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 수사관 47화

by BlackBearLeo


경찰청 비질란테 전담팀의 지휘실은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강재혁 경감은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김도윤과 유하준의 수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수많은 동료와 부하들이 그의 뒤에서 숨죽인 채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김도윤과 유하준의 모든 흔적을 쫓고 있었지만, 형제의 도피는 생각보다 집요하고 치밀했다. 유하준의 해킹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김도윤의 흔적은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다.

강재혁의 얼굴에는 밤샘 근무로 인한 피로가 역력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운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광채 속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미묘한 번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김도윤을 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단순히 무법자를 쫓는다는 직업적인 의무감 외에, 더 깊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오랜 신념과 불편한 진실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는 김도윤이 체포된 이후 발표된 범죄 통계를 다시 확인했다. 놀랍게도 흉악범죄 발생률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보고서였다. 특히 보복 범죄나 연쇄 살인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는 비질란테의 활동이 범죄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던 악인들이 비질란테의 손에 단죄되는 것을 목격한 범죄자들이 스스로 몸을 사리거나, 혹은 더 큰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결과일 수 있었다. 거리의 시민들 사이에서는 비질란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경감님, 김도윤 검사가 활동했던 기간 동안, 특히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논란이 되었던 사건들의 재심 청구가 늘고 있습니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역설적으로 김도윤의 행동이 사법 시스템에 대한 각성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선 판사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린 셈이죠.”

보고관의 말은 강재혁의 귀에 박혔다. 그는 김도윤의 행동이 비록 불법적이었을지언정,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은 비질란테의 존재를 통해 자신들이 잊고 있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법의 한계를 직시하게 되었다. 강재혁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과연 이 모든 변화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김도윤의 존재가 불가피하게 일으킨 파동이었을까?

강재혁은 모방범 이정훈의 심문 기록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정훈의 광기 어린 진술 속에서도, 그는 김도윤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뒤틀린 정의감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정훈은 김도윤이 '악인을 고통스럽게 단죄하는 존재'라고 믿었지만, 그 믿음의 기저에는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악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었다. 이정훈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영호를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자 절망했고, 결국 김도윤을 모방하여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 했다. 김도윤의 진심, 즉 법의 빈틈을 메우고 싶었던 순수한 열망이 이정훈이라는 기형적인 결과물을 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재혁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이정훈이 김도윤의 그림자에 갇혀버린 또 다른 피해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강재혁은 책상에 놓인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동안 그는 '법치주의'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해왔다. 법은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법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패였다. 하지만 김도윤은 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행동했다. 그런데도 그의 행동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현실은 강재혁의 오랜 신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과연 법만이 정의의 유일한 길인가?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악은 누가 심판해야 하는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강재혁의 마음속에는 깊은 번뇌가 시작되었다. 그는 김도윤의 행동이 무법이라고 비난했지만, 동시에 그의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김도윤은 분명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의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기에는, 그가 불러온 변화가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그가 감당해야 할 고통 역시 상상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경감님, 오늘 아침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이 ‘비질란테를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고 나왔습니다. 언론은 여전히 그를 비난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그를 영웅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비질란테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부하 직원의 보고에 강재혁은 고개를 들었다. 대중의 여론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일부는 그를 '사회 혼란의 주범'이라 비난했지만, 다른 일부는 그를 '필요악'이자 '진정한 정의의 심판자'로 옹호하고 있었다. 이 혼란 속에서 강재혁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다. 그는 법의 수호자였다. 법을 수호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하지만 그 법이 항상 완벽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를 괴롭혔다. 그가 지켜야 할 법과 그가 추구해야 할 정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넓게 느껴졌다.

강재혁 팀 내부에서도 김도윤을 잡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미묘한 내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팀원들은 강재혁만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김도윤이 처단한 악인들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법의 한계 앞에서 무기력했던 순간들을 경험했기에, 그들은 김도윤의 존재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질문과 함께 알 수 없는 동정심이 섞여 있었다.

“강 경감님, 솔직히 말하면… 저도 김도윤이 잡은 놈들은 죄다 사회의 암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았다면, 비질란테 같은 건 애초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어쩌면… 비질란테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준 것 아니겠습니까?”

베테랑 형사 이형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강재혁의 가장 오랜 동료이자,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김도윤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연민이 섞여 있었다.

강재혁은 이형욱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법을 무시하고 사적인 단죄를 행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어, 이형사. 오늘 김도윤을 잡지 않으면, 내일 또 다른 이정훈이 나타날 거야. 아니, 어쩌면 더 많은 비질란테들이 스스로 정의의 이름을 빌려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어. 그 혼란을 막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법은 완벽하지 않지만, 법이 무너지면 사회는 혼돈에 빠진다.”

이형욱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강재혁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었다. 법치주의는 사회 질서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김도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김도윤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가 '필요악'이었음을 인정하는 듯했다. 그들은 법의 이름으로 그를 쫓으면서도, 내심 그의 존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젊은 팀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그들은 비질란테의 등장에 열광했던 세대였다. 그들에게 김도윤은 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정의를 실현한 영웅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잡아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였다. 이 모순된 상황이 그들을 괴롭혔다. 정의와 법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경감님, 김도윤 검사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가 잔류 사념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이정훈 교도관에게 그 능력이 모방되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범죄자를 쫓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그를 잡는 것이… 인류 전체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 수사팀장의 보고는 팀 내부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김도윤의 능력은 그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범죄자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를 쫓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새로운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능력의 근원이 단순한 정신병이 아니라, 어떤 과학적 혹은 초자연적 현상이라면, 김도윤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강재혁은 혼자 지휘실에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정의'와 '법'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개념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는 법의 수호자로서 법치주의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김도윤이 보여준 '정의'는 그가 평생 믿어왔던 법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김도윤의 행동이 분명히 불법이며, 사회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불러온 긍정적인 변화들, 그리고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는 김도윤의 눈빛에서 광기가 아닌, 진정한 고뇌와 희생을 보았다. 그가 악을 처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강재혁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김도윤을 잡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일인가? 아니면… 또 다른 희생을 낳을 뿐인가?’

강재혁은 고뇌했다. 그의 신념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가졌다 할지라도, 법을 벗어난 폭력은 결국 더 큰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것. 비질란테의 존재는 일시적인 정의를 가져왔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사회 질서를 파괴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 모방범 이정훈이 그 명백한 증거였다. 법의 빈틈을 메우는 것은 법의 몫이지, 개인의 몫이 아니었다.

“아무리 진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법을 무시하는 자는 용납될 수 없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며,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강재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다시금 단호해졌다. 그의 번뇌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대중의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의 고뇌는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모든 팀원, 재집결! 김도윤과 유하준의 예상 이동 경로를 다시 분석한다! 그들이 아버지의 연구와 관련된 단서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라! 그들의 목적지는… 분명히 그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반드시 잡는다!”

강재혁의 지시는 단호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이 아버지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단서를 통해 김도윤을 추적하려 했다. 그의 추격은 이제 단순한 범죄자 체포를 넘어선, 진실을 파헤치고 거대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싸움이 되었다. 그는 김도윤의 능력의 기원을 밝혀내고, 그것을 통제하여 사회적 혼란을 막아야 했다.

그는 김도윤을 잡아야 했다. 법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를 통제하여 그의 능력이 사회에 더 이상 혼란을 가져오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그의 마음속 번뇌는 계속될 것이었지만, 그의 임무는 명확했다. 그는 법의 수호자였다. 그리고 법은 그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았다.

지휘실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재혁의 번뇌는 그만의 몫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다시 한번 김도윤의 그림자를 쫓기 시작했다. 그의 끈질긴 추격은 김도윤과 유하준의 숨통을 더욱 조여올 것이었다. 그리고 이 추격전의 끝에는, 법과 정의, 그리고 초월적인 능력에 대한 거대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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