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목격자(1장)

by BlackBearLeo

1장. 평범한 형사, 비범한 두통

"으윽……."

눈을 뜨기도 전에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머릿속에 공사판을 차린 게 분명했다. 누군가 대형 드릴로 뇌의 주름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갈아엎는 기분.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소독약 냄새. 규칙적인 기계음. 병원이다.

"여기, 어디……."

말을 하려는데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마포 제일병원이에요. 응급실에 실려 오신 지 꼬박 하루 지났어요. 기억나세요?"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내 얼굴 위로 불빛을 비췄다. 눈부셔. 고개를 돌리려는데 목이 뻣뻣했다.

"범인은…… 그 새끼, 잡았습니까?"

내 첫마디에 간호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범인이 문제예요? 뇌진탕에 타박상이 심해요. 게다가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뇌수막염인 줄 알고 얼마나 난리였는데요."

뇌수막염? 웃기지 마라. 이건 그런 병 따위가 아니다. 그때 그 빗속에서, 놈의 발목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끔찍한 감각. 그게 아직도 뇌리에 남아 신경을 갉아먹고 있는 거다.

"체온 좀 잴게요."

간호사가 체온계를 들고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 내 이마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움찔.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겁이 났다. 아니, 정확히는 두려웠다. 또다시 그 영상들이 보일까 봐. 피 냄새, 살려달라는 비명, 칼날이 살을 가르는 그 소름 끼치는 감각이 다시 밀려올까 봐.

"환자분?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그냥 좀 놀라서."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제발. 제발 아무것도 보이지 마라. 그냥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본 거라고 해줘.

간호사의 서늘한 손바닥이 내 이마를 짚었다.

그 순간.

핑-

시야가 반전됐다. 병실 천장이 아니라, 좁고 어두운 방이 보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소주병. '헤어지자고? 네가 감히 나한테?' 남자의 고함 소리. 날아오는 손찌검. 뺨이 얼얼하다. 무섭다. 도망쳐야 해. 이 남자는 괴물이야.

"으헉!"

나는 비명을 지르며 간호사의 손을 쳐냈다.

"환자분!"

간호사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이마를 감싸 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방금 그거 뭐였지? 살인 기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저 간호사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기억이었다. 공포. 슬픔. 수치심.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뇌로 전이되어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간호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서둘러 체온계만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야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진짜다. 미친 게 아니었어. 접촉하면 보인다. 타인의 기억이.

"하,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엑스맨? 어벤져스? 지랄하고 자빠졌네. 영화에서는 초능력이 생기면 세상을 구하고 영웅이 되던데. 현실은 그냥 두통 유발자에 불과했다.

나는 침대 옆 서랍을 뒤져 거울을 찾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몰골은 가관이었다. 눈 밑은 퀭하고, 입술은 터져서 딱지가 앉아 있었고,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강도윤, 인생 진짜 스펙터클하다."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고 익숙한 곰 같은 덩치가 들어왔다.

"야! 강도윤! 살아났냐?"

우리 팀 막내, 박 형사였다.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팀장님은?"

"서장님한테 불려가서 깨지고 계시지. 너 때문에."

"나 때문에?"

"그래, 인마. 다 잡은 '다람쥐' 놓치고, 형사는 뻗어서 병원 실려 오고. 서장님 혈압 오를 만도 하지."

박 형사가 혀를 차며 비닐봉지에서 캔커피를 꺼내 던졌다.

"받아."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아차.

탁.

차가운 캔커피가 손바닥에 닿았다.

진열장 정리. 알바생의 하품. 유통기한 확인. 2024년 10월까지. 지루해. 집에 가고 싶다.

짧고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편의점 알바생의 기억인 듯했다. 다행히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단순한 기억이라 두통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쾌했다. 마치 남이 씹던 껌을 억지로 씹은 기분.

"야, 너 왜 그래? 손 떨어?"

"아니, 추워서. 에어컨 좀 꺼라."

나는 황급히 캔커피를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사회생활 불가다. 누굴 만나서 악수도 못 하고, 지하철 손잡이도 못 잡는다.

"박 형사."

"왜."

"장갑 있냐?"

"장갑? 이 여름에?"

"손이 너무 시리다. 수족냉증인가 봐."

"가지가지 한다, 진짜. 차에 목장갑은 있는데."

"그거라도 가져와. 당장."

3일 뒤. 나는 억지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의사는 뇌진탕 후유증이 우려된다며 말렸지만, 병원에 더 있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마다, 의사가 청진기를 댈 때마다, 나는 그들의 사생활을 강제로 훔쳐봐야 했다.

그들이 어젯밤 뭘 먹었는지, 누구랑 싸웠는지, 심지어 화장실에서 뭘 했는지까지. 알고 싶지 않은 정보(TMI)의 홍수 속에서 내 뇌는 과부하가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경찰서 복귀 첫날. 나는 검은색 가죽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여름에 가죽 장갑이라니. 누가 봐도 미친놈 패션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장갑은 너무 없어 보이고, 라텍스 장갑은 변태 같았으니까.

"충성! 강도윤, 복귀했습니다!"

강력 3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담배 연기 자욱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짜장면 냄새, 땀 냄새, 그리고 서류 뭉치 냄새. 이 지긋지긋한 냄새가 차라리 소독약 냄새보다 나았다.

"오냐, 돌아왔냐? 사고뭉치."

최 팀장이 신문을 보던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책상 위에는 재떨이가 수북했다.

"죄송합니다. 놈을 거의 다 잡았는데."

"변명은 됐고. 몸은?"

"멀쩡합니다. 머리가 좀 띵한 거 빼고는."

"그럼 일해. 책상 위에 서류 쌓인 거 안 보이냐?"

팀장이 턱짓으로 내 자리를 가리켰다. 내 책상 위에는 처리하지 못한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 저 종이들 하나하나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겠지. 장갑을 껴서 다행이다.

자리에 앉아 장갑 낀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다행히 장갑 너머로는 기억이 읽히지 않았다. 맨살. 반드시 맨살이 닿아야만 한다. 이 능력의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강 형사, 이거 좀 봐라."

이수진 프로파일러가 다가와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우리 팀의 유일한 브레인이자, 내가 짝사랑... 은 아니고, 아무튼 꽤 괜찮게 생각하는 동료였다. 냉철하고 논리적이고, 무엇보다 헛소리를 안 한다.

"뭔데요?"

"네가 놓친 그 '다람쥐' 말이야. 이동 경로가 이상해."

화면에는 CCTV 캡처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후드티를 뒤집어쓴 놈이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모습.

"보통 절도범들은 도주할 때 CCTV 없는 사각지대를 골라서 가잖아? 근데 이 놈은 일부러 CCTV가 있는 쪽으로만 다녔어. 마치 보란 듯이."

"도발하는 겁니까?"

"아니, 알리바이지."

"알리바이?"

"이 시간, 이 장소에 내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야. 절도 혐의는 인정하더라도, 그 시간에 다른 곳에서 벌어진 '더 큰 범죄'와는 무관하다는 걸 어필하려는 거지."

수진의 말에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더 큰 범죄. 프롤로그 때 보았던 그 기억. 여자를 칼로 찌르던 그 장면.

"저기, 수진아. 혹시 최근에... 살인 사건 접수된 거 있어? 칼 쓰고, 좀 잔인한 거."

"갑자기 웬 살인 사건? 요즘 조용한데."

조용하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 기억은 너무나 생생했다. 분명 놈은 누군가를 죽였다. 그리고 그 시신을...

한강 둔치. 갈대밭.

기억 속의 장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무슨 근거로 수색을 요청한단 말인가. '범인 발목을 잡았는데 살인하는 환영을 봤습니다'라고? 바로 정신병원 직행이다.

"아니야. 그냥 느낌이 안 좋아서."

나는 얼버무리며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그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사무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박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네, 마포서 강력 3팀입니다. 네? 어디라고요?"

박 형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전화를 끊지 않고 팀장을 바라보며 외쳤다.

"팀장님! 한강 망원지구 갈대숲에서 시신 발견됐답니다!"

쿵.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올 것이 왔구나.

"뭐? 시신? 자살 아니고?"

"타살 혐의점이 뚜렷하답니다. 훼손 상태가 심하대요. 그리고..."

"그리고 뭐!" "손가락이... 전부 절단되어 있답니다."

토막 난 손가락. 기억 속의 장면과 일치했다.

"출동해! 감식반 부르고, 폴리스 라인 쳐!"

팀장의 고함 소리에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기증이 일었지만, 꾹 참았다.

'확인해야 해.'

그 기억이 진짜인지. 내가 본 것이 정말 범인의 기억인지. 아니면 뇌를 다쳐서 본 내 망상인지.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장마철이라 불어난 강물 냄새와 피 비린내가 섞여 역한 악취를 풍겼다. 폴리스 라인 밖에는 벌써 기자들이 진를 치고 있었다.

"비켜요! 비켜!"

나는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갈대숲 안쪽, 하얀 천으로 덮인 형체가 보였다. 주변에는 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마음의 준비 해라."

팀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혀를 찼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을 걷어 올렸다.

"......!"

숨이 턱 막혔다. 여성이었다. 아니, 여성이었던 형체였다.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고, 열 개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잘려나가 있었다.

잔인하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시신의 참혹함이 아니었다. 시신의 팔목. 그곳에 묶여 있는 끈적한 테이프 자국.

손잡이에 감긴 미끄러운 테이프 감촉.

기억 속의 촉감이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토기가 올라왔다. 진짜였어. 내가 본 건 환각이 아니었다. 그 놈, '다람쥐'는 이 여자를 죽였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도망쳤다.

"어이, 강 형사. 안색이 왜 그래? 시체 처음 보냐?"

팀장이 내 등을 툭 쳤다. 나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아닙니다. 그냥... 냄새가 좀."

"신원 확인은? 지문이 없어서 힘들겠는데."

"치아 대조해봐야죠. 실종 신고 들어온 거랑 맞춰보고."

수진이 옆에서 냉정하게 분석했다.

나는 시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여자는 죽는 순간 무엇을 보았을까. 그 놈의 얼굴? 아니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신의 모습?

만약. 만약 지금 내가 저 시신을 만진다면. 이 여자의 마지막 기억을 볼 수 있을까?

미친 생각이었다. 시신을 맨손으로 만진다니. 증거물 훼손이다. 게다가 그 끔찍한 고통을 또 겪어야 한다. 싫다. 절대 싫다.

하지만 궁금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다람쥐' 놈이 범인이라는 확신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놈이 던져주고 간 건 훔친 물건들뿐이었다. 살인 도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잠깐만요."

나는 주위를 살폈다. 팀장은 통화 중이었고, 감식반원들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진이는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장갑을 낀 오른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장갑을 끼면 안 보인다. 벗어야 한다.

손이 떨렸다. 이걸 벗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나는 왼손으로 오른쪽 장갑을 잡아당겼다. 검은 가죽이 벗겨지고, 내 맨살이 드러났다. 하얗게 질린 손가락.

'딱 한 번만. 딱 1초만.'

나는 숨을 멈추고 시신의 차가운 발목에 손을 댔다.

닿았다.

쿠구구구-

마치 땅이 꺼지는 듯한 진동이 뇌를 강타했다. 시각, 청각, 후각이 한꺼번에 짓이겨졌다.

"크윽!"

이를 악물어 비명을 참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핏빛 영상이 재생되었다.

어두운 창고? 아니, 컨테이너. 입에 재갈이 물려 있다. 눈물로 범벅된 시야. 검은 후드를 쓴 남자가 다가온다. '다람쥐'다. 놈이 웃고 있다. 손에 든 건 칼이 아니다. 펜치다. "손톱이 예쁘네. 내가 가져도 될까?"

뚝. 뚜둑.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이 내 손가락 끝에서 생생하게 느껴졌다. 미칠 것 같았다. 제발 멈춰. 그만해!

하지만 기억은 멈추지 않았다. 놈의 얼굴 뒤로, 또 다른 누군가가 보였다. 그림자 속에 서 있는 남자. 양복을 입은 남자. 그는 팔짱을 낀 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지?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

여자의 간절한 시선이 그 양복 입은 남자에게 닿았다. 그때,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인자한 미소. TV에서 자주 봤던 얼굴.

"......!"

충격으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그 순간, 연결이 끊어졌다.

"헉, 허억...!"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코에서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피였다.

"강 형사! 왜 그래! 너 코피 나!"

수진이 놀라서 달려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장갑을 다시 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범인은 '다람쥐'가 아니었다. 아니, 실행범은 놈이었지만, 진짜 괴물은 따로 있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 그 인자한 미소 뒤에 숨겨진 악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얼굴. 유력 대선 후보, 박태산.

그가 그곳에 있었다. 시체를, 죽음을 즐기면서.

"강도윤, 괜찮아? 구급차 불러?"

팀장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멍한 눈으로 팀장을 바라보았다. 말할 수 있을까? 박태산이 살인 현장에 있었다고.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미친놈 취급이나 당하겠지.

하지만 나는 봤다. 타인의 뇌 속에 새겨진, 조작할 수 없는 진실을.

"괜찮습니다... 그냥, 현기증이 나서."

나는 피 묻은 코를 소매로 닦아냈다. 그래, 인생 좆된 거 맞네. 그냥 살인범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 센 놈이랑 엮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주머니 속의 진통제 통을 만지작거렸다. 이걸로는 택도 없을 것 같았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보이지 않는 기억을 무기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권력과 맞서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싸움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침묵의 목격자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