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함께 떠나는 길
새싹이 돋고 꽃이 피던 5월 4일, 우리 아들이 태어났다. 작은 손, 작은 발, 그리고 작은 숨소리까지 모든 것이 기적 같던 순간이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으면 세상이 조용해지는 듯했다. 출산 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친정에서 한 달을 머물렀다. 남편은 주말마다 찾아와 아기를 품에 안고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기와의 첫 외출은 읍내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하던 날이었다. 하필 우리가 가는 날, 보건소 입구 마당은 시멘트 공사 중이었다. 문이 막혀 있어 창문으로 드나들어야 했다. 아기를 먼저 간호사에게 안겨 올려 보내고 나서야 나도 간신히 따라 들어갈 수 있었다. 낯선 공간, 낯선 상황이었지만, 아들은 울지 않았다. 주사 바늘이 스칠 때도 꿋꿋하게 참더니 마지막에야 "응애" 하고 한 번 울었다. 얼굴이 벌게진 채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품에 안아 달래주자 아들은 이내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남편은 예방접종을 마친 김에 "코바람이라도 쐬고 가자"라고 했다.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이었다. 칠갑산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봄날의 따뜻한 바람이 차 안을 감싸고, 우리는 그 속에서 조용한 설렘을 느꼈다. 산정호수에 도착하자 남편은 돗자리를 깔고 낚싯대를 꺼냈다. "손맛만 보고 가자"며 아이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나는 호숫가에 앉아 아들에게 장난감을 쥐어 주었다. 아들은 작은 손으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 밖을 나서 새로운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친정엄마는 우리가 와야만 외출할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를 모시고 대천 해수욕장으로 떠났다.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바닷가에서 엄마가 좋아하시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며, 엄마는 손자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손자가 있으니 웃지, 웃을 일이 어디 있냐"며 허허 웃으시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로도 우리는 친정집을 찾을 때마다 엄마가 가고 싶은 곳으로 함께했다. 어느 날, 엄마는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바지락조개를 잡아왔다며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그날 우리는 함께 호미를 들고 조개를 캐며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작은 손으로 모래성을 쌓고, 뻘을 만지며 길을 만들며 옷과 얼굴에 흙투성이가 되어 신나게 놀았다.
"너네가 와야 바닷가로 나온다"며 좋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그립다.
첫 여행, 첫걸음, 그리고 처음으로 엄라라고 불러주던 순간. 아이는 부모를 울고 웃게 만든다. 다행히 아들은 잘 먹고, 밝고 씩씩하게 자라 주었다.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불평 없이 성장한 아들이 있기에 지금은 그저 든든하기만 하다.
세월이 흘러, 아들도 어엿한 아빠가 되었다. 이제는 그가 딸을 키우며 내게 묻는다.
"엄마, 나는 어릴 때 어땠어?"
"얌전하게 놀아서 엄마가 일할 때 편했지. 하루 종일 짱구 만화 보면서 장난감 가지고 놀았어."
"그때는 키즈카페도 없었지?"
"응, 없었지. 주말이면 아빠랑 놀이공원 가거나 낚시터에 가서 라면 끓여 먹고, 엄마는 김밥 싸서 차 안에서 먹으며 여행 다녔지. 지나고 보니 그게 참 행복했더라."
손녀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간다. 여행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집을 나서기 전, 김밥을 싸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가족이 함께하는 그 모든 순간이 곧 여행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는 서로의 삶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