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추억
출근길 중학교 교문 앞에 졸업식 꽃다발이 생화. 드라이플라워. 페이퍼플라워까지
졸업하는 학생들 축하해 주려는 듯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다.
걸으며 나의 졸업식을 회고해 보게 되었다.
졸업식 날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그러나 나의 졸업식 기억은 당시에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던 평범한 날들의 조각들로 채워져 있다. 돌이켜보면 그 평범함 속에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은 한겨울이었다. 학교는 집에서 10리가 넘는 거리에 있었다.
학교 앞이라고는 문방구 두 개뿐인 시골 마을이었다. 식당은커녕 간단히 사 먹을 곳조차 없었다.
졸업식 날, 아버지는 멀리서 걸어와 나를 축하해 주셨다.
나이 많으신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검은색보다 흰색이 더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 아버지가 졸업식장에 오신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젊고 건강한 부모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비교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 정말 죄송하고, 그날 나를 위해 먼 길을 걸어와 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스스로가 부끄럽다.
중학교 졸업식은 읍내에서 이루어졌다. 읍내 중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도시의 낯섦과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졸업식 날은 특별히 무엇을 먹었던 기억은 없지만, 읍내에 사는 오빠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었다.
분주한 졸업식의 분위기 속에서 오빠의 집은 작은 안식처 같았다.
학교 통학버스가 있었지만 오빠네가 있는 읍내에서 자고 학교를 다닐 때도 있었다.
함께 잠자고 도시락까지 챙겨주시던 올케가 있어 나는 씩씩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읍내 친구들하고도 친분을 넓혀갔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올케와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가족 중에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으로 친밀감을 유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평택에서였다. 어머니는 오시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오셨다. 졸업식이 끝난 후, 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중국집에 갔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짜장면을 사 주셨고, 특별히 탕수육까지 시켜주셨다. 당시의 짜장면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탕수육은 더더욱 귀한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탕수육 한 조각을 집어먹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어쩌면 그날 먹었던 짜장면과 탕수육이, 내게 졸업식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역시 아버지의 머리는 백발이셨다. 가장 나이 많으신 연장자에 속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아버지가 안 오셔도 되는데 멀리까지 오신 그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끄럽다는 생각만 했다.
참 못났다. 늦둥이로 낳은 딸이 멀리서 졸업한다고
버스편도 좋지 않아 세 번을 갈아타시고 졸업식에 참석하셨는데 그 마음도 몰라줬다.
많이 좋다는 말을 표현하지 못해서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속으로는 아버지가 오셔서 든든하고 엄청 좋았는데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는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학교일에 엄마는 나서지 않으셨다. 늘 아버지가 오셨다.
무표정한 것 같지만 아버지는 정이 많으셨다. 성실하고 부지런하신 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어느덧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졸업식 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 “졸업식 날 뭐 먹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짜장면!”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짜장면의 따뜻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따뜻한 한 그릇이다.
졸업식은 끝이자 시작이다. 아버지는 자식이 그동안 결석 한번 안 하고 성실하게 졸업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과 다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내 졸업을 축하해 주며 짜장면 한 그릇을 사 주셨던 그날, 나는 나를 향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 그리고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와주신 그 추억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가족의 사랑하는 마음도 고맙다. 사랑한다. 잘하고 있다. 생각만 하고 있지 말고
말로 내 감정을 표현해 줘야 상대방도 알 수 있다. 가족이라고 다 이해할 거라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이 과거될 수 있다.
추억의 짜장면을 먹으며 아버지 사랑을 회고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