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죽은 자의 시그니처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서울의 지도가 찢겨나간 듯한 곳이었다. 재개발이 멈춘 달동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 사이로 곰팡이 냄새 섞인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기야?"
내가 물었다. 이수진은 노트북 화면과 번지수를 번갈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김민석 실종자 어머니, 최 영자 씨 댁."
김민석. 10년 전 필리핀 여행 중 실종된 대학생. 당시 나이 23세. 꿈도 많고 겁도 많았던 청년은 여행 사흘 만에 사라졌고, 한 달 뒤 손가락 하나만 소포로 돌아왔다.
"가자."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가파른 언덕길. 깨진 보도블록. 이곳의 시간은 10년 전, 아들이 사라진 그날에 멈춰있는 것 같았다.
녹슨 대문 앞에 섰다. 초인종은 고장 나 있었고, 문패 대신 '개조심'이라는 낡은 스티커만 붙어 있었다.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똑똑. 대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안 계시나?"
"아니, 계셔."
수진이 담장 너머를 가리켰다. 마당 한구석, 쪼그리고 앉아 파를 다듬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허리가 굽은 자그마한 체구.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어머니,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수진이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 삶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눈빛이었다.
"경찰……?"
노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볼일 없으니까 가요. 내 아들 죽었다고 사망 신고한 게 언젠데 또 찾아와."
"사망 신고 때문이 아닙니다. 민석 씨…… 억울함 풀어드리려고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억울함'이라는 단어에 노인의 손이 멈췄다. 파를 다듬던 칼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억울함……."
노인이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10년이야.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던 양반들이, 이제 와서 뭘 푼다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범인, 잡을 수 있습니다."
내 확신에 찬 목소리에 노인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간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아니 썩은 동아줄이라도 매달리고 싶은 절박함이었다.
끼익-. 녹슨 대문이 열렸다.
방 안은 어두웠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고, 벽지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하지만 한쪽 벽면만은 깨끗했다. 그곳엔 김민석의 영정 사진과 대학 시절 상장들, 그리고 그가 쓰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제단(祭壇). 어머니는 10년째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물이라도 마셔요."
노인이 밍밍한 보리차를 내왔다.
"그래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게 무슨 소리유?"
수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근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법이 민석 씨 사건과 아주 흡사합니다. 저희는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동일범……."
노인의 주름진 손이 떨렸다.
"그때 경찰들은 그랬지. 내 아들이 현지 마약상하고 엮여서 변을 당한 거라고. 착해 빠진 우리 민석이가 마약은 무슨…… 담배도 못 피우는 애였는데."
분노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말투. 수사는 종결됐고, 세상은 잊었지만, 어미는 잊지 못했다.
"어머니. 혹시 그때 받으셨다는 소포…… 아직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본론을 꺼냈다. 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끔찍한 걸 왜 찾어."
"범인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거라도 좋습니다. 상자나, 포장지나……."
노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낡은 보자기 하나를 꺼내왔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보자기.
"경찰 놈들이 손가락은 가져갔어. 증거물인지 뭔지 한다고. 근데 이건 안 가져가더라고. 쓰레기라고."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는 누런 택배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해외 배송 송장이 붙어 있는, 30cm 남짓한 작은 상자.
[To. Kim Min-seok's Home] [From. Unknown]
발신인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상자를 누가 보냈는지.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진통제는 아까 차에서 먹었다. 각오해야 한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사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독해지기도 하니까.
장갑을 벗었다. 수진이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봤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손을 뻗었다. 종이 상자의 까칠한 감촉이 손가락에 닿았다.
쿠웅-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어두운 방 안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습기.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야의 끈적한 공기. 천장에서 돌아가는 낡은 실링팬 소리. 덜컹, 덜컹.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필리핀? 태국? 어느 허름한 숙소 방 안이었다.
"흐음~"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하얀색 런닝셔츠. 땀에 젖어 근육질 몸매가 드러났다. 젊다. 30대 초반? 아니면 20대 후반? 얼굴 윤곽이 지금보다 훨씬 날카롭지만, 눈매는 그대로였다.
박태산. 젊은 시절의 박태산이었다.
그의 앞에는 투명한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포르말린 용액 속에 둥둥 떠 있는 새끼손가락. 절단면이 깔끔했다.
"선물은 포장이 중요하지."
박태산이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그의 손에는 붉은색 와인이 들려 있었다. 아니,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그는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가, 유리병 안으로 '푸-' 하고 뿜어 넣었다.
"……!"
미친놈. 포르말린에 와인을 섞었다. 이게 놈의 시그니처였다. 단순한 방부 처리가 아니라, 자신만의 향기를 입히는 의식.
박태산은 만족스러운 듯 유리병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상자 안에 병을 넣고, 완충재로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현지 신문. 날짜는 2014년 8월 12일.
"잘 가라, 민석아. 네 엄마가 좋아하겠다."
박태산이 상자 뚜껑을 덮었다. 테이프를 붙이는 손놀림이 경쾌했다. 마치 생일 선물을 포장하는 사람처럼.
그때,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현지인? 아니, 한국인이다. 덩치가 크고 문신이 있는 남자.
"이사님, 처리했습니다. 시체는 악어 농장에 넘겼고요."
"깔끔하네. 뒷말 안 나오게 해."
"걱정 마십시오. 근데 이사님, 이번 건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한국 여행객이라 실종 신고 들어올 텐데."
박태산이 뒤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김 실장."
박태산이 웃었다. 아주 인자하고, 섬뜩하게.
"내가 왜 건설사 때려치우고 정치하려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건물 짓는 건 재미없거든. 너무 정직해. 1층 올리면 2층 올려야 하고."
박태산이 포장된 상자를 툭툭 쳤다.
"근데 정치는 말이야. 이 상자 하나로도 세상을 지을 수 있어. 공포라는 시멘트로."
"……."
"이거 보내면, 유가족들은 평생 지옥에서 살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지옥 위에서 군림하는 거지. 신처럼."
박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목에 있는 시계가 번쩍였다. 롤렉스? 아니, 더 비싼 거다. 파텍 필립. 시계 뒷면에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P.T.S]
번쩍!
연결이 끊어졌다.
"허억!"
나는 현실로 튕겨 나왔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코피가 주루룩 흘러내려 상자 위로 떨어졌다.
"형사 양반! 왜 이려!"
노인이 놀라서 휴지를 뽑아줬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코를 막으며 수진을 쳐다봤다.
"봤어……."
"뭘?"
"와인."
"와인?"
"놈이 유리병 안에 와인을 섞었어. 그리고…… 시신은 악어 농장에 버렸고."
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엽기적인 디테일. 상상으로는 지어낼 수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놈이 찬 시계. 파텍 필립. 뒷면에 이니셜 P.T.S."
"박태산……."
확실하다. 놈은 10년 전부터 살인을 '정치적 도구' 혹은 '지배의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사람을 죽여서 공포를 심고, 그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물.
"이 상자, 증거가 될 거야."
내가 상자를 가리켰다.
"상자 안쪽에…… 와인 자국이 묻어 있을 수도 있어. 놈이 입으로 뿜었으니까, 타액 DNA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고."
10년 전이다. DNA가 남아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요즘 과학 수사 기술이라면, 미세한 성분이라도 검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와인 성분이라도 나온다면, 박태산의 취향과 연결할 수 있다.
"어머니."
내가 노인의 손을 잡았다.
"이 상자, 저희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민석 씨 한, 반드시 풀어드리겠습니다."
노인은 내 피 묻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진심을 읽으려는 듯.
"……가져가."
노인이 말했다.
"대신 약속해. 그놈, 누군지 몰라도 내 아들처럼 똑같이 만들어주겠다고."
섬뜩한 저주. 하지만 그것은 어미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정당한 요구였다.
"약속합니다. 더한 꼴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상자를 증거물 봉투에 담았다. 집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동시에 뜨거웠다. 이제 우리 손에 '무기'가 생겼다.
골목길을 내려오는데, 수진이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잠깐."
"왜?"
"누가 있어."
수진의 시선이 골목 어귀 전봇대 뒤를 향했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시동을 켠 채 정차해 있었다. 틴팅이 짙어서 안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미행한 건가?"
"아니. 우리가 올 줄 알고 기다린 거야."
수진이 낮게 읊조렸다.
"휴대폰 꺼내지 마. 도청당하고 있을 수도 있어."
검은 세단의 창문이 스르르 내려갔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아까 기억 속에서 박태산을 '이사님'이라고 부르던 그 덩치 큰 남자. 김 실장.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박태산의 충실한 사냥개.
놈이 우리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죽어.'
명백한 경고였다.
"뛰어!"
내가 소리쳤다. 동시에 세단이 굉음을 내며 우리 쪽으로 돌진했다.
우리는 좁은 골목길로 몸을 날렸다. 쾅! 세단이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그 틈을 타 우리는 미로 같은 달동네 골목으로 파고들었다.
"헉, 헉…… 미친 새끼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수진도 안색이 창백했다.
"들켰어. 우리가 여기 온 거, 박태산이 알고 있어."
"오히려 잘됐지."
나는 증거물 봉투를 품에 꼭 안으며 씨익 웃었다.
"놈이 쫄았다는 증거니까."
박태산은 안다. 과거의 망령이 자신을 쫓아왔다는 걸. 그리고 그 망령이, 이제 곧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거라는 걸.
우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숨바꼭질은 끝났다. 전면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