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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선 응시

by 진동글


놓친다, 놓친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오며, 지하철 안에 몸을 간신히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빈자리 하나를 발견했다. 운이 좋다. 누군가가 방금까지 앉았던 듯 의자는 꽤 따뜻했다. 손잡이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멀리서 들리는 방송은 단조로운 음성으로 역 이름을 읊었다.



주머니를 더듬더듬 뒤적이며 무선 이어폰을 꺼냈다. 이어폰을 쳐다보지도 않고 귀에 꽂았다. 블루투스가 연결되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연결이 안 된 건가? 가장 낮은 볼륨으로 노래를 재생하자 노래는 그대로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 충전을 안 했구나. 배터리가 없는 모양이다.


유선 이어폰이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이어폰을 쥔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이게 정말 기술이 발전한 건가? 그냥 더 불편하게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



그렇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순간 맞은편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행선지를 알리는 지하철 알림판을 흘낏 본 그는, 나와 시선이 잠시 엉켰다. 이내 시선을 내렸지만, 그의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다시 시선을 들었을 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듯한 자세, 그리고 그 눈빛에는 그 어떤 말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오래 나를 붙들었다.


그는 휴대폰도, 창밖도 바라보지 않은 채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뭔가 이상한가? 아니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속으로 질문을 쏟아내면서도 나는 그의 시선을 쉽게 떼지 못했다. 내가 먼저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느릿하게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귀에 들렸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아직도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손잡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그 소리가 내 심장 소리와 겹쳐진 것 같았다.



넷, 다섯.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닌가.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의 표정은 모호했고, 그래서 더 낯설었다.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눈을 맞춘 적이 있었던가? 가족과도, 친구와도, 회사에서도 이런 식으로 눈을 맞춘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 누구와도 없었을 것이다.


눈맞춤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상대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거나 등등.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다음 정거장을 알리는 방송이 들리자 그는 가방을 손에 든 채 느릿느릿 일어섰다. 차는 덜컹거리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그의 실루엣과 더불어 흔들리는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다. 창밖의 어둠은 빛 하나 없이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둠 속으로 그의 실루엣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캔버스 위에서 사라지는 물감처럼.


일어선 그와 살짝 눈이 다시 마주쳤다. 일순간 그 모든 배경이 잠깐 희미해졌다. 나에게 말을 걸려나. 괜한 긴장감에 목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는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내 앞을 슥 지나쳤다.



문이 닫히고, 그는 이내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만을 바라봤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는데도.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처음으로 의식했다.



이어폰을 다시 손에 쥐었지만,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번 확인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어폰 배터리가 있었다면, 이 모든 순간은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 미소는 무엇이었을까, 애초에 정말 미소가 맞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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