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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 빛을 부여받은 어둠이 짊어질 이야기

영화 <썬더볼츠*(2025)> 리뷰

by 더 레터박스

이분법 사이의 책임과 질문

'MCU'가 지녔던 최고의 강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히어로'의 고정관념에 대한 마블의 질문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MCU는 일각의 견해에서 '아동용'이나 '금전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편견을 지닌 히어로물에게 역설적으로 그들의 사실적이고 연약한 모습을 그려 캐릭터에게 애착과 공감을 부여했다. 마블은 '영웅의 여정 12단계'를 거친 여러 캐릭터들의 배경과 소통 사이, 이념과 갈등이라는 톱니바퀴를 심어 모든 캐릭터의 서사가 맞물려 움직이는 '인피니티 사가'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MCU가 이러한 인기를 얻은 경위에 대해 여러 팬들은 히어로가 악당을 무찌르는 시각적 클라이맥스도 사랑했지만, '히어로가 된 영웅'과 '히어로가 되기 전 진행형의 인간'에 대한 연속성, 그리고 더 나은 존재로 변모하기까지의 고민과 반성을 담은 극복 과정으로써의 각 캐릭터들의 서사가 일치단결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더욱 사랑했었다.

그러나, 최근 마블의 행보는 메세지들을 담는 데 너무 치중했던 탓일까. 그들은 이야기를 뒷전으로 하고 뱉어내고자 하는 말을 꺼내기에 급급했다. '고난 없는 히어로'들로 영웅들의 세대 교체를 시도하는 플롯은 과육이 없는 과실과 같았다는 사실을 마블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팬들의 발걸음이 뒤돌고 난 후였다.

케빈 파이기는 결국 '팬들이 원하는 마블'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MCU가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분법 사이의 책임과 질문'이라고.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부터 <데어데블: 본 어게인 시즌 1>을 지나 <썬더볼츠*>까지, 마블은 영웅이 짊어진 책임과 의무 그리고 고뇌를 넘어서, 선과 악 사이의 구원과 징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이 되기 전에,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단순한 한 마디의 어구는 <썬더볼츠*>를 관통한다. 과연 죄악에 더럽혀진 악역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세상은 그들의 죄를 사하는 대신 어떤 책임과 질문들을 그들에게 부여할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구원해 낼 수 있을까.


시놉시스

어벤져스가 사라진 혼란의 시대,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역)의 함정에 빠져, 그녀와 맞서기 위해 과거에 상처와 오명을 지닌 옐레나(플로렌스 퓨 역),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 역), 존 워커(와이엇 러셀 역), 고스트(헤나 존케이 역), 태스크마스터(올가 쿠릴렌코 역), 그리고 소각로 속에 있던 밥(루이스 풀먼 역)은 서로 연대하여 힘을 합친다. 타오르는 소각로 속에서 밥은 행방불명되고, 가까스로 생존한 이들을 추격하는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 역)은 그들과 팀을 결성하여 발렌티나의 음모에 맞서게 되는데...



'히어로의 자격' 에 대한 반문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는 안티히어로

<썬더볼츠*>는 DCEU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처럼 소모용으로 사용되는 메이저 히어로 팀의 대용 팀이라는 점이 유사하나, 이들은 그들이 모이게 된 이유 속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며 진정한 악을 상대하는 안티 히어로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썬더볼츠*>는 스스로의 구원을 망설이는 안티히어로라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이 각 멤버들은 소각로에 갇힌 채 불타 죽기 2분 전, 그저 목숨을 영위하기 위해 처음으로 힘을 합친 뒤 각자의 갈 길을 가려 하지만, 우연의 일치로 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점점 합을 맞추며 팀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센트리에게 5대 1로 싸우다 실패한 후에는 없는 일처럼 각자 갈 길을 간다. 이처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각 캐릭터들이 협력해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제시하며, 그들의 협동 아래에는 의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 표면적으로 썬더볼츠의 각 멤버들은 어벤져스의 각 멤버들의 공통점인 '사명감' 아래에 결집한 것이 맞으나, 내면적으로는 이들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지만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기에 결집한 것이다. 이러한 '안티히어로의 구원 과정'은 '히어로의 구원 과정'인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시간 강탈 작전' 속 어벤져스 멤버들의 흰색 유니폼과 대비되는 썬더볼츠 멤버들의 어두운 전투복으로 비교된다. 그러나 썬더볼츠는 밥을 구하기 위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옐레나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림자 안의 트라우마가 형상화된 방을 건너 마침내 옐레나를 돕기 위해 나타난 씬을 통해, 어벤져스와 입는 색의 옷만 다를 뿐 같은 영웅으로써의 행보를 보인다. 클라이막스의 감정이 폭발하는 이 씬은, 초반부 엘리베이터에서 같이 등을 맞대고 서로를 의지하며 별 모양으로 통로를 오르는 씬의 미장센과, 존 워커의 실수로 하마타면 전부 떨어질 뻔 했던 씬에서부터 '타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는 안티히어로'라는 주제의식을 내포한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서는 영웅들

'회색지대'로써의 캐릭터를 잿더미 속에서 잉태한다

영웅은 악당을 무찌름으로써 영웅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지키는 강자의 책임과 의무를 받아들이는 순간 영웅으로 변모한다. 파괴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치타우리 전투를 마친 뒤, 회색 흙먼지와 잔해를 털어내고 원색의 히어로 슈트를 자랑하며 인류의 영웅이 된 어벤져스와는 다르게, <썬더볼츠*>는 부서진 고층 빌딩의 잔해로부터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검은 전투복 위 회색 콘크리트의 잿더미를 덧입으면서 '히어로'로써의 자격을 쟁취한다. 과거의 죄를 아직 사하받지도 못한 그들은 각자의 전투복에 묻은 먼지의 색상처럼, 스스로의 죄와 타인의 구원이라는 어둠과 빛 사이 '회색지대'에 도달한 오묘한 캐릭터성을 가지게 된다. 발렌티나를 쫒아 간 천막 뒤에서 반강제적으로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씬은, 이들이 타인을 지켜낸 공적과 자신의 손에 묻힌 피가 공존하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썬더볼츠*>는 악행과 고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을 미장센 속 다섯 캐릭터 모두의 얼굴에 빛과 그림자를 같이 드리움으로써 죄의 책임과 구원의 의무를 동시에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이 영화는 그들이 과거의 죄를 사면받고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악인 중 한 명인지, 타인을 돕고 스스로의 면죄를 입증해 낸 영웅이 되었는지에 관해 명료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커다란 빌딩의 잔해를 떠받치며 시민을 구출하는 씬이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옐레나를 구하기 위해 심상 세계에서 보이드로 변해 가는 밥을 함께 저지하는 씬을 통해서 적어도 그들이 과거의 악행으로부터 탈피하여 '인간다움'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하는 현재진행형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까마득한 하늘 속, 한 점의 '검은 빛' 속으로

반쪽 얼굴을 넘어 모든 것을 공허함에 물들인 발 밑의 그림자

마블의 연출법은 상당히 직설적이다. 작중 '공허함'이라는 감정은 빌딩에서 떨어지는 익스트림 롱 샷의 오프닝 속 까만 한 점의 옐레나로부터, 태양을 가리는 어두움으로 전신을 뒤덮은 보이드가 뉴욕 한 가운데 서있는 씬까지 이어지며 <썬더볼츠*>의 주요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특히 보이드가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부르짖으며 손을 뻗어 그림자 속으로 사람들을 가두는 모습을 바스트 샷으로 비추는 씬에서는 빛을 흡수해버리는 색상으로써의 검정이 아니라 '검정빛'을 뿜어내는 절대적인 강함. 그리고 개기일식과도 같은 공허함의 범람을 시각적으로 연출한다. 사람들이 그림자로 빨려들어갈 때 들리는 낮고 짧은 효과음과 조금씩 웅웅거리며 울리는 보이드의 낮은 목소리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무너지는 도시 속 아수라장이 순간 멈춘 듯한 고요함과 함께 뉴욕 상공에 보이드가 처음 등장한 모습은 마치 신이 뉴욕에 강림한 모습을 연상케 하며, 드넓은 하늘 속 한 점의 검정색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밝고 활기찬 배경의 뉴욕을 한순간 암전시킨다.

보이드의 심상 세계는 마치 <인셉션(2010)>속 무중력으로 인해 방 전체가 회전하는 '두 번째 꿈' 을 연상시키듯이,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여러 트라우마와 심적 고통의 순간들을 반복시키는 방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트랜지션을 선보인다. 그러나 <인셉션>과 달리, <썬더볼츠*>의 심상 세계는 '공허함'이라는 감정을 미장센을 통해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옐레나의 심상 세계와 밥의 방에는 키 라이트만 존재해서 인물의 얼굴 반 쪽만을 비추어 대비를 극대화하고,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또한 거울 속에서만 존재하는 밥의 방은, 자가혐오적인 자신의 배경과 자신(보이드)이 지은 죄를 스스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23 아이덴티티(2016)>의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역)과 유사하다. 썬더볼츠의 각 캐릭터들이 각자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전개로 흘러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존재하지만, 플로렌스 퓨의 공허함과 절박함을 드러내는 얼굴 클로즈업 씬들은 그러한 아쉬움을 최소한으로 줄여 준다.



애스터리스크*가 제목에 부여하는 핍진성

<썬더볼츠*>는 팀업 무비가 아니라 '프롤로그'인 이유

마블이 고질적으로 아쉬움을 지적받는 부분은 전체적인 사가(saga)를 진행시키기 위한 장기말로 사용되어 각 영화의 마무리가 아쉽다는 점도 존재한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2023)>와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2025)>처럼, 각 캐릭터들이 메인 이벤트가 되는 영화 - 어벤져스 시리즈 - 에 합류하기 위한 개연성을 부여하는 영화들은 각각의 마무리나 짜임새가 타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조약하다.

<썬더볼츠*> 또한 위 영화들처럼, 조연에 불과했던 캐릭터들을 메인스트림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된 영화이기에, 이 영화도 마무리가 미흡하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보이드가 인격을 지배한 동안 기억을 잃어버린 센트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발렌티나가 체포되지 않으며 권선징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능력 없음, 히어로 없음, 포기도 없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기승전결 중 '결' 부분에서 해결될 줄 알았지만, 이는 후속 작품을 위한 이음새로 사용되어 클리프행어 스타일의 엔딩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단점들은 애스터리스크-각주, 부연설명 혹은 미완성, 임시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가 붙어있는 제목을 통해 최소한의 핍진성을 부여받는다. 마블은 '완성형의 히어로'보다는 '진행형의 인간'을 묘사한다. 그들은 각자의 서사가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영웅이 된다. 애스터리스크를 통해, 이 영화는 임시성을 부여받는다. MCU의 타 팀업 무비 - <어벤져스>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시리즈 - 등과 다르게, <썬더볼츠*>는 작중 마지막의 전투에 돌입해서야 비로소 팀이 된다. 즉, 이 영화는 캐릭터들의 일대기라는 미시적인 관점에서도, 멀티버스 사가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일종의 '각주'와 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페이즈 5의 마지막 영화인 <썬더볼츠*>는, 그것이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 페이즈 6의 프롤로그로 변모한다. 두 번째 쿠키 영상에서 <판타스틱 4: 새로운 출(2025)>의 등장 암시를 통해, 이 영화가 MCU의 변곡점이자 세대 교체로써 작용하기를 소망하는 마블의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




썬더볼츠와 마블이 이겨내야 할 책임과 질문들

우리가 '바랬던' 마블로 향하길 소망하며

2010년대만 해도, MCU는 대한민국 영화계를 자리잡는 터줏대감이었다. 스크린쿼터제에도 불구하고 MCU와 그 배우들은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들이 누리는 인기는, 2008년 <아이언맨>을 필두로 한 각 영웅들의 개인적인 서사와 고뇌, 그리고 그 극복이라는 영웅의 일대기를 충실히 이행한 캐릭터들이 소통과 갈등을 거듭하고, 결국 영웅이라는 고귀한 사명 하에 단결하여 이념과 선악을 초월한 이야기를 선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커다란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과거의 히어로들에게 바통을 건네받은 MCU의 신참 히어로들은 대중에게 환대받지 못했다.

<썬더볼츠*>는 MCU의 팬이었던 필자가 오랜만에 '과거의 향수'를 환기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명료한 연출법과 수려한 미장센, 아크로바틱한 인물들의 격투씬과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익스트림 롱 샷의 전경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절대적인 악 앞에서 고뇌하는 여러 비능력자들의 혈투는 관객을 언더독으로 변모시키기 충분했다. 마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의 캡틴(크리스 에반스 역)과 윈터 솔져의 근접 액션 씬을 생각나게 하는 옐레나의 아크로바틱한 전투 장면은 '블랙 위도우'의 이름을 선사받기에 충분함을 증명해낸다. 또한, 절대적인 힘을 얻었지만 정체성의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센트리(보이드)의 모습과, 각자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결국 타인을 구원해 낸 이전작의 악역들이 나름대로의 고충을 통해 선역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과거 이들이 등장했던 영화 속 각 캐릭터들의 배경 서사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얻은 빛을 수여받는 캐릭터들을 지켜봄으로써 오래된 과거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이야기로 도약하는 캐릭터들을 응원하는 순수한 팬으로써의 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수백 가지의 악행 위로 단 한 번의 선행이 쌓인다. 빛을 부여받은 어둠이 짊어질 책임과 질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고 고될 것이다. 이들은 온통 회색빛이 자욱한 뉴욕의 폐허 한 가운데에서 면죄를 향한 첫 발걸음을 뗐다. 앞으로의 수 많은 이야기 속 겹겹이 이어진 고행들을 거쳐 온 캐릭터들이 마침내 뒤를 돌아볼 때, 그들의 죄는 얇디 얇은 책임과 의무로 가려져 진정한 '히어로'로 칭송받게 될 날이 언젠가는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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