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남은 따뜻한 한식 밥상
나는 평소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한식을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구석구석에는 잊히지 않는 특별한 음식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마흔 후반에 평생 처음으로, 아이를 낳을 때를 제외하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왔다. 그런 내가 얼굴에 구안와사라는 진단을 받고, 일주일간 병원에 머물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입원 기간 동안 쌓였던 불안과 외로움은 어쩌면 병보다 더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퇴원하는 날, 바쁜 남편을 대신해 동네 친구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병원 앞에서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메뉴로는 돈가스를 정했다.
돈가스는 내가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맛본 특별한 음식이었다. 넓은 접시에 소스가 곱게 깔리고, 양배추 샐러드 위에는 케첩이 뿌려져 있었다. 그때 나는 칼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한 조각을 입에 넣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바삭하고 따뜻했던 그 첫 돈가스의 맛은 세상에 처음 발을 들인 아이처럼 내게 신기하고 벅찬 경험이었다.
이번에도 친구와 함께 바삭한 돈가스를 먹으며 옛날 추억을 떠올렸다. 친구와 나누는 소소한 대화 속에서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났고,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던 저녁,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별건 없지만 밥 먹고 가.”
친구는 아픈 나를 위해 경주 시댁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부드러운 나물로 밥상을 차려 주었다. 정성 가득한 그 밥상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만 봐도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는 친구다.
비싼 한정식집의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날의 밥상. 그것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치유의 식사였다. 친구의 배려와 정성은 나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그날의 된장찌개와 나물 반찬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식이 되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 옆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함께 나눈 작은 이야기, 따뜻한 밥 한 끼가 내게 전해 준 위로는 세상의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다.
아프고 난 후 나는 나를 챙기는 사람으로 변했다.
근심 걱정도 웬만한 일은 마음속에서 지우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삶이란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그럴 때마다 내게는 친구가, 그리고 친구가 차려준 정성 어린 밥상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마음 깊이 간직할 따뜻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