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춤추게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실의 풍경도 달라진다. 1년 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 헤어지기도 하고, 운 좋게 같은 반이 되어 우정을 이어가기도 한다. 딸은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칭찬받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딸이 밝은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내 그림 보고 잘 그렸대!"
그 한마디에 아이의 하루가 얼마나 빛나는지 알 것 같았다. 저녁 식탁에서 딸은 친구들 이야기며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풀어놓으며 즐겁게 떠들었다. 칭찬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들뜨게 하는지, 그날 저녁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안산시에서 어린이 기자단 뽑는다는데 해봐도 돼요?"
솔직히 걱정이 먼저 앞섰다. 잘할 수 있을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포기하더라도 경험이 중요하지 뭘 걱정하는 거야. 엄마가 딸을 믿어보기로 결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딸은 충분히 잘할 수 있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격려하자, 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딸은 새로운 도전에 겁내지 않는 아이였다. 반장 선거가 있을 때도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고, 부반장이 되자 햄버거와 노트를 사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도록 해쥤다. 그런 아이를 담임 선생님도 아끼셨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떡볶이를 만들어 주시고, 가까운 공원이나 연극 공연도 함께 보러 다녔다.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은 아이에게 더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기자단 활동을 시작한 딸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며칠 동안 책상을 어지럽혔다. 오리고, 붙이고, 다시 지우고, 완벽할 때까지 반복했다. 때로는 안쓰러웠지만, 나는 다독였다.
"딸, 경험이 중요한 거야. 부담 갖지 말고 즐겨봐."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또 다른 도전을 선언했다.
"엄마, 나 연극해보고 싶어!"
남편과 나는 겉으로는 웃으며 응원했지만, 내심 걱정이 됐다. 공부는 뒷전이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믿어주기로 했다.
두 달 뒤, 연극 공연 날. 꽃다발을 들고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연기를 펼치는 딸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학업과 자신이 기자단과 연극까지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우리 딸이 이렇게 성장했구나.'
작고 왜소한 몸이었지만, 큰 키의 친구들 앞에서도 당당했다. 그날 무대 위에서 빛나는 딸을 보며 깨달았다. 어른들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가 아이를 얼마나 크게 만드는지.
그림을 좋아하던 딸은 중학교에서도 학업과 미술을 병행하며 꾸준히 대회에 나갔다. 밤을 새워가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런데 전학을 가면서 사춘기가 찾아왔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화장품을 사 모으며, 어른 흉내를 내기도 했다. 속으로는 걱정이 됐지만, 나는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
"딸, 친구들이랑 노는 건 좋지만, 나쁜 짓이나 거짓말은 하면 안 돼."
아빠 몰래 긴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한 딸을 보며 아빠한테 비밀로 할 테니 늦게까지 놀지 말고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속은 속이 아닌 숫뎅이가 되도록 타들어갔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속은 타들어갔지만, 꾹 참고 웃으며 보냈다.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러던 딸이 어느 날 말했다.
"엄마, 학원 보내줄 수 있어? 이제 공부 열심히 할래."
우리는 기꺼이 지원했다. 그리고 다시 학업에 전념하는 딸을 보며 깨달았다.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모도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격려의 힘은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한다.
"잘하고 있어."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엄마는 널 믿어."
이 단순한 말들이 아이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할 때, 부모도 함께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사랑과 믿음이 만든 이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