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사건 이후, 김도윤은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검사로서의 일상을 보내려 안간힘을 썼다. 아침 일찍 검찰청에 출근해 산더미 같은 서류를 처리하고, 복잡한 회의에 참석했으며,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피의자들을 압박하는 신문에도 들어갔다. 그의 날카로운 분석력과 뛰어난 사건 해결 능력은 여전했다. 오히려 박광수라는 거대한 미제 사건을 해결하며 '천재 검사'라는 명성이 검찰청 내에서 더욱 굳어진 듯했다. 동료들은 그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의 의견을 구하려 했다.
"김 검사님, 이번 마약 조직 사건 말입니다. 윗선은 도무지 꼬리가 잡히질 않아서요. 압수수색 영장도 여러 번 기각당하고… 혹시 뭔가 감 오시는 부분이라도 있으십니까?"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한 수사관이 김도윤의 옆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김도윤은 숟가락으로 식판을 툭툭 건드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의 얼굴에는 감정의 큰 동요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초점 없는 눈빛이 감돌았다. 마치 깊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혹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음… 제가 맡은 사건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조직의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는 데 집중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분명 허점이 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약간 쉬어 있었다.
"아이고, 김 검사님도 워낙 바쁘시니까요. 그래도 김 검사님 직감은 진짜 도사 수준이라… 조언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수사관은 멋쩍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김도윤의 짧은 한마디에도 깊은 통찰이 담겨 있음을 느낀 듯했다.
김도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지만, 입꼬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더 이상 '직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잔류 사념'이라는 비정상적인 힘, 그리고 그 대가로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환각과 악몽이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그는 미묘하게 동떨어져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뒤에 갇힌 것처럼, 그들과 세상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겨났다. 그들은 그를 '천재 검사'로 보았지만, 김도윤은 자신이 그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숨기는 '위선자'처럼 느껴졌다.
퇴근 후에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동료들과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모임을 피했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희미해졌고, 그는 점차 고독해졌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악몽과 싸워야 했고, 낮에는 자신이 저지른 '심판'의 죄책감과 싸워야 했다. 그의 내면은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창밖으로 빌딩 숲의 불빛들이 화려하게 반짝였지만, 그에게는 그저 공허한 빛들의 잔치로만 보였다. 그는 자신이 마치 세상과 단절된 섬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에는 늘 차가운 커피잔이 들려 있었지만,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을 헤매는 듯했다. 그는 이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감추는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전에 없이 축 처져 있었고, 등은 살짝 굽은 듯했다.
초능력 사용의 후유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박광수를 처단한 이후, 잔류 사념은 김도윤의 정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은 더욱 선명해지고 잔혹해졌다.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마치 4D 영화처럼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살점 찢기는 소리, 뼈 부러지는 소리, 피가 튀는 감각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박광수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는 이제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잔상처럼 남았다.
"엄마! 살려줘! 흐느윽… 엄마아아!"
"크크크… 이 더러운 것들… 소리 질러봐라… 하하하!"
새벽 3시. 김도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발작했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피로가 짙게 서려 있었다. 이제 그는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잠들어도 악몽이 그를 덮쳤고, 깨어 있으면 두통이 그를 괴롭혔다.
낮에도 불현듯 잔류 사념의 일부가 스쳐 지나가 환각이나 환청을 유발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수사 보고서를 검토하던 중, 갑자기 종이 위에 검붉은 혈흔이 번지는 환각이 보이거나, 복도를 걷다가 아이들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때로는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손에서 섬뜩한 잔류 사념이 느껴져 비틀거릴 때도 있었다. 그의 이성은 이런 비현실적인 현상들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했지만, 그의 몸과 정신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현실과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김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얼굴이 많이 안 좋으신데요. 혹시 병원에 가보시는 게…."
점심시간 후, 동료 검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김도윤의 핼쑥한 얼굴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김도윤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요즘 잠을 좀 설쳐서 그렇습니다. 신경 쓸 일도 많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커피잔을 들고 있었지만, 그 작은 무게조차도 버거운 듯했다.
두통은 끊임없이 그의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욱신거리는 통증은 마치 뇌를 망치로 두드리는 듯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는 하얀 알약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진통제는 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점심 식사 후, 그리고 퇴근 후에도 어김없이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알약의 개수는 점점 늘어갔고, 효과는 점점 미미해졌다.
'이러다가는… 정말 미쳐버릴지도 몰라. 아니, 이미 미쳐가고 있는 건가.'
그는 사무실 화장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바라봤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핼쑥했다. 며칠 사이 급격하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인간의 형태를 잃어가는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비질란테로서의 힘은 커지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그의 고독한 싸움은 이제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는 거울 속 낯선 자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박광수 사건 이후, 도시에는 기묘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곧 현실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법의 심판을 비웃던 다른 흉악범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거나 실종되는 사건들이 간헐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그림자가 도시를 덮친 듯했다.
첫 번째 사건은 한 재벌 2세였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여러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거액의 합의금과 변호인단의 활약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었다. 불과 며칠 뒤, 그는 자신의 호화로운 별장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은 단순 실종으로 처리하려 했지만, 현장에는 어떠한 침입 흔적도, 싸움의 흔적도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박광수 사건과 흡사했다.
두 번째 사건은 다단계 사기로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사기꾼이었다. 그는 증거 불충분과 교묘한 법망 회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고급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 내렸지만, 그의 몸에는 자살로 보기 힘든 미세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유서는 없었다. 그의 손톱 밑에는 미세한 흙먼지가 박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은, 학교 폭력으로 한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사회로 돌아온 가해 학생이었다. 그의 시신은 며칠 후 인적이 드문 폐공장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외부 침입을 의심했지만, 역시나 현장은 너무나 깔끔했다. 시신의 주변에는 어떠한 유류품도 없었다.
"젠장! 또 비질란테 짓이잖아! 이건 누가 봐도 똑같은 수법이라고!"
서울지방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회의실, 김영호 형사가 격분하여 회의실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연이은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수사팀 전체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김 형사님, 아직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식의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한 후배 형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혼란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단정할 수 없다고? 증거가 없다고? 생각해봐라! 법이 풀어준 놈들만 골라서 사라지고 죽어. 그것도 죄다 똑같은 수법으로! 침입 흔적 없고, 현장 깔끔하고, 시신만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발견된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이건 비질란테의 경고장이라고!"
김영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에는 비질란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한편으로는 법이 하지 못하는 정의를 대신하는 존재에 대한 미묘한 기대감과, 다른 한편으로는 법치주의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 그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직감했다.
"그럼 이 모든 사건을 한 사람이 저질렀다는 말씀이십니까?"
다른 형사가 물었다.
"아니면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생겼거나. 어느 쪽이든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 그림자 영웅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대로 두면 사회는 무법천지가 될 거야."
강력계 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눈에는 비질란테를 반드시 잡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경찰은 '비질란테 특수 수사팀' 창설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김도윤은 검찰청 사무실에서 이 모든 사건들을 뉴스와 내부 보고서를 통해 접했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외로운 심판자가 아니었다. 그의 행동은 또 다른 '비질란테'를 탄생시키고 있거나, 혹은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이제 대중은 그를 영웅으로 불렀지만, 그의 내면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는 노트북 화면을 끄고, 차가운 사무실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손에 들린 진통제 한 통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의 고독한 싸움은 이제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괴물이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었다. 단지 아이들의 비명만이, 그의 정신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