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뇌
프롤로그: 그날, 내 머릿속에 타인이 들어왔다
"헉, 헉, 헉……."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단내.
입 안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야 이 개새끼야! 거기 안 서?!"
내 고함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흩어졌다.
젠장, 비는 또 왜 이렇게 쳐오고 난리야.
앞서 달리는 놈의 등판이 빗줄기 사이로 흐릿하게 보였다.
검은색 후드티. 175센티미터 정도의 키.
특수절도 전과 3범, 이명 '다람쥐'.
이 새끼가 훔친 게 다이아몬드 반지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 고생은 안 했다.
"서라고 했다! 잡히면 뒤진다 진짜!"
내 경고에도 놈은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마포구의 낡은 주택가 골목은 미로 같았다.
놈은 이 바닥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철퍼덕.
물웅덩이를 잘못 밟았다.
흙탕물이 바지 밑단까지 튀어 올랐다.
아, 씨발. 오늘 아침에 세탁소에서 찾아온 건데.
순간, 짜증이 확 치솟았다.
형사 생활 5년 차.
사명감? 정의?
그런 거창한 건 개나 주라고 해라.
지금 내 머릿속을 채운 건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달리기를 끝내고 싶다는, 지극히 원초적인 욕구뿐이었다.
놈이 코너를 돌았다.
막다른 길이다. 내가 알기로 저기는 2미터가 넘는 담벼락으로 막혀 있었다.
'잡았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속도를 높였다.
코너를 도는 순간, 예상대로 놈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높은 담벼락 앞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갈 데 없지? 이제 그만……."
내가 숨을 고르며 다가가던 찰나였다.
휘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싶더니, 눈앞이 번쩍했다.
놈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붉은 벽돌을 집어 던진 것이다.
"윽!"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었지만 늦었다.
벽돌 모서리가 내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세상이 핑 돌았다.
"이 미친 새끼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을 가렸다.
속이 울렁거리고 귀에서 '삐-' 하는 이명 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내가 휘청거리는 틈을 타 내 옆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대로 보내면 놓친다.
그럼 시말서다.
팀장님의 잔소리, 서장님의 갈굼,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놈의 발목을 향해 몸을 날렸다.
덥석.
내 손이 놈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 위로 놈의 발목뼈가 느껴졌다. 아니, 바지가 말려 올라가 있었나?
내 손바닥에 놈의 차가운 맨살이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치지지직-
"으아아악!"
마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맨손으로 잡은 것 같았다.
손바닥에서 시작된 끔찍한 통증이 팔을 타고 순식간에 뇌로 파고들었다.
머리통이 안에서부터 쪼개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 뇌를 꺼내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는 것 같은 고통.
하지만 더 끔찍한 건 그 다음이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비 내리는 골목길이 아니었다.
...따뜻하다. 햇살이 좋다.
여자의 웃음소리. 하얀 원피스.
손에 쥔 사시미 칼. 손잡이에 감긴 미끄러운 테이프 감촉.
여자의 비명. 아니, 노래인가? 듣기 좋다.
푹. 푹. 고기를 썰 때와는 다른, 뼈에 걸리는 진동.
뜨겁다. 얼굴에 튀는 피가 비릿하고 달콤하다.
"허억, 헉……!"
이게 뭐야.
이게 도대체 뭐야!
내 기억이 아니다.
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여자를, 저렇게 웃고 있는 여자를 칼로 찌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하지?
칼자루를 쥐었던 손의 감촉, 피 비린내, 심지어 놈이 느꼈던 그 역겨운 희열까지.
마치 내가 저지른 일처럼 모든 감각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놈이 발광하며 내 손을 뿌리치려 했다.
놈의 발길질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퍽. 퍽.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쏟아졌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을 잠식한 타인의 기억이 주는 고통이 너무 커서, 육체의 고통 따위는 묻혀버렸다.
손을 떼야 한다.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걸 계속 잡고 있으면 내 머리가 터져버릴 거라고.
하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자석처럼, 놈의 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기억은 댐이 터진 것처럼 밀려들어왔다.
쓰레기봉투. 검은 비닐.
토막 난 손가락.
한강 둔치. 갈대밭.
아무도 모를 거야. 완벽해.
"크아아악!"
나는 짐승 같은 비명을 질렀다.
내 비명 소리에 놈도 겁을 먹었는지 멈칫했다.
내 눈,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마 핏발이 서서 뒤집혀 있지 않을까.
"너, 너 이 새끼……."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의 쇳소리 같았다.
"그 여자...... 왜 죽였어?"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포.
그것은 단순한 체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을 들켜버린 자의 원초적인 공포였다.
"무, 무슨 소리야! 미친놈이!"
놈이 필사적으로 발을 휘둘렀다.
내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제야 놈의 발목을 잡고 있던 내 손이 풀렸다.
연결이 끊어졌다.
하지만 머릿속의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뇌가 팅팅 부어오르는 느낌.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욱, 우웩!"
나는 바닥에 엎드려 위액을 토해냈다.
빗물과 흙탕물, 그리고 내 피와 토사물이 뒤섞여 바닥을 더럽혔다.
도망가는 놈의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잡아야 하는데.
저 새끼, 단순한 절도범이 아니다.
살인범이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
하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 감각마저 아득해져 갔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건, 잿빛 하늘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힌 하나의 잔상.
오른쪽 손목에 있는 나비 문신.
그게 누구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오늘, 내 머릿속에 타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내 인생은, 이제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