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 리뷰
진정한 의미로써 '표현의 자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의견 표출의 바운더리를 더욱 확장시킨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단어의 대표적인 의미이지만, '대답하지 않을 자유'마저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과연 얼마나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근래의 대한민국은 각자의 믿음에 전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그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는 극단적이고 일반화된 이분법의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미는 행태를 보인다. 특히 이는 공산주의, 자본주의, 전체주의, 민주주의 등 '이념'의 차원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이는 우리나라의 쓰라린 근현대사로부터 파생된 특성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겪고 난 후 이를 수습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성급한 일반화 및 이분법으로 인해 수 많은 이들이 질타당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후, 우리는 자신보다는 자신의 '소속'에 대해 먼저 밝히거나 이야기함으로써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사회의 파편화를 초래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아픔이라는 돌멩이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인간관계 및 여러 사회현상에 대해, 밤섬해적단의 권용만과 장성건은 '대답하지 않을 자유'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을 급진적이고 난잡한 특징을 지닌 그라인드 코어라는 장르를 빌려 우리 사회의 여러 모순을 노래한다. '결국 모든 이들은 모순적일 수 밖에 없을 것' 이라는 조금은 염세주의적인 시각으로, 모순을 노래하는 그들마저도 모조리 비판하는 밤섬해적단은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모두에게 새겨져 있는 '북한'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곧이곧대로 소재화하여 인간의 이중성과 탈권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진정한 의미 등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숨기려 했던 여러 맹점과 상처들을 강렬하게 노출시킨다. '국가보안법 재판'이라는 논란의 한 가운데 서서, 예술과 법의 차이와 이념의 대립을 넘어 선 셀 수 없는 갈등의 마찰면. 즉 '포화'의 중심부에서 정윤석 감독은 두 명의 뮤지션과 함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을 단순한 음악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로 변모시킨다. 과연 그들은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에 관해 노래하려 하는 것일까.
'북한'을 찬양하는 속칭 '종북'의 컨셉을 모방하는 밤섬해적단의 드럼 권용만(권용만 역)과 베이스 및 보컬인 장성건(장성건 역)은 서울대 본부스탁 및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반대 집회, 2011 뉴타운 간첩 파티 등 여러 집회의 현장에서 여러 기득권층에 대해 비판적인 공연을 일삼는다. 이러한 활동을 진행하면서 회기동 단편선(회기동 단편선 역)과 레이블 사장이자 오래 알고 지낸 박정근(박정근 역) 등 여러 주변인들도 그들의 행보에 즐거움을 표하며 웃음을 표한다.
그러나, 박정근의 트윗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되어 입건되면서 밤섬해적단의 1집인 <서울불바다>는 재판에 회부되게 되고, 밴드의 드러머인 권용만이 박정근의 재판에서 직접 증인으로 발언을 하게 되는데...
법은 항상 예술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곤 했다. 이는 본질적으로 예술을 다루는 이들과 법을 다루는 이들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였으며,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서의 주요한 갈등 요인이자 오해의 구심점이 된다. 작중 밤섬해적단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가사는 저항의 상징을 보여 줄 텍스트일 뿐이다. 즉, 가사에 의미를 두지 않는 노래인 것이다.
또한 정윤석 감독은 밤섬해적단의 예술이 지닌 에너지를 관객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이 영화를 '픽션적인 논픽션 영화'나 '액션영화의 호흡'으로 연출함으로서 쉴새없고 거친 이야기의 흐름을 스크린에 투영하고 있다. 작중 중간중간에 비주얼라이저(Visualizer)나 뮤직 비디오처럼 <서울불바다>의 수록곡 중 일부가 자료화면과 동시에 자막으로써 스크린에 등장하는데, 이때 가사는 스크린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커다랗게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 노래는 귀로 듣는 음악이다. 밤섬해적단의 보컬인 장성건은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들어도 겨우 이해할 수 있거나 아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발성을 지닌 창법을 사용한다. 때로는 5초짜리 트랙에 한 마디의 말만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이처럼 그들의 노래 속 가사는 텍스트 그 자체가 가지는 뜻이 아니라, 그 너머의 여러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반주나 드럼 등 다른 요소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종합적인 예술 행위인 노래로써 변모하게 된다.
하지만 법은 문제가 되는 요소 하나만을 집중해서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특화되어 있고, 문제의 해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행실에 규율을 적용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시선에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듯한 박정근의 트윗은 그가 '간첩'이라는 우려를 사게 만들었다. 박정근이 이전에 어떤 말을 했는지는 상관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후 그가 운영하는 레이블 산하의 밤섬해적단의 1집인 <서울불바다>가 재판에 회부된 후, 드러머이자 작사가인 권용만은 끊임없는 종북 의심을 받게 된다. 단지 그들의 노래 가사와 그들의 반체제적 행보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장성건과 권용만은 일명 '인서울' 대학생들이며, 무종교에, 일말의 정치적인 행보도 보여주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용만과 밤섬해적단은 법조인들과 사회적 물의 앞에서 좌파와 우파를 넘어 선, 종북과 반공이라는 물러날 수 없는 이념의 잣대를 시험받게 되었다. 정작 그들과 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회는 예술로써 말하는 밤섬해적단의 언어를 당최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결국 권용만은 '반어'라는 예술적 언어를 법정에서 정의한다. 그러나 이는 예술적 언어의 종말이자 밤섬해적단이 지향하는 가치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권용만은 민주주의이기에 가능한 비판을 자행했을 뿐이며, 앞으로는 이러한 행위를 할 계획이 없다고 증언한다. '반어'는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언어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느끼는 수많은 모순은 마치 박정근의 트위터 핸들인 코리아 '데카당스(Décadence)'와 동일하다. 데카당스 운동은 고전주의적 조화와 균형을 거부했으며, 자연적인 것을 혐오함과 동시에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상징적,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역설적 이중성을 지니며, 심미적 쾌락주의와 문명의 몰락과 위기라는 이중적 의식을 포함함으로써 명확한 해석이나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는 예술적 태도를 의미한다.
즉, 밤섬해적단과 박정근은 예술적 '반어'로써 전체주의나 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조롱이라는 '행동'을 할 뿐이며, 국가보안법은 그들의 '행동'을 종북이라는 시각과 의도가 포함된 '행위'로써 판단하였기에 두 언어 간의 오해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밤섬해적단은 다양한 갈등을 포착했던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잃어버리게 되고, 영화는 권용만의 증언을 미안해하는 박정근의 모습과 밤섬해적단의 해체를 차례대로 알리며 막을 내리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직전, 카메라에는 밤섬해적단의 녹음 장면이 담긴다. 마이크에 대고 알 수 없는 가사와 괴성을 질러대는 장성건과 권용만. 그러나 베이스와 드럼이 합쳐져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순간 단순한 울음소리에 불과했던 그들의 목소리는 저항하고자 하는 뜻이 가득히 담긴 펑크로써 변모하게 된다.
수많은 의견들이 대립하고 맞부딪히는 갈등의 한복판을 전전하면서 ‘그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줄창 부르는 밤섬해적단의 노래는 형식을 완전히 묵살한 상태로 듣는 이의 귀를 자극시키거나 때론 귀를 아프게까지 한다. 그러나 그 절실한 외침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우리를 강제로 엮어버리지 말라는 의도가 내재해 있으며, 일반적인 말로써는 다른 이들에게 닿지 않기에 밤섬해적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감해하는 북한이라는 소재를 ‘반어법’을 통해 장난침으로써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북한과 남한을 ‘똥과 오줌’으로 만들어 비판한다. 하지만 그 가사를 통해 그들이 진정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모순과 이중성’이 아닐까. 이는 통렬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2인조 밴드 그들 스스로도 포함되는 블랙 코미디이자, 모순 속에 담겨진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일궈 나가는 이 사회의 불안함과 아픔의 원형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고자 함이 아닐까. 수 많은 이들의 판단과 그 잣대를 '한없이(boundless)' 벗어난 밤섬해적단과 정윤석 감독은, 여러 사회적인 충돌 상황에서 직간접적으로 '포화 속'의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그들과 타인을 바라보게끔 종용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