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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힐공방 Aug 02. 2024

마라톤 결승점

10킬로미터의 행복


10킬로미터의 행복


비뚤어진 입매, 비대칭으로 내려앉은 눈, 초점 잃은 눈동자.


6년 전, 나는 얼굴을 잃어버렸다. 구완와사였다. 치열하게 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내 몸 돌보지 않아서 구안와사라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나는 내 몸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됐다. 바로 건강 챙기는 일이었는데 걷기 운동이었다. 사람이 아플 때는 뭐라도 할 것 같아서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건강해지고 나면 또 잊게 되고 나태해졌다. 평범한 일상은 직장과 집을 오가며 반복됐다. 


3년 전 새벽 기상을 하면서 또 다른 세상 속 나다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접해보는 디지털 세상은 호기심을 자극했고 신세계를 만난 듯 점점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1년 전 나는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몸은 무겁고 마음은 동굴 속 끝자락까지 들어갔다. 바로 번아웃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 bruno_nascimento, 출처 Unsplash


카톡 방 댓글을 보면 같은 시간에 일어난 다른 사람들은 걷고 달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었다. 나도 걷는 것 좋아하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 마음 깊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용기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운동복 차림으로 밖으로 나오니 일단 숨쉬기가 편해졌다. 거실에서 바라본 네모난 틀에 갇혀버린 하늘과 구름을 볼 때와 달리 시야가 딱 트인 넓은 공원에서 하늘만 바라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몸이 둔해서 걷는 것도 처음에는 벅차고 힘들었다. 꿀단지를 묻어 놓은 것도 아닌데 나는 매일 걷기 위해 집을 나갔다. 5월의 실록은 매번 처음처럼 눈이 부셨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에게 질문하는 고즈넉한 아침 산책은 보약이 따로 없었다.


© merrij, 출처 Unsplash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맨발로도 걸었다. 지루해지면 소나무 하나를 붙잡고 서서 다양한 스트레칭으로 환기했다. 오롯이 혼자의 시간, 아무도 없는 숲 속을 이리저리 누비는 자유로움이 나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걷다 보니 뛰어도 볼까 생각했고 걷다 뛰다를 반복했더니 점점 몸이 가벼워졌다. 

간헐적 단식과 나의 운동 습관은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헬스장을 다닌 것도 아니지만 꼬박꼬박 매일 나의 루틴을 지켰을 뿐인데 새로운 변화들이 찾아왔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빠지지 않던 10킬로그램의 살들이 내 몸을 떠났다. 덥석 마라톤을 신청할 만큼, 주저하던 마음의 찌꺼기도 함께 날려버렸다. 대회 한 달 전부터 마라톤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걷기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구간별로 목표를 정해서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갔다. 본격적으로 달려보니 짧은 거리도 멀게만 느껴졌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의심도 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걸어서 들어오더라도 완주한다는 의미를 두기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조급한 마음이 가벼워졌다. 

© louishansel, 출처 Unsplash


드디어 결전 날이 왔다. 남편을 앞세워 나는 호수 공원 중앙무대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마라톤 행사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마라톤 참가 선수들은 음악에 맞추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빈자리에 앉아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남편은 다치지 말고 천천히 뛰라고 신신당부했다. 한 달 전 마라톤 10km에 신청 날짜가 하루 지나서 애태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게 병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걸었을까, 이렇게 악착을 부려 뛰었을까, 아마 못했을 것이다. 아팠던 시간은 더 단단하게 나를 세운 변곡점이 되었다. 출발선에 서니 가슴이 두근두근 쿵쿵쿵, 요동을 쳤다. 끝까지 달릴 거야, 나는 필승을 다짐하며 출발 총소리와 함께 달려 나갔다.

© brettwharton, 출처 Unsplash


중앙무대 뒤로 언덕을 넘아갔다. 처음부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내 속도에 맞추어 달렸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함께 뛰는 부부, 사이좋은 친구, 마라톤 동호회, 길 위에서 동지가 된 참가자들은 발소리와 숨소리만 들릴 뿐 각자의 방식대로 뛰었다. 


반환점을 돌 때는 누가 결정선까지 점프해서 데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새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나는 도대체 이 힘든 걸 왜 하고 있을까? 뛰는 내내 묻고 또 물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시작했잖아, 너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 힘든 마라톤도 해내고 있잖아. 그동안 너 열심히 가족들 챙기느라 애셨어. 이제는 너만을 위해 살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러니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줘.'

나를 응원하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 rosiekerr, 출처 Unsplash


어느덧 저 멀리 경승선이 보였다. 무릎 통증이 느껴졌지만,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모았다. 결승점에 서 있는 남편부터 보였다.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남편과 뜨거운 포옹을 하며 완주의 기쁨을 만끽했다. 

드디어 나만의 길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이루어지는 마법의 시작이다. 

나는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지난주 버스 창 너머로 펄럭이는 마라톤 광고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다리던 두 번째 마라톤 경기 날짜를 보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렸놓았다.

지난번 첫 번째 마라톤 준비과정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철저한 준비과정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오늘도 나는 기분 좋은 아침운동을 마쳤다.

새로운 목표선정은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어준다. 기분 좋은 설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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