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 리뷰
흔히 '후회 없는 삶'을 노래하는 부류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완벽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그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를 살아갈 뿐이다. 과거를 끝없이 반추하는 삶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추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이러한 '후회'는 아픈 끝맺음을 가진 애정의 뒷모습에서 더욱 아련해 보인다. 만약 그 단 한순간의 선택이 파국을 초래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수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과연 돌아갈 것인가? 누구라도 이렇게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그 선택의 손을 잡고 수 없이 과거를 바꿔나가도 '티 없이 맑은 마음(Spotless mind)'이란 결단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끝없는 과거로의 플래시백을 파편적 몽타주로써 보여주는 플롯을 취하는 작품들은 회귀라는 소재의 특성을 통해 '미처 가 보지 못한 또 다른 갈림길'의 선택을 종용한다. 그 갈림길에 들어서면 또 다른 갈림길이 등장하고... 이런 식으로 알 수 없는 많은 변수들을 맞이할 뿐이다. 즉, 후회하지 않기 위해 과거를 살아가기 시작하면, 그 순간의 오점을 아무리 닦아낸다 해도 또 다른 얼룩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무한한 길이의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시간 위의 모든 얼룩을 지워내려면, 영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타임 패러독스'에 갇힐 것이다. 그러나, <이터널 선샤인>은 조엘의 기억 속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 구조를 통해 회귀라는 소재의 클리셰를 비틀어 과거를 삭제하는 스토리라인으로 구성하여, 단순한 기억의 반복이 아니라 그 기억 속의 '또 다른 갈림길'에 대한 구원. 즉, 상처의 수용으로 나아가는 영화로 변모한다.
미셸 공드리는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과거의 실수로 인해 고통받는 수 많은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는 과거를 껴안은 채 현재를 살아갈 이유를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전한다. 후회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시도는 결국 불가능에 가까운 행위이며, 불쑥 튀어나오는 아픈 사랑의 상처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그 상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이 영화에 수 없이 등장하는 기억의 소멸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눈과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며, 짐 캐리가 보여준 기존 코미디 페르소나를 완전히 벗어난 내성적이고 절제된 연기는 조엘의 심리적 복합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이 모든 영화는, 후회와 상처의 이유를 찾지 말고 그것을 공란으로 남겨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순환적 서사 구조로 전달한다. 필자는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한 후 마침내 현재로 돌아온 모든 이들에게 내리쬐는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은 과연 무엇인지를 탐구하려 한다.
조엘(짐 캐리 역)은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그의 여자친구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역)에게 선물을 주러 그녀의 직장에 갔다. 그러나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알지도 못한 채 패트릭(일라이저 우드 역)에게 애정행각을 한다. 알고 보니, 클레멘타인은 조엘과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이에 조엘은 하워드(톰 윌킨슨 역)에게 가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워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메리(커스틴 던스트 역)와 스탠(마크 러팔로 역), 그리고 패트릭이 조엘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다. 순조롭게 기억이 삭제되던 중,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지냈던 시간 속에서 슬프고 나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기억 삭제를 그만하려고 하나, 현실의 조엘은 이미 잠들어버리고 만 상태이다. 이후 조엘은 그의 내면 세계에서 클레멘타인을 기억하기 위해 온갖 사투를 벌이는데...
미셸 공드리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의 왜곡, 소멸, 해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CGI를 모방한 여러 아날로그 촬영 기법을 사용하였다. 기억의 삭제가 시작되면서, 조엘의 내면 세계는 외부의 세계와 비동기적으로 연결되어, 현실 세계에서 들리는 여러 말들은 내면의 조엘에게 닿으나,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기억 삭제를 이행하는 씬의 초반 플롯은,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험담과 폭언 등을 지속적으로 일삼으며 금이 가 버린 둘의 관계에 미련이 없는 조엘의 모습을 그린다. 이때, 클레멘타인은 기억에서 뿌옇게 흐려지며 사라지는데, 이는 불투명하게 만들어진 유리창을 케이트 윈슬렛 앞에 세운 후 이전 장면과 연결하여 촬영을 진행해서 자연스러운 기억의 소멸을 렌즈 속에 담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배우들은 현장에서 감정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 또한 얻게 되었다.
기억이 삭제되며 조엘이 겪는 여러 현상들은 꿈의 논리를 따른다. 조엘이 아무리 달려도 같은 자리에서 머무르는 장면이나, 얼굴이 없는 사람이나 뒤집힌 눈의 패트릭 등은 꿈에서 경험하는 여러 복합적이며 불안정하고 기괴한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초현실적 이미지들은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한 시각적 효험을 불러일으키며, 불안정하며 변질된 수 많은 기억 속 이미지들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 겪었던 사랑의 감정은 진실되었다는 것을 작중 내내 사용하는 핸드헬트 기법의 불안정한 구도의 조성으로 오는 생동감과, 관객이 조엘의 주관적 시점에 이입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효과로써 극대화된다. 이러한 왜곡, 해체, 소멸의 시각적 효과는 이후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자신의 기억 속 여러 장소를 방문하며 자신의 과거를 '변주'시킬 때 더욱 극대화되는데, 해변 위의 침대나 비가 내렸던 자동차 운전석 등, 몽타주 기법과도 같이 두 가지의 물리적으로 구별되는 이미지를 혼합함으로써 인지적 경계를 초월하는 꿈과 내면의 불안감을 필름 위에 선명하게 그려 낸다.
어린아이로 변한 조엘을 그리기 위해 강제 원근법(forced perspective)를 사용하는 등, 독창적인 촬영 기법과 몽타주, 점프 컷이나 플래시백을 혼용한 비선형적 시공간의 이동 및 혼합을 사용한<이터널 선샤인>은, <인셉션(2010)>이 채용했던 물리 법칙의 초월을 CGI로 재현함으로써 SF 장르의 스케일과 액션 및 플롯의 서스펜스적 면모를 강조한 점과 상반되게, 초현실적 및 비현실적인 현실 세계의 시각적 법칙을 변주하고 곡해하여 조엘이 겪는 여러 이미지를 관객 입장에서 고의적으로 불쾌하게(uncanny) 그린다. 하지만, 변주된 기억으로 인해 조엘의 내면에서 더욱 깊은 존재가 된 클레멘타인의 잔재와 그 빈자리. 즉, 클레멘타인을 향한 사랑을 이끌어 낸 조엘의 여러 감정들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지워지기 이전의 장소로 조엘을 인도하여 클레멘타인과의 재회를 성사시킨다. 이는 클레멘타인도 마찬가지이며, 기억 삭제 시퀀스가 종료된 후 오프닝 장면 중 일부를 다시 보여주어 순환적 서사 구조를 직접적으로 노출시킨다. 이는 '기억'의 삭제가 '감정'의 삭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메리와 패트릭의 사이드 스토리가 주는 '기술적 개입의 부작용'이라는 메시지로 뒷받침하며, 패트릭이 내뱉은 "nice"라는 단어를 통해 클레멘타인의 기억과 감정 사이의 공허- 패트릭이 메우지 못한 조엘의 빈자리- 를 그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복선을 회수하는 역할도 겸하게 되는 중요한 서사적 구조로써 변모하게 된다.
자연물은 영화에서 인물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이후의 사건 및 시간 등을 그것이 가진 이미지를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미셸 공드리는 심상 세계라는 특수한 상황을 가정한 후,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붕괴하고 혼합 및 변질시키는 꿈의 특성을 사용하여 기존의 자연물이 오브제로써 가지는 보편적인 이미지로부터 탈피한다. 이는 오브제를 단순히 의미를 덧붙이기 위해 존재하는 배경의 사물에서부터 <이터널 선샤인>이 가지는 중후반부의 비선형적 플롯이 지니는 복잡성 속에서, 흐름을 해치지 않고 전체적인 유기성을 유지하며 사건을 진행시킬 수 있는 메타포로써 기능하게 된다.
눈의 순백하고, 청결한 이미지는 조엘의 복잡한 사랑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캔버스이자, 그가 사랑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조엘의 어두운 복장과 클레멘타인의 푸른 머리 그리고 오렌지(귤)색 후드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눈'이라는 이미지는 엔딩의 두 사람이 하얗게 페이드 아웃되는 장면처럼 또한 '일관성'을 상징한다. 조엘은 비니, 무채색의 코트와 단조롭고 정갈한 복장을 입는다. 클레멘타인은 초록색-붉은색-파란색의 변화하는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는 달리, 오렌지색 후드티라는 일관적인 복장을 착용함으로써 그녀가 사실 내면의 정착을 원한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어둠이 내린 호수 위나 눈이 온 바닷가 위 등, 여러 자연물을 옅어지는 채도로 촬영함으로 인해 이와 대비되어 두 인물의 복장이 가진 서브텍스트가 효과적으로 부각된다. 또한, 후드티는 에피소드마다 채도가 점점 감소하며 기억 소멸을 시각화하기도 한다. 즉, 눈의 새하얀 이미지는 채도를 옅게 만들기도 하여, 영화의 시간 감각을 표현하는 역할도 자처하게 된다.
몽타우크 해변의 집이 파도에 의해 해체되는 장면은 기억의 취약성을 나타내기도 하나, 바다와 물이 지니는 '포용성'의 메타포를 극대화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조엘 속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클레멘타인의 기억이자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이자 그가 그녀를 집에 남기고 떠났던 순간이다. 이전의 조엘이었다면 아마 이전과 같이 밤이 너무 깊었기에 클레멘타인을 내버려 두고 밤바다를 거닐었겠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상처 그 모두를 저 깊은 수평선 너머에 가라앉히고 난 후의 조엘은, 마치 그가 차를 몰아 클레멘타인을 데려다 주지 못했던 한을 풀듯 그녀와 함께 저택에 남는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미처 건네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그녀와 남기며, 클레멘타인과 함께 했던 수 많은 기억들은 그녀와 입을 맞추는 순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경험은 기억이 되어 시간과 결부된 채 우리의 과거로써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기억. 즉, 과거에 발생하게 된 사건이나 경험을 뇌가 저장하는 능력으로부터 반추되어 현재에 재림하게 된 과거는 '추억'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터널 선샤인>의 원제이자, 작중 메리가 읊었던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티 없이 순수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이 수록된 포프의 서정시 <Eloisa to Abelard>(1717)은, 12세기 실존 인물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서간체 시로, 수녀원에 갇힌 엘로이즈가 과거 금단의 사랑을 잊지 못해 고뇌하는 내용이다. 미셸 공드리는 포프의 시가 보여준 딜레마의 영원성을 인간의 불완전한 용기로써 극복한다. 기억을 삭제해도 감정은 남는다는 대사와, 사랑의 기억은 고통이나 이를 지우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엘로이즈처럼, 결국 상처받기를 선택한 이들은 그 상처를 포옹하고 수용하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다짐을 불어넣어 준다.
알렝 레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 미셸 공드리는 이 작품에서 기억과 망각, 과거에 대한 화해라는 같은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나 알렝 레네처럼 그 순간을 지그시 응시하지 않으며, 과거를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차분한 태도로 예찬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혹여나 과거를 이해하고 놓아주지 못해 주저하고 있는 모든 연인들에게 그들의 불완전함과 결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의 사랑을 따스하게 비출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미셸 공드리의 새하얀 격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