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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인(夢中人) - <중경삼림> 中

<중경삼림(1994)> 평론

by 더 레터박스

2부: 몽중인(夢中人)



사촌의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일하며 캘리포니아로 떠나기를 꿈꾸는 소녀 ‘페이(왕페이)’는, 단골손님인 경찰 633(금성무)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는 얼마 전 연인과 이별했고, 페이는 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에서 그의 집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633이 근무 중일 때마다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물건들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그러나 633은 그 변화에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어느 날 페이는 금붕어를 사러 들른 633의 집에서 그와 마주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조심스러운 교감이 오간다. 그리고 며칠 후, 633은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가 집 안에서 정리 중인 페이와 맞닥뜨린다. 페이는 당황한 채 도망치고, 633은 그녀를 붙잡지 않은 채 조용히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후 그는 “8시에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하고, 페이는 진짜 캘리포니아의 날씨가 궁금하다며 1년 뒤를 기약한다. 1년 후, 633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인계받고, 스튜어디스가 된 페이와 다시 마주친다.





2부는 1부와 달리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반복적인 일상을 그린다. 우연성이 플롯의 주요한 매개가 되는 1부와 달리, 2부는 습관이 주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식자재를 사러 가는 길에 점심을 먹는 633과 마주치는 등 스크린은 페이의 권태로운 나날을 조명한다. 페이는 1부의 하지무와 비슷하게, 프레임 내부에서 벽이나 다른 구조물에 의해 끼여 있는 듯한 각도로 비춰진다. 그러나 경찰 업무를 보는 633은 전 애인(주가령)와의 과거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개방적이고 깊은 심도를 가진 배경을 가진다. 그녀는 633이 가게를 방문할 때 무언가를 닦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때 그들의 시선은 서로 화면 밖을 향하고 있으며, 두 인물을 구별하는 시각적 선이 경계로써 작용한다. 집 안의 사물들에게 이야기할 때 과거에 방점을 두는 633은 현실로부터 과거로 떠나고 싶어하는 자의 세계를, 닦는 행동을 반복하는 페이는 현실의 공간으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


페이가 그의 세계로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것은 ‘꿈’이었다. 페이가 633과의 열쇠를 얻게 된 것은 다름아닌 전 애인의 편지 때문이었다. 그녀의 세계로 향하는 633의 티켓이 되돌아왔기 때문에, 서사적으로써 페이는 티켓이 경유하게 되는 일명 ‘전달책’의 역할을 수행한다. 페이는 역설적으로 그의 애인이 아니라, 전달책이기 때문에 633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633와 페이는 대화할 때 들리는 큰 노랫소리로 인해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California Dreamin’ 이라는 노래의 제목처럼, 이 노래는 그녀의 꿈을 대변한다. 또한 커피를 마시는 633과 그를 바라보는 페이. 이 투 샷에 왕페이가 부른 ‘몽중인(夢中人)’이 들리며 세계와 구별되는 두 인물간의 시간이 스텝 프린팅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장면은, 꿈과 사랑이라는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두 가지 목표의 간극을 몽유병 환자처럼 넘나들며 고민하는 페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캘리포니아’와 ‘블랙커피’라는 두 상징적인 객체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려 함으로써, 페이와 633은 애정의 빈자리를 서로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페이는 그의 집을 바꾸는 행동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633을 만날 때 그녀는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선글라스를 쓴 페이는 몽유병 환자처럼 633의 집을 ‘사유화’한다. 이는 전달책으로써가 아니라, 633의 애정의 빈자리를 대체할 대체제로써의 자신을 그에게 각인시키고 싶은 그녀의 노력이다. 전달책에서 대체제로서의 서사적 신분의 승격을 갈망하던 페이. 그러나 대체제라는 숙명은 결국 윤회하는 사랑의 순환처럼 언제든 다른 대체제가 등장할 수 있다.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일 다른 것을 좋아할 수도 있기에’ 페이는 자신과 633에게 1년이라는 유예를 부여한다. 그 유예로 인해 633은 페이를 대체제가 아니라 ‘필수재’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633이 살던 집을 페이가 사유화하여 그의 공간을 사랑하게 되듯, 그는 페이가 바꿔놓은 자신의 ‘변화’를 사유하여 스스로의 삶에 편입시킨다. (그녀와의 ‘추억’을 사유하게 된다.)


633의 전 애인이 보낸 편지는 취소된 티켓이었고, 이는 버려졌다. 그러나 633의 손에 들린, 번져버린 냅킨 위의 편지는 1년 후의 탑승 날짜가 적혀져 있었고, 1년이 지난 후 꿈을 이룬 페이와 그녀와 자신의 공간을 사유화하는 데 성공한 633은 제복 - 스튜어디스 유니폼을 입은 페이와 평상복을 입은 633의 시각적 대비 – 이라는 소재를 통해 서로의 변혁된 위치를 인식하게 되며, 스튜어디스가 되어 633의 눈 앞에 나타난 그녀는 아비와는 달리 그를 위한 좌석을. 즉, 그를 위한 티켓을 다시금 그려 줌으로 인해 애정의 공백에 대한 대체제가 아니라, 애인으로써 서로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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