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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재미가 가득한 날

보랏빛 추억과 잔칫날의 맛

by 북힐공방


지난해 남편과 떠난 강원도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2박 3일의 일정 중, 동해시에서 우연히 마주한 라벤더 축제는 그야말로 선물 같았다. 오후 3시경 축제장에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꽃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 채석강이었던 황량한 공간이 보랏빛 향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꽃들 사이를 거니는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추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축제장의 먹거리 장터를 구경하다 보니 배가 출출해졌다. 잔치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 장터는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대신 쫀득쫀득한 감자떡을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삼척으로 이동했다. 감자떡을 입에 넣는 순간,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의 잔칫날이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의 잔칫날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축제였다. 결혼식은 읍내에서 치르고, 잔치는 집에서 열렸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준비는 그 자체로도 큰 이벤트였다. 돼지를 잡고, 집에서 떡을 찌며 동네 아낙들이 모여 전을 부쳤다. 온 동네에 고소한 냄새가 퍼지면

"누구네 잔치 준비 중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엄마는 잔치 준비를 도우러 가셨다가 종이에 싸 온 부침개를 내밀곤 하셨다. 기름 냄새가 배어 있던 따끈한 전을 한입 베어 물면, 그 시절의 배고픔마저도 잊을 만큼 맛있었다. 잔칫날, 가마솥에서 끓여낸 육수로 만든 잔치국수는 그야말로 별미였다. 손님이 오면 과방에서 음식을 담아내 방과 마당에 펼쳐진 상 위로 내보내곤 했다. 친구들과 마당을 뛰어다니다가 엄마 곁으로 가면 한입씩 건네주시던 고기 수육의 부드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잔치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결혼식은 웨딩홀에서 간단히 치르고, 잔치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 변화 속에서 문득문득 어린 시절의 잔칫날이 그리워진다. 그래서일까, 여행 중에는 시골 장터나 축제장을 일부러 들른다.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맛은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마 어른이 되면서 입맛이 변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제나 장터에서 나는 음식 냄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마법과도 같다. 잔칫날 엄마가 내밀어 주시던 부침개, 고소했던 고기 수육, 진한 국물 맛의 잔치국수가 떠오르면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따뜻함이 밀려온다.

라벤더 축제의 보랏빛은 환상이었지만, 내 마음속 가장 찬란한 보랏빛은 어린 시절의 잔칫날에 물들어 있다. 지금의 축제가 즐거운 하루를 선사해 주듯, 어린 시절의 잔칫날은 내게 평생 간직할 추억의 축제였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날의 맛과 풍경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짙은 향기를 풍긴다.


올해도 나는 남편과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마다 열리는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추억이고 함께 먹은 음식이 여행의 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 가고 싶은 곳 정했어."


물어봐주고 잠깐씩 들르는 시골 장터의 모습은 삶의 활력소를 더해 준다.

축제가 아니어도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어 다시 추억으로 살면 된다.

집에서 자주 나누지 않던 이야기도 여행을 하며 말도 많이 하게 된다.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동해시 무릉별유천지 라벤더 축제는 2024년 6월 8~6월 23일 진행했습니다. 올해 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참고하세요.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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