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2019)> 리뷰
<윤희에게>는 의도치 않게 발송된 편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는 영글어 가는 달 아래, 멀어져버렸던 서로를 다시 한 번 끌어당기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강한 인력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강한 척력을 가진다. 두 연인은 인연으로써 그토록 바랬던 재회를 이룩하나, 결국 다시 멀어지며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간다. 그러나 이것은 비정한 고별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편지의 답신과도 같다. 수없이 진실된 감정과 그로 인해 압박받았던 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간 시간이었기에 점차 무뎌지며, 상처 위 새 살이 돋듯 새로운 시간이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한다. 그제서야 그들은 깨닫는다. 도피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과 고통은 결국 재회를 위한 유보였을 뿐이었음을. 두 사람은 단 한 순간도 서로를 떠나보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두 연인으로써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어느 겨울, 따뜻한 어머니(김희애 역)와 그녀의 딸(김소혜 역)과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생인 딸은 우연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어머니가 평생 숨겨왔던 비밀을 알게 된다. 비록 너무 늦었지만, 딸은 지금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모녀의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된다. 하얀 눈이 내린 조용한 마을 오타루에서는 모녀가 화해의 길을 걷으며 신나는 추억을 쌓는다. 어머니는 이루지 못한 과거의 사랑을, 딸은 새로운 사랑을 그 자리에 누워 있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를 여의고 고모와 함께 살고 있는 저 애절한 '누군가'는 모녀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비밀 캐릭터다.(출처: 위키백과)
보통 '퀴어'라는 장르의 영화는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포함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대표적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콜 미 바이 유어 네임>,<문라이트>,<캐롤> 등이 이 예시에 해당된다. 그러나, <윤희에게>는 직접적인 사랑을 묘사하지 않고 사진이라는 오브제와 장소의 이동에 맞춘 미장센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윤희와 쥰의 사랑을 표현한다. 쥰의 과거 사진을 윤희가 찍어줬다고 설명하는 씬과, 윤희의 사진첩에 있는 쥰의 사진을 보여주는 씬들은 이들이 과거에 친밀함 그 이상의 사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비교적 낮은 채도를 가진 한국에서의 씬들에 비해 일본에서 촬영된 씬들은 비교적 밝고 원색의 명도와 채도로 구성되는 변화를 거쳐, 쥰과의 재회를 목전에 둔 윤희의 기대되고 설레는 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연출을 통해 두 명의 사랑을 나타낸다.
또한, 새봄(김수혜 역)과 경수(성유빈 역) 커플, 그리고 마사코(키노 하나 역)의 과거를 윤희와 쥰의 사랑과 대비되도록 옴니버스 형식으로 배치함으로써, '동성애'도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도 같은 보편적이고 특수한 감정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새봄과 경수 커플이 운동장에 떨어진 장갑을 리폼해 한 짝씩 나누어 쓰는 씬과 카메라를 통해 서로를 찍어 주는 모습을 풋풋한 고등학생들의 애정으로 비추는 씬은, '사랑스러움'이라는 감정보다는 '어리숙함'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들의 어리숙함 또한 보편적인 사랑이며, 이 씬들은 작중 후반부 과 윤희가 가지는 일순간의 재회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주는 반대급부의 효험을 지닌다.
마사코의 연애사는 쥰의 회고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사코의 과거사를 듣는 쥰을 비추는 씬은, 마사코의 사랑도 역시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다를 바 없음을 나타낸다. 이들의 사랑을 통해 <윤희에게>는 사랑의 과거, 현재, 미래시제를 표방한다. 마사코의 연애는 미련으로부터 파생된 과거의 안타까움을, 새봄과 경수의 연애는 불확실성과 젊음이 공존하는 미래의 설렘을, 마지막으로 윤희와 쥰은 완성되지 못했던 사랑이라도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다는 현재의 다짐을 상징한다. 이는 인호(유재명 역)가 새봄이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은영(윤태희 역)과의 재혼 청첩장을 건네며 윤희와 같이 눈물을 훔치는 씬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다. 해당 씬에서 롱 숏으로 나타낸 집 앞의 아파트 복도 동작감지등이 작동하는 씬의 미장센은 같은 선으로 구분되지 않은, 같은 프레임 안의 인물들도 거리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작중 초반에 인호가 술에 취해 집을 방문했던 씬에서 윤희가 보여줬던 차디찬 냉대와 두 사람을 비추는 빛 사이의 어둠을 통한 거리감에 비해, 후반의 청첩장 씬에서 인호와 윤희가 동작감지등의 빛과 어둠 사이를 같은 방향으로 가로질러 움직이는 씬과 새로운 출발을 가지게 된 서로를 이해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부박함과 미안함을 넘어, 상대방과의 이별 너머 고마움과 안녕을 바라는 감정의 전달을 극대화한다.
윤희의 답신에서 "이 편지에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아" 라는 말은, 과거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각자로부터 도망친 윤희와 쥰이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임대형 감독은 윤희와 쥰을 과거의 원죄로부터 구원함으로써 '배타적 민족주의 국가, 남성 중심적 시스템이 공고한 국가, 마이너에 대한 혐오나 차별이 심한 사회' 속의 차별, 억압, 핍박받는 모든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건넨다. 작중 초반 회색빛을 띈 윤희의 코트 색과, 작중 끝의 붉은 윤희의 스카프가 가진 색채 대비는 1990년대 한국 퀴어의 검열 제도로부터 2000년대 한국의 소수자 운동이 활성화되는 시대적 배경을 함축한 오브제이다. 그러나, 선명한 원색을 향하는 미장센의 색조 변화는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잿빛 심상에 선사하는 용기의 다짐이자 사랑의 표상이 아닐까.
<윤희에게>는 작중 수많은 메타포가 등장하지만, 이 중 가장 강력하게 스토리텔링을 지지하는 오브제는 다름 아닌 미장센의 기저에 잔존하는 인력(引力)이다. 윤희는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등장하는 모든 씬에서 구별되는 존재로 존재한다. 마치 <중경삼림> 1부의 금발 여성처럼,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보편적인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 그녀의 자발적 도피에 대한 심상은 기차소리와 함께 시청각적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관객은 이러한 윤희의 '도피'가 사실은 쥰의 편지로 인한 '끌어당김'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윤희는 좌향(左向)으로, 쥰은 우향(右向)으로 향하는 승합차를 타는 씬이 점프 컷을 통해 병렬적으로 연결되는 연출을 통해 그녀들은 물리적인 한계를 초월하여 은연중에 서로를 끌어당긴다. 쥰은 반대로 옴니버스적 시퀀스들과 점프 컷이 결합된 반복된 일상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스스로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녀의 현실 속 치부로 끌려간다. 즉, 윤희는 오빠가 이어 준 남자와 결혼을 하고 딸을 키우며 현실에 수긍한 채로 삶을 영위하는 인물이지만, 쥰이 있는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그와 반대로 쥰은 윤희와의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도망치고 멀어지며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삶을 살았으나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숨겼음을 수긍하며, 윤희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삶으로 나아가려 한다.
윤희는 쥰에게로 끌어당겨지는 열차를 새봄과 마주본 구도로 탑승한다. 이때 새봄은 우향의 메타포를 빌려 미래로 나아가는 형상을 취하나, 윤희는 쥰에게로 향하는 좌향의 메타포와 시각적 유사성을 일치시켜 과거로 역행하는 형상을 취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각 인물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창문 뒤의 원경을 일치시키는 촬영 기법을 통해 자칫하면 충돌할 수도 있는 새봄과 윤희의 방향성을 중화시키고, 연속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는 '끌어당김'이라는 윤희의 사랑이 일반적인 새봄의 사랑과도 다르지 않음을 다시금 재확인하며, 이십 년 간의 시간 동안 멀어져 간 거리는 이별로부터의 유보가 아니라,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을 위한 마지막 한 걸음인 것이다.
<윤희에게>에는 다양한 메타포가 등장한다. 달은 단순히 시간의 경과뿐만 아니라, 재회가 다가오면서 충만해지는 쥰과 윤희의 마음을 망을 향한 움직임으로써 비유한다. 이별 후 이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그녀들은 '꿈'과 '담배'를 공유하는 여러 씬들을 통해 유대감을 공유한다. 작중 등장인물들이 피는 담배는 고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흡연은 일종의 사회적 코드로써 흡연자들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존재하기에, 담배 또한 두 사람의 유사성을 나타내는 오브제로써 작동한다.
담배 말고도, '꿈'이라는 오브제의 병렬적 언급을 통해 윤희와 쥰의 유사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나도 네 꿈을 꿔" 라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들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dream과 goal로써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희와 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나, 꿈(dream)을 통해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꿈(goal)은 서로에게 앞으로 나아갈 삶에 대해서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쥰과 윤희는 각자의 편지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갈 인생을 다짐한다.
꿈을 통해 비(非)가시적으로 유대를 얻는 그녀들은 사진을 통해 가시적이고 실질적이며 유약한 유대를 이어나간다. 사진은 찍힌 순간의 시공간을 오려내여 방부(防腐)시킨 매개체이다. 그녀가 찍은 사진은 수 많은 사진첩에 남아 셔터가 빛을 반사했던 순간의 온기와 감정을 영원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윤희의 사진첩에는 쥰의 사진이 있을 뿐, 윤희가 스스로를 찍은 사진은 없었다. 그러나, 윤희의 딸인 새봄의 손길을 빌려 이야기에 등장한 '사진' 속에는 윤희가 등장한다. 그렇게 쥰의 기억과 온기만을 간직하느라 정작 그 순간의 자신을 간직하지 못했던 윤희는 마침내 새봄에 의해 사진으로써 기억된다. 그런 사진을 인화하는 용호는 윤희의 오빠이자 과거의 자신을 억압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억압자로부터 잉태된 윤희의 사진은, 그것이 품을 온기와 시간이 배제된 채 억압된 순간의 '재현성'만이 남았던, 일종의 나쁜 기억으로 작용할 것이다. 윤희에게 카메라란, 대학을 포기하고 얻은 그녀의 정체성이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트라우마를(용기를 낼 수 없으며, 남은 삶은 벌이라고 생각했었던 사실) 얻은 것이다. 이후 그녀가 서울로 올라가며 용호에게 작별을 고할 때 그의 얼굴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 이는 용호라는 개인의 차별과 억압에 대한 임대형 감독의 비판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상처를 가한 그 모든 억압자들을 통칭하여 힐난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희는 증명사진을 통해 상처입은 과거를 극복하고, 자신을 속박했던 매체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려는 다짐을 얻은 모습을 일구어 냄으로써 진정한 회복을 마주한다.
윤희를 속박한 오브제는 사진뿐만이 아니다. 오타루의 수많은 '눈'도 윤희와 쥰을 억압한다. 눈은 그것이 가진 냉기로 사람들을 덧입게 만들고, 그들의 속살이 닿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 한가득 쌓인 수많은 눈은 결국 타인에 대한 진실된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장벽이요, 윤희와 쥰을 가로막았던 사회상에 대한 은유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사코의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라는 반복적인 대사를 통해 눈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영원히 유보된 재회에 대한 미련을 품게 된다. 매년 반복되는 오타루의 폭설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사무치도록 닮았다. 그렇기에 쥰은 삽을 들고 제설을 한다. 또다시 찾아올 미련을 덜어내기 위해, 그 미련들이 쌓이고 쌓여 자신에게 다가온 윤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윤희에게>는 퀴어라는 특수한 소재의 사랑을 보편타당한 사랑으로 변모시키며, 현재진행형의 사랑이 지닌 뜨거운 열기 그 자체보다 그것의 잔열이 그린 궤적으로 타인의 얼어붙은 상처를 녹여 아물게끔 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즉,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희열을 담아내지 않지만 풍파로 인해 식어가는 사랑의 남은 잔불과 그 온기를 나누어주는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사랑'은 타인과의 연애 감정이라는 간단한 명제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도 <윤희에게> 속 사랑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신을 억압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그녀를 결함으로 치부해버린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윤희의 상처는, 역설적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가족인 새봄의 손길과 인호의 사과로 인해 아물게 된다.
임대형 감독은 <윤희에게> 속 꿈과 눈, 카메라등의 오브제와 여러 서브텍스트를 통해 핍박받는 자들을 조명하며, 그리고 결말만을 기다리는 사랑의 피상을 부정한다. 그 대신, 사랑을 나누었던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진정으로 행복했었다면, 완결이라는 단어를 넘어선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끝'이라는 순간을 찍는다면, 눈과 꿈을 동시에 찍는 순간이 온다면, 그 사진이 사로잡은 순간이 가진 인력(引力)은 '나도 네 꿈을 꾸게 할' 할 희망찬 달빛이 될 것이다. 슬픈 이별과 좋았던 순간. 그 모든 것들은 돌고 돌아 결국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