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의 것
개인적으로 보름달을 참 좋아한다.
맑은 하늘에 높게 높게 떠서 가장 밝게 빛나는 아름답고 둥근 달.
그 달과 함께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거닐면 모든게 반짝반짝 빛이난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충만감과 완전한 행복감을 느낀다.
Full Moon, 영어이름 마져 완벽하다.
가득 채워진 달이라니…
그래서일까, 언제나 나를 너무너무 설레게 해준다.
그 빛이 내 안의 어둠까지도 부드럽게 비춰준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을 풍요와 길함, 소원의 성취를 의미하는 긍정적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보름달을 보며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불운이나 사람 안에 있는 사악함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달의 기운을 많이 받으면 미치게 된다고 믿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반짝이는 보름달 조차
동양에서는 축복의 상징이지만,
서양에서는 불안과 광기의 징조로 읽힌다니.
같은 달을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다니,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다르게 해석된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우리의 삶도 그렇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말이 싫다.
가까이서 보아도 우리의 관점에 따라 비극은 희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비극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희극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항상 기도하며 내면을 들여다보고 직면하려한다.
혼인신고 전, 특이했던 일화가 있다.
X와 여행을 갔다 돌아오며, 부모님 선물을 사왔다.
돌아 오는 중 싸우게 되었고, 차에 선물을 놓고 내렸다. 일주일 후 화해했고 선물의 행방을 물었다.
“내가 다 먹었는데?”
황당했다.
심지어 부모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X는 태연했다.
그의 당당함과 뻔뻔함에 압도돼 오히려 내가 작아졌다.
한번은 X와 여행을 가기로 한 날 가족 중 한 분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굉장히 좋아했고 사랑했으며 우리 가족에게 헌신적으로 베푸시던 분이었다.
나도 다같이 마지막을 보내드리고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니 X는 분노했다.
이번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너랑은 끝이라고 하였다.
나는 X와 타협했다.
잠깐 장례식장을 갔다가 x와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찾아뵈어 인사드리고 소식을 들으며 위로해드린 후 여행을 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너무나 슬펐다.
X는 오히려 왜 힘들어하고 슬퍼하냐고 화를 냈다.
당연한 사실이 그에겐 사실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들이 비극으로 보일 수 있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희극으로 보려고 한다.
얼마나 우스은 일인가... 얼마나...허망한 일인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세상을 품으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걸까?
아마 난 본질적으로 보름달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런것일까?
모든일은 지나갔고 보름달을 보며 희망과 행복을 느낀다.
인생은 나의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의 해석과 나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세상은 각자의 눈으로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르게 존재하게 된다.
나는 보름달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