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침묵의 카르텔
"한 병 더 주세요."
초록색 소주병이 테이블 위에 퉁명스럽게 놓였다. 비 내리는 포장마차.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천막을 때렸지만, 우리 테이블을 감싼 무거운 침묵을 깨지는 못했다.
이수진은 말없이 소주잔을 비웠다. 그녀의 얼굴은 평소처럼 차가웠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진이 빈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초능력자다?"
"초능력은 무슨. 그냥 저주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안주로 나온 오이 조각을 씹었다. 말해놓고도 웃겼다. 대한민국 경찰이, 그것도 강력계 형사가 프로파일러 앞에서 '나 초능력 있어요'라고 고백하다니. 당장이라도 수갑 차고 정신감정 받으러 가야 할 판이다.
"맨살이 닿으면 기억이 보인다. 그것도 아주 엿 같은 기억들만."
"……."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나도 안 믿기니까. 근데 다람쥐 그 새끼, 자살 아니야. 내가 봤어. 양복 입은 놈들이 억지로 약 먹이는 거."
수진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미친놈 취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진지했다. 그녀의 프로파일링 회로가 내 헛소리를 분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증명해 봐."
"뭐?"
"네 말이 사실이라면, 증명해 보라고. 지금 당장."
수진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풀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가죽 끈이 낡은, 투박한 남성용 시계였다.
"이거, 만져봐. 내가 이 시계랑 얽힌 기억이 뭔지 맞혀봐."
나는 시계와 수진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시험이다.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의 공조는 끝이다. 아니, 나는 그냥 미친 형사로 낙인찍혀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후회 안 해?"
"거짓말이면 죽을 줄 알아."
"네 기억이 아닐 수도 있어. 물건에 남은 사념은 랜덤이라서."
"상관없어. 해."
나는 심호흡을 했다. 진통제 기운이 떨어져 가는지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나는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계의 가죽 줄을 움켜쥐었다.
지잉-
왔다. 익숙한 이명과 함께 시공간이 뒤틀렸다. 포장마차의 소음이 사라지고, 하얀 병실이 보였다.
산소호흡기 소리. 쉭, 쉭. 말라비틀어진 손. 그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수진. '아빠,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왔어.' 눈물. 멈추지 않는 눈물. 시계를 풀어주는 아빠의 손. '우리 딸…… 훌륭한 경찰 돼야지.' 심전도 모니터의 삐- 소리.
"크윽……."
나는 시계에서 손을 뗐다. 슬픔. 너무나 깊고 진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쳤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건 내 감정이 아니다. 그날, 병실에서 수진이 느꼈던 절망이다.
"……병원이었어."
내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산소호흡기 낀 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이었고. 네가…… 늦게 도착해서 죄송하다고 울었어."
수진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버지가 이 시계 풀어주면서 말했지. 훌륭한 경찰 되라고."
쨍그랑.
수진이 들고 있던 소주잔을 떨어뜨렸다.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녀는 입을 막은 채 나를 바라봤다. 공포와 경악,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
"너…… 그거 어떻게……."
"말했잖아. 보인다고."
나는 장갑을 다시 끼며 땀을 닦았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우리 아빠 유언……."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황급히 시계를 집어 다시 손목에 찼다. 마치 자신의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이제 믿냐?"
나는 깨진 잔을 피해 새 잔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수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혼란스러울 것이다. 평생을 논리와 이성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이런 비과학적인 현상은 받아들이기 힘들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프로였다. 잠시 후, 수진은 표정을 굳히며 잔을 받았다.
"좋아. 인정."
그녀가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네가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친 거네."
"그렇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까, 나 같은 돌연변이도 나오는 거겠지."
"그럼 다시 정리해. 다람쥐가 죽던 순간, 네가 본 기억."
수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야 진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검은 양복들. 놈을 자살로 위장했어. 그리고 마지막에 귓속말을 했지. '박태산 의원님이 전해달라신다'고."
"박태산……."
수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대어였네. 다람쥐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이 너무 깔끔해서 의심스럽긴 했어. 보통 우발적 살인이면 증거 인멸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거든."
"놈들은 프로야. 뒤처리가 깔끔해. 다람쥐 유서도 조작된 거고."
"문제는 증거야."
수진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네 기억은 법적 효력이 없어. 우리가 '박태산이 범인입니다'라고 해봤자,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될 거야. 아니, 그전에 서장 선에서 커트 당하겠지."
"그래서 네가 필요해."
나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내가 본 기억을 토대로, 네가 물적 증거를 찾아내. 놈들이 놓친 아주 사소한 흔적이라도."
"박태산은 차기 대통령 0순위야. 경찰청장도 쩔쩔매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건드리면, 뼈도 못 추려."
"알아. 무서우면 빠져도 돼."
나는 짐짓 쿨한 척 말했다. 사실 수진이 빠지면 나는 정말 답이 없다. 혼자서 그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까.
수진이 나를 빤히 보더니, 피식 웃었다.
"누가 무섭대? 재밌어서 그러지."
그녀가 빈 병을 들어 보였다.
"나 승진 누락된 거 알지? 이번에 제대로 한 건 해서, 서장 놈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거든."
역시 이수진. 독한 여자다.
"근데 강도윤."
"어."
"너 괜찮아?"
"뭐가."
"그거 볼 때마다, 아파 보이던데. 아까 내 시계 만질 때도 인상 팍 쓰고."
"……견딜 만해."
"거짓말."
수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내 앞에 술을 채워줬다.
"파트너로서 경고하는데, 약 너무 많이 먹지 마. 너 그러다 간보다 뇌가 먼저 녹겠다."
"잔소리 끄고 마셔. 내일부턴 전쟁일 테니까."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하지만 더 이상 춥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내 예감은 적중했다. 아니, 예상보다 더 최악이었다.
[마포 한강변 토막 살인 사건, 피의자 자살로 수사 종결]
경찰서 로비의 대형 TV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서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피의자 김 모 씨는 생활고를 비관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경찰은 피의자의 유서를 토대로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예정이며……."
"지랄하고 있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우발적 범행? 생활고? 다람쥐 놈 통장에는 출처 불명의 돈이 수천만 원씩 꽂혀 있었을 텐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분위기가 싸했다. 최 팀장은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박 형사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왔냐."
팀장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이게 뭡니까? 수사 종결이라뇨? 보강 수사도 안 합니까?"
"위에서 끝내라잖아! 나보고 어쩌라고!"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마 밤새 술을 마셨거나, 잠을 못 잤거나. 혹은 분해서 울었거나.
"다람쥐 부검 결과는요? 약물 반응 안 나왔습니까?"
"수면제 성분이 나오긴 했는데, 치사량은 아니래. 그리고 본인이 처방받은 기록이 있어서 타살 혐의점 없단다."
완벽하다. 놈들은 다람쥐가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게 한 것부터 설계했을 것이다.
"강 형사."
팀장이 힘빠진 목소리로 불렀다.
"너, 당분간 휴가 좀 가라."
"네?"
"서장님 특별 지시야. 뇌진탕 후유증도 있고 하니까, 머리 좀 식히고 오라고."
"하! 지금 저보고 손 떼라는 겁니까?"
"눈치 깠으면 좀 가라! 서장님이 너 주시하고 있어. 어제 회의 도중에 네가 멋대로 나가서 설치고 다닌 것 때문에 벼르고 있다고."
쫒겨나는 거다. 진실에 너무 가까이 간 대가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들이받아봤자 소용없다. 서장은 이미 박태산의 라인을 탔고, 경찰 조직 전체가 침묵의 카르텔이 되어버렸다.
"……알겠습니다."
나는 책상 정리를 하는 척하며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몰래 챙겨둔 USB를 주머니에 넣었다. 1장 사건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CCTV 자료들이 들어있는 파일이다.
"갈게요."
나는 짐을 챙겨 나왔다. 복도 끝에서 이수진과 마주쳤다. 그녀도 짐을 챙긴 상태였다.
"너도?"
"어. 본청 복귀 명령 떨어졌어. 협조 끝났으니까 꺼지라네."
수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잘됐네. 공식적으로 우린 이제 백수야."
"비공식적으로는?"
"특수수사팀이지."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 낡은 SUV에 올라타자마자, 수진이 노트북을 열었다.
"자, 이제 진짜 수사를 해보자. 서장 브리핑은 잊어버리고."
화면에 현장 사진들이 떴다. 한강 갈대밭. 참혹하게 훼손된 시신.
"범행 수법이 너무 정교해. 우발적 범행이라면 이렇게까지 손가락을 깔끔하게 자를 수 없어. 도구도 펜치를 썼다고 했지?"
"어. 다람쥐 기억 속에선 그랬어."
"손가락 열 개를 다 잘랐어. 근데 이상한 건, 자른 손가락을 가져갔다는 거야. 보통은 현장에 버리거나 묻거든. 근데 시신 주변 어디에도 손가락은 없었어."
"전리품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서명(Signature)일 수도 있지."
"서명?"
"자신이 했다는 표식. 혹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두통이 오겠지만, 참아야 한다.
컨테이너 안. 다람쥐가 펜치로 손가락을 자른다. 뚝. 뚝. 박태산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가 웃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와인 잔…… 아니, 와인 잔이 아니다.
"잠깐."
눈을 번쩍 떴다.
"박태산이 뭘 들고 있었어."
"뭐?"
"처음엔 와인 잔인 줄 알았는데, 아니야. 유리병이었어. 작은 유리병."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 담긴 무언가. 액체 속에 둥둥 떠다니는 하얀 물체.
"손가락……."
"뭐라고?"
"잘린 손가락을, 그 유리병에 담았어. 마치 수집하듯이."
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컬렉터(Collector)였어? 박태산이?"
"그런 것 같아. 놈은 살인을 즐기는 걸 넘어서, 전리품을 수집하고 있어."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권력형 비리 정치인인 줄 알았는데, 그 속은 썩어 문드러진 사이코패스였다. 그런 놈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수진아. 혹시 과거 데이터베이스에 비슷한 사건 없어? 손가락 절단, 그리고 시신 유기."
수진이 자판을 두드렸다. 빠르게 데이터가 검색됐다.
"비슷한 수법은 몇 개 있어. 조폭들의 보복 범죄나, 원한 관계."
"아니, 좀 더 오래전 거. 박태산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박태산은 10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 신인이었다. 그전에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만약 놈의 이런 취미가 하루이틀 된 게 아니라면?
"10년 전……."
수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찾았다."
"있어?"
"2014년. 동남아 여행객 연쇄 실종 사건."
마인드맵에서 봤던 그 사건이다. 미제로 남았던.
"당시 태국과 필리핀에서 한국인 여행객 4명이 실종됐어. 시신은 못 찾았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정황상 타살이 확실시됐지. 근데 특이점이 있어."
수진이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배달된 소포."
화면 속 사진.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건,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손가락 하나였다.
"이거야."
확신이 들었다. 박태산이 들고 있던 그 유리병과 똑같았다.
"당시 이 사건, 현지 경찰이 수사하다가 흐지부지 종결됐어. 근데 그때 박태산이 어디 있었는지 알아?"
수진이 박태산의 과거 행적을 띄웠다.
[2014년, (주)태산건설 동남아 지사 설립 및 현지 시찰]
"놈이 거기 있었어."
퍼즐이 맞춰졌다. 10년 전, 동남아에서 시작된 놈의 사냥.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권력을 쥔 뒤, 다시 시작된 살인.
이번 사건은 단순한 일회성 범죄가 아니다. 연쇄살인의 연장선이다.
"빙고."
수진이 차갑게 웃었다.
"꼬리 잡았다, 박태산."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놈의 꼬리는 생각보다 훨씬 길고, 더럽고, 위험해 보였다. 우리가 건드린 건 단순한 살인범이 아니라, 10년 동안 피를 먹고 자란 거대한 괴물이었다.
"어디로 갈까?"
수진이 물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갈 곳은 정해졌다.
"그때 그 실종자 가족들. 만나봐야겠어."
"10년 전 사건이라 기록 찾기 힘들 텐데."
"찾아야지.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경찰서 건물 꼭대기,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저 깃발 아래서 정의를 외치던 나는 이제 없다. 이제부터는 야생이다. 법전 대신 기억을, 수갑 대신 증오를 무기로 싸워야 한다.
"출발해."
차가 굉음을 내며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당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놈의 손목을 비틀어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