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떡에 담긴 기억
겨울방학이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었다. 바로 설날. 설날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 하나, 떡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쌀을 불려 소쿠리에 널어놓으셨다. 아버지는 지게에 쌀을 지고 방앗간으로 향하셨고,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방앗간은 늘 기계 소리가 웅웅거렸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고무 대야를 내려놓고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쌀을 바라보았다. 하얀 쌀가루가 되어 찜기에서 찌어지고, 다시 기계 속으로 들어가 길게 뽑혀 나오는 가래떡. 그것들은 물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뜨거운 가래떡이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보며 침을 삼켰다.
아버지가 막 자른 가래떡 한 조각을 손에 쥐어주셨다. 손끝이 데일 듯 뜨거웠지만,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쫄깃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그렇게 가래떡을 하나씩 입에 넣으며 아버지와 나란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그날 밤, 갓 뽑아온 가래떡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나하나 떼어 소쿠리에 펼쳐놓으셨다. 다음날이면 도마 위에서 어슷하게 썰어져 떡국이 될 것이고, 화롯가에서는 노릇하게 구워져 무 조청에 찍어 먹는 겨울 별미가 될 터였다. 숯불에 구운 가래떡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했다. 그걸 동생과 나란히 앉아 조청에 푹 찍어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품게 되었을 때였다. 남편과 함께 강릉을 여행하다 중앙시장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시장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사람들 틈을 헤치며 머리에 대야를 인 아주머니가 지나갔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대야 속, 눈부시게 하얀 가래떡이 보였다.
“아주머니, 가래떡 얼마예요?”
나는 반가운 마음에 불쑥 물었다. 아주머니는 빙긋 웃으며 대답하셨다.
“애기 엄마, 이거 파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내 불룩한 배를 한 번 바라보시더니 조용히 대야를 내려놓고 가래떡을 손에 쥐여 주셨다.
“맛있게 먹고, 순산해.”
남편이 돈을 내밀었지만,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셨다. 그날 이후, 가래떡을 볼 때마다 남편은 나를 놀렸다. “여보, 가래떡 사줄까?” 하고 웃으며 묻곤 한다.
얼마 전, 해파랑길을 걸은 뒤 다시 중앙시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30년 전, 나는 이곳에서 낯선 아주머니에게 따뜻한 가래떡을 건네받았었다. 시장 골목은 여전히 북적였고, 대야 위에서 피어오르던 김도 여전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 그 온기만이 선명했다.
지금도 나는 가래떡을 좋아한다. 떡국을 끓여 먹고, 구워서 꿀에 찍어 먹는다. 조선 시대부터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이었고, 길고 흰 가래떡은 장수를 뜻하기도 했다. 가래떡처럼 길고 쭉쭉 늘어나는 복을 바라는 마음, 그 속에는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따뜻한 소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가래떡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잊어버렸지만, 그 따뜻한 손길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디선가 복 짓고 잘 살고 계시겠지. 따뜻한 가래떡 한 조각처럼, 그분의 삶도 포근하기를 바래본다.
한 줄 요약
따뜻한 나눔은 오래 기억되고, 작은 온기가 삶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