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알을 깰 수 없었더라도

헤메는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니까

by U의 책장

자주 인용되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입니다. 여러분이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감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중학교때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감명깊었다기 보단 성취감 쪽에 가까운 감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다지 이해 못했으면서 이해한 줄 착각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지금 돌이켜 보면 부끄러울 정도의 몰이해를 독후감에 그대로 적어놓기도 했더라구요. 그래도 그 나이대 치고는 꽤 똑똑한 학생이었다고 자부하는데 말이죠...


당연한 일입니다. 그때는 한 번도 알을 깨고 나와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독서도 필요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해서 읽었던 것이구요. 왜 하필 데미안이냐면, 중학생이 읽어야 하는 필독서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해 못해서 고개를 갸웃 했을 중학생이 저 혼자는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이 나름 위안이 됩니다. (초~중학생 필독서에 데미안을 넣어둔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누군가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멋부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두는 자기만의 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종류의 알 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종류의 알을 가지고 있지요. 어떤 알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고, 또 어떤 알에는 ‘꿈’이라는 리본이 매여 있기도 하죠.

사람은 그런 수많은 알들로 이루어진 둥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 알들이 깨지지 못하고 남을 때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알들은 외적인 압력에 조금씩, 조금씩 균열이 갑니다.

야근하면서 한밤중의 창 밖이 서럽게 느껴진다거나, 문득 넥타이나 와이셔츠가 갑갑하게 느껴진다거나.

하지만 우리는 아직 부화할 때가 아니라는 이유로 알을 더 단단히 감싸고 예쁘게 장식해 둬요. 청춘, 열정, 가능성... 그렇게 아름답게 금칠 된 이름들은 사실 전부, 아직 깨지지 못한 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알은 끝내 깨지지 못한 채 함께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깨지도록 놔뒀어야 했을 수도 있어요.

성찰을 주는 수많은 책과 강의들은 알을 깨고 나오길 종용합니다. 설령 이루지 못해도, 깨져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후회는 덜할 거라고. 마치 재능이 없어도 방구석에 있는 기타를 보면 멋지지 않냐고 말한 노엘 갤러거의 말 처럼요. 저도 동의하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멋질 거에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구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장식만 해 둔 알이 있다고 과연 잘못된 일일까요?

저도 자신의 이런 알들을 보고 종종 후회하곤 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분명 다들 재능있다고 해 줬는데. 자책도 자주했지요. 원래 아름다운 꿈일수록 이루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법이니까요. 저녁 9시, 혼자 남은 회사에서 작업을 하며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애써 농담인 척 말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분 모두에게 깨지 못한 알이 있다고 삶이 실패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을 살아가는데도 버거운 사람들에게는 알은 매일매일을 버텨내는 원동력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10대 때 친구들 그립네'라거나 '나는 이런 꿈이 있었지'라는 마음속 여유로 쓰인다면, 그 알은 그것만으로도 소임을 다한 거지요.


정말로 그래도 되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상은 하루하루 살아가기만 해도 버겁고, 현상 유지만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철학자건 누구건 그 와중에도 더 성숙한 사람이 되라며 알을 깨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보면 어쩐지 진전이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보잘것 없이 느껴지지요. 하지만 깨지 못한 알 역시 마음 속 둥지에서 소중한 감정, 시간, 추억을 담고 있는 그릇이에요. 그러니 이 지면을 빌어서 저만이라도 이렇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알을 깰 수 없었더라도 괜찮아요. 알을 깰 수 있었건 아니건, 당신의 하루는 그 자체로 가치 있었어요.
조심스럽게 품어주세요. 알은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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