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는 소설에 아주 푹 빠져있던 아이였습니다. 길거리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걸을 정도로요. (이러다 사고 납니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수많은 작가 분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장식해 주셨지만, 그 중 한 분만 꼽자면 역시 이영도 작가님이 떠오릅니다.
매력적인 세계관, 장엄한 서사, 이야기 전체 줄기를 꿰뚫는 명언... 순식간에 모든 작품을 섭렵했고, 자연스럽게 소설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가 있다니! 나도 써 볼 거야!"
하지만, 쓰고 싶다고 바로 이야기가 나오는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팬픽션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가 쓴 팬픽에 그런 댓글이 달렸어요.
'원작 그대로 베껴 쓰면 표절이지 왜 팬픽을 써?"
어린 마음에 깜짝 놀라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내가 뭐 잘못한걸까?
찾고 또 찾아본 끝에 나오는 결론은 이랬습니다.
"팬픽션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침해고, 저작권자가 관용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괜찮을거라고 스스로를 달래고는 팬픽을 마저 썼습니다.
이 기억이 다시 떠올랐을 때는, 몇 년이 지나 이제는 팬픽이 아닌 나만의 창작물을 쓰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소설 초고를 써서 주변에 보여주던 어느 날, 이런 피드백이 돌아왔습니다.
'이영도 작가님 영향을 너무 받은 거 같아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설정, 분위기, 세계관... 나도 모르게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고 있었던 거죠.
물론, 이 또한 영향을 받은 정도지 표절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팬픽을 쓰다 설정을 따라했던 습관은, 나도 모르게 더 많은 특징을 흉내내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럼 그 다음은? 문장도 따라하게 될지도...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저작권이 위험할 수준까지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저작권 이야기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곤 해요.
그야, 다들 알고 있잖아요?
"저작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건 당연한 거지."
"나쁜 의도로 쓰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창작은 기본적으로 모방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문제에요.
우리는 눈 앞의 물건을 따라 그리며 그림을 배우고, 현실에 있는 사건을 모방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요.
그래서 창작에서 '유사성'은 사실 우리 생각보다 모호하고 경계가 흐릿해요. 앗 하는 사이에 넘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선이죠. 어쩌면, 지나치고 나서도 본인은 모를지도 몰라요.
저에게 저작권 법이 알려준 것은 단순한 법적 경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존중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진심으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감사함과 경계심을 동시에 품는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저작권 법은 단지 법적 경계의 선이 아니라, 그런 존중을 언어로 바꾼 약속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