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어우러진 추억의 한 조각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떠오르는 음식들이 있다. 따끈한 국물 한 그릇, 기름에 갓 튀겨낸 바삭한 튀김, 노릇하게 부쳐낸 부침개.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가마솥뚜껑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배추 전의 추억은 유독 선명하다.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가마솥뚜껑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배추 전을 부치셨다. 배춧잎이 익어가는 소리와 고소한 향이 집안 가득 퍼지면, 저는 부엌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익어가는 배추 전을 기다렸다. 엄마가 채반 위에 배추 전을 한 장씩 옮기며, 아직 뜨거운 전을 찢어 제 손에 건네주시던 순간이 떠오른다.
“맛있냐?”
입안이 뜨거워 혀를 오물거리며, 저는 웃음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런 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미소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다. 때로는 배추 전에 이어 엄마가 손수 만든 두부를 노릇노릇 구워 주시곤 했다. 간식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밭에서 나는 채소들은 귀한 재료가 되어 비 오는 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비 오는 날은 그 맛이 더 특별하다. 차가운 공기와 축축한 습도 탓에 따뜻한 음식이 더 절실해지고, 빗소리에 감수성이 자극되어 감정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비 오는 날 누군가와 나눴던 음식과 대화는 기억 속 깊이 각인된다. 그래서일까, 비가 내리면 자연스레 그 음식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엔도르핀이 분비되며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음식은 그렇게 우리의 감정을 위로하고, 행복을 선물한다.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감자, 당근, 양파를 얇게 채 썰어 기름에 노릇노릇 부쳤다. 남편과 함께 막걸리는 없었지만, 커피 한 잔을 곁들여 소박한 저녁을 즐겼다.
“고소하고 맛있네.”
남편의 이 한마디는 제게 마법과도 같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이렇게도 큰 위로와 보람이 될 줄이야.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이야말로 하루를 감사로 채우는 힘이 된다.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잘 먹어주고 맛있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요리하는 맛이 난다.
하나라도 더 해서 먹이고 싶은 마음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고 정이다.
나누어 먹는 맛 그리고 함께 한다는 밥정이 있다.
어색한 사이여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인정해 주고 대화를 풀어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함께 밥을 먹어야 친해진다는 말을 하곤 한다.
비 오는 날, 배추 전을 부치던 엄마의 모습과 그 따스했던 순간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따끈한 음식 한 입에 스며든 추억과 마음의 위로.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의 메뉴는 배추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