 위해 최첨단 해킹 기술을 총동원했다. 경찰청 내부망, CCTV 네트워크, 그리고 심지어 강재혁 경감의 개인 통신 기록까지. 그는 강재혁 팀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들의 추적 방식을 분석했다. 그의 해킹은 이제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의 일부가 되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날아다녔고, 수많은 코드들이 화면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강재혁은 김도윤이 도주한 이후, 전국적인 수배령을 내렸다. 모든 교통망과 항만, 공항에는 김도윤과 유하준의 사진이 뿌려졌고, 그들의 행방을 묻는 제보 전화가 빗발쳤다. 언론은 연일 김도윤의 도주 소식을 대서특필하며 그를 '위험한 탈주범'으로 낙인찍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고, 비질란테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강재혁 경감, 김도윤의 행방에 대한 제보는 없습니까? 전국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는데도 이렇게 감쪽같을 수가 있습니까?”
“아직입니다. 유하준 이 녀석, 보통 해커가 아닙니다. 모든 디지털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김도윤은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그는 사회의 질서를 뒤흔드는 존재입니다. 그의 능력은 물론이고, 그를 돕는 자들까지 모두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입니다.”
유하준은 경찰의 무전을 감청하며 강재혁의 집념에 소름이 돋았다. 강재혁은 김도윤을 잡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의 추격은 단순히 직업적인 의무를 넘어선, 개인적인 신념의 영역으로 들어선 듯했다. 강재혁의 목소리에서는 김도윤을 향한 강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유하준은 언론의 여론과 비질란테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김도윤이 병원에서 발작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은 대중의 분노와 공포를 극대화시켰다. 한때 '정의의 영웅'이라 불리던 비질란테는 이제 '광기 어린 정신병자'이자 '사회적 혼란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그의 능력에 대한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하며, 대중은 그를 두려워하고 혐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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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질란테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믿음을 배신한 괴물입니다!” - 이영호 사건 피해자 가족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는 비난과 증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김도윤이 사회의 안정을 파괴하고 모방범을 양산했다며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일부에서는 김도윤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거나, 영구적으로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유하준은 그런 글들을 읽으며 분노와 함께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의 심장은 고통스럽게 옥죄어 오는 듯했다.
‘세상은 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형은 정의를 위해 싸웠는데… 왜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거지?’
유하준은 키보드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이 김도윤의 능력을 세상에 알리려 했던 것을 후회했다. 어쩌면 형의 능력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형은 여전히 평범한 검사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자신이 형에게 이 모든 짐을 지운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죄책감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유하준은 다시 노트북을 들었다. 김도윤을 돕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과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는 경찰의 수사망에 어떤 빈틈이 있는지, 그리고 김도윤의 다음 행보를 어떻게 모색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들의 도피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는 김도윤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의학 논문과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비공식 자료들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이 단순한 정신 착란이 아니라, 어떤 생체 에너지 혹은 뇌파 조작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이정훈 교도관의 유사 능력 발현은 김도윤의 능력이 전염될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유하준은 이정훈 교도관의 과거 기록을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이정훈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의 모든 상황을 재구성했다. 김도윤이 차민준을 처단한 직후, 이정훈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이정훈이 김도윤의 '잔류 사념'에 노출되어 그의 능력이 모방된 것이라면, 이는 김도윤의 능력이 단순한 정신 조작을 넘어선, 전염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만약 이정훈처럼 김도윤의 잔류 사념에 노출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능력을 발현한다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밤늦도록 유하준은 정보 수집에 매달렸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노력했고, 동시에 경찰의 추적을 따돌릴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 유하준의 컴퓨터 화면에 이상한 신호가 잡혔다. 경찰 내부망에서 송출되는 미세한 데이터 패킷이었다. 강재혁 팀이 김도윤의 '능력'에 대한 특수 수사 전담팀을 비밀리에 구성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그들은 김도윤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심지어 그것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김도윤을 체포하여 그의 능력을 완벽하게 해부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유하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재혁은 김도윤을 잡는 것을 넘어, 그의 능력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이는 김도윤에게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김도윤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초월적 존재'로 분류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형… 그들이 형의 능력을 노리고 있어요… 형을… 실험하려 할지도 몰라요….”
유하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김도윤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유하준은 형의 잠든 얼굴을 바라봤다. 그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형을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그를 지배했다. 그는 김도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유하준은 노트북을 덮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아마도 김도윤의 능력의 기원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의 아버지가 남긴 기록들, 그리고 김도윤의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 속에 모든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형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유하준은 김도윤의 옆에 앉아 밤새도록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죄책감과 함께 형을 향한 굳건한 충성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제 김도윤의 그림자가 아니라, 그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야 했다. 그들의 도피는 이제 단순한 도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왜곡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그리고 김도윤의 능력과 운명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처절한 여정이 되었다. 이 은신처 속에서, 유하준은 형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