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리뷰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3부에는 하늘에 떠있는 섬 '라퓨타'와 라퓨타의 통치를 받는 '발니바르비(Balnibarbi)'가 등장한다. 라퓨타는 발니바르비를 지배하며, 직접 통치하는 '린다리노' 시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이를 진압하러 그것의 그림자를 통해 기근을 만들거나, 섬을 지상에 추락시키며 지상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그 봉기를 막아낸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는 <걸리버 여행기>로부터 '라퓨타'라는 소재를 꺼내 스토리의 골자를 구성하였지만, 그가 <천공의 성 라퓨타>를 통해 관객에게 진짜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라퓨타가 아니라 그것의 통치를 받는 '발니바르비' 왕국의 이야기이다. 빼어난 스팀펑크 디자인의 클래식이자, 당시 기준으로 매우 역동적이고 세련된 액션 시퀀스들은 미야자키 감독이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을 꺼내기 위한 일종의 화두와도 같다. 그는 7대 불가사의로써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이미지 위에 커다란 세계수를 심었으며, 증기를 내뿜는 비행선들을 모조리 바다에 수장시키고 난 후, 비로소 한 점의 인간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엔딩 장면으로 그려낸다.
수 만년 동안 인류가 동경하던 하늘을 날아다니는 순간을 마주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은 흙 위에서부터 스스로를 해하며 자정작용(自淨作用)을 시행했다. 결국 인류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킨 뒤, 드넓고 새파란 창공에서마저 검붉은 불길과 연기를 만들어낸다. 미야자키 감독은 드넓은 하늘을 스크린에 영사하였지만, 진정 그가 예찬하고 간절히 소망했던 것은 낡고 오래된 갱도에서 할아버지가 끓여 주신 수프나 계란이 올라간 토스트를 베어무는 것과, 빈민촌에서 부대끼는 여러 사람들과의 작고 소박한 일상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라퓨타의 그림자로 인해 기근을 겪는 발니바르비와 슬랙 계곡 광산촌의 어둠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세대들을 은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삶의 의지를 다지며 소박한 하루를 살아간다. 비로소 찾아온 고요한 평화를 온몸으로 환대하면서.
광산촌 슬랙 계곡에서 기계 견습공으로 일하는 파즈는 기계를 고치다 푸른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 온 소녀 시타를 만나게 되고, 해적인 도라 일당의 추격으로부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열차를 타고 옆 마을로 도망치는 도중 시타를 쫒아 온 군대의 탱크로 인해 다리가 무너져 추락하나 시타의 비행석이 빛을 발하며 두 사람은 지하 갱도로 무사히 내려간다. 그곳에서 시타는 자신의 숨겨진 이름과 진실을 전하나 곧바로 추격해 온 군부에게 두 사람은 납치당하게 된다. 시타는 무스카의 협박으로 인해 파즈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군대에 라퓨타의 위치를 찾는 것을 협조하게 된다.
파즈는 이후 집으로 돌아가나 그곳에서 도라 일가를 만나 그들과 함께 군대를 뒤쫒기 시작한다. 한편 시타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할머니가 알려주신 주문을 나즈막히 읊조리자 목걸이에서 빛이 나오게 되고 곧 라퓨타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라퓨타에서 추락한 고대의 로봇도 같이 깨어나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되고, 이를 공중전함 골리앗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시타는 목걸이를 잃어버리는 대신 파즈와 재회하게 되고, 무스카는 골리앗을, 파즈, 시타와 도라 일가는비행선을 몰고 각각 라퓨타로 향하는데...
'히치콕의 규칙(Hitchcock's Rule)'을 아는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는 영화에서 크고 빈번하게 비춰진다. 파즈와 시타가 작중 중후반부에서 나무 뿌리를 타고 이동하는 여러 씬을 지속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오브제로써 '뿌리'를 선정하도록 만든다.
'천공의 성 라퓨타'라는 부유섬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성을 뒤덮고 있는 커다란 나무. 즉, '세계수'이다. 거대한 나무는 떠다니는 섬과 그 아래의 모든 구조물을 줄기와 뿌리로써 지탱 및 결속하고 있다. 이는 라퓨타도 결국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인류의 터전임과 동시에 지상으로부터 잉태된 존재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 영화의 초반부를 이끌어나가는 '부유석' 또한 지하의 암석을 가공한 물체로써, 라퓨타와 지상으로써의 결부를 내러티브적으로 보강하는 오브제로써 변모한다.
또한, 이 영화는 '높이' 라는 척도로 극의 배경을 양분하고 있다. 광부촌 슬랙 계곡의 사람들은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인간애와 온정을 지닌 공동체이며, 팜 할아버지와의 대면 씬과 '불'을 피우며 식사를 하는 씬 등을 통해 땅은 '따스한 대지의 온정'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미야자키 감독은 낮은 고도에서 일어나는 여러 장면들을 통해 모든 인간은 땅으로부터 일어난 존재이며, '정착'. 즉, '뿌리'내린 장소의 여러 타인들과 함께 영위하는 소박하고도 온정 넘치는 일상을 예찬하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와 반대로 하늘은 높은 고도와 바람으로 인해 불안정하며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다. '높이'라는 척도는 하늘과 땅의 구분을 더욱 공고히 하며, 역사적으로 인류가 동경하던 하늘이 가지는 선한 이미지에 '추락'이라는 소재를 덧입혀 그것이 가지는 공포심과 서스펜스를 증대시킨다. 특히, 폭풍으로 인해 시타와 파즈가 탄 글라이더의 줄이 끊어지는 장면에서는 구름에 잠식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파즈가 나무 줄기에 매달린 채로 도라 일당을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는 푸른 빛의 하늘이 주는 평화로운 느낌보다는 광장공포증(Agoraphobia)과 같은 위기의 요소로써 작용한다. 또한, 고도가 높아지며 공간적 배경이 변화할수록 파즈와 시타를 포함한 화면 속 등장인물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결국 라퓨타라는 환상의 성은 인간의 부재와 그 흔적들만이 남게 된다.
결정적으로 '뿌리'라는 것은 혈통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시타와 무스카는 라퓨타의 후손들인데, 라퓨타를 다스리던 왕가인 시타의 일족은 과거의 일화만을 '구전(口傳)'할 뿐, 그것을 경계하며 고대의 언어조차 망각한 채 지상에 정착하는 삶을 영위해 왔다. 이와 반대로 무스카의 일족은 라퓨타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를 그리워하며 고대의 언어를 기록해 '전승(傳乘)'한다. 무스카는 과거로부터의 답습을 통해 이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에 군림하고 싶다는 야욕을 드러낸다.
결국 라퓨타는 성이 아니라, 성과 섬을 연결하고, 지탱하며, 그것이 태어난 뿌리를 잊지 않게끔 반추하며 언젠가는 다시 지상에 뿌리내리기를 기원하는 거대한 나무가 그 본질일 것이다. 세계수는 라퓨타라는 조그마한 세계를 떠받드는 기둥이자, 라퓨타의 일족이 파괴로 점칠된 과거의 오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의 방향을 상징하는 오브제로써 작용한다. 라퓨타의 전쟁병기 로봇은 나무 위 그리고 나무 안의 삶을 살아가자 폭력이라는 본문을 망각하고 무덤에 헌화를 하거나 비행선 아래의 새 둥지를 보호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지상을 지배하고, 고도의 과학 기술을 통해 '비행'이라는 인류의 오랜 숙원을 이룬 라퓨타인들이 마침내 깨닫게 된 진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행을 멈추고 땅에 안착해 세계수의 그늘 아래서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고 정착하는 삶의 중요성이다. 즉, 따스한 대지 위 평화를 뿌리내리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며 가장 의문이 들었던 점은 바로 '부유석'이라는 오브제의 명칭이었다. 능동적으로 하늘을 떠다니게 만들 수 있는 고대의 유물은 어째서 '비상(飛上)석'이 아니라 '부유(浮遊)석'일까?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바로 '단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단절이라는 것은, 단순히 흐름을 멈춤으로써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의 단절은 시간적, 공간적을 넘어 서브텍스트에서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작중 파즈는 '아버지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상념에, 시타는 '류시타'로써의 정체성과 라퓨타가 벌인 과거의 업보라는 주박에 묶여 사는 삶을 영위한다. 이는 구세대가 신세대에게 떠넘기다시피 한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들을 전달받는 20세기 말의 당시 시대상을 비판한다. 또한 파즈와 시타는 군인과 해적이라는 어른들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온갖 수모를 겪는데, 이는 '영웅의 여정'의 시련이기보다는 구세대가 벌인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신세대들. 즉, 어린이들을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행복으로부터 단절된 피해자로써의 신세대를 은유한다.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작품의 배경 또한 마찬가지이다. 앞 문단에서 언급했던 '뿌리내리는 삶'으로부터 단절된 라퓨타는 폭력과 공포로 세계를 통치했으며, 그 결과로 라퓨타인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그들이 누리던 힘의 대가를 후손들에게 전가한다.
하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단절이라는 개념은 부정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모도 가진다. 과거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등 떠밀려 하늘로 날아오른 파즈와 시타가 결국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플롯과,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자연주의적 시각으로 인해 단절은 '수복'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즉, 단절로 인해 탄생한 절단면에서 파즈는 과거의 숙원을 이루었고, 시타는 원죄와도 같던 '류시타'의 이름을 버리고 시타로써 온전히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부유석은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비상'이라는 단어가 높은 고도의 하늘이라는 오브제와 연계되며 제시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경계했기 때문에 부유석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부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목표 없음'과 황망한 이미지는, 통치라는 본래의 목적을 망각한 채 하늘 위를 정처 없이 떠다니는 라퓨타의 현재 상태와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의도를 잃어버린 채 부유하는 라퓨타는,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는 시타의 선택으로 인해 과거의 상흔으로부터 '단절'되어 전쟁 병기로 변모하지 않고 거대한 '부유석'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하늘 높은 곳으로 사라지게 된다. 라퓨타는 인간의 역사에서 완전히 소멸함으로써 그것이 지녔던 원죄와도 영원한 단절이자 속죄를 맞이한 것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지브리의 첫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써, 후대의 여러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의 DNA를 형성했다. 이 작품으로부터 파생된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자연주의 경향과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권선징악적 플롯을 통해 반전주의 사상을 널리 퍼뜨렸다. 전투기 공장장의 아들로 태어난 미야자키는 전쟁무기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가지게 되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시절이었던 자신의 유년기를 부정하며 당시 자신의 눈에 비치지 않았던 '폭력'이 주는 반대급부를 가감없이 작품 속에 녹여낸다. 그는 전쟁과 폭력이 주는 쾌감과 도파민을 스크린에 담지 않는다. 짙은 폭력을 몸소 겪으며 상처입은 수 많은 피해자들과 그들의 상흔이 아물기까지의 진심어린 응원과 따스한 격려를 그려낸다.
또한, 주요한 메세지 외에도 지브리는 일본의 여러 문화적 측면을 작품 속에 녹여내어, 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시타의 모계 계승 설정과, 무스카의 남성성 그리고 권력욕이 지닌 파괴적 특성을 '라퓨타인'이라는 같은 일족의 특장으로 병치하여, 이러한 특성이 현대의 일본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남을 은유적으로 시사한다.
'은유'. 지브리와 미야자키가 예술의 언어로써 선택한 화법이다. 수려한 작화와 캐릭터 디자인, 동심을 자극하는 여러 스토리는 반전이라는 '아이러니'로써의 메시지를 포장하는 포장지이다. 하지만 의도에 치중하는 여러 창작물들이 그 만듦새로 인해 비판받으나 지브리 스튜디오는 그렇지 않다. 이야기로써의 애니메이션으로도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며, 메시지로써의 영화로도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야자키는 처음 잡은 메가폰을 통해 세상에 "뿌리로부터 단절되지 말아라"는 경각심과 노파심을 공중정원에 실어 드넓은 하늘 높이 떠나 보낸다. 그 커다란 염려가 사라진 드넓은 하늘과 대지에는, 따스한 흙의 온기 속에 뿌리내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그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대지의 온기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고요한 평화의 소중함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40년 전부터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