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줄 감사로 하루를 붙잡다.
나는 잘 쓰기 위해 글을 시작한 게 아니다.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꽤 흘렀다.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에 책임을 지며 살아갈 준비를 마쳤다.
북적이던 집은 어느 순간 조용해졌고,
그제야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에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하루에 감사한 일을 세 가지 이상 기록하는 것이었다.
대단한 감사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아침 운동을 나가며 느껴지는 바람의 결,
어제와는 다른 하늘의 구름 모양,
베란다 화분에서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인 붉게 피어난 제라늄 송이를 바라보며,
그 사소한 장면들에도 마음이 머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기록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심적으로 힘든 날에도 감사 일기를 쓰고 나면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좋은 것 하나 없었다고 여겼던 하루가
사실은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분도 조금은 환기되었다.
신기하게도 마음은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일이 늘어났고,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점점 ‘감사의 힘’을 믿게 되었다.
하루에 세 줄, 감사 일기를 쓰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왔을까.
늘 가족이 먼저였다.
나보다는 언제나 누군가의 역할이 앞섰다.
왜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그럴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살아가느라 애써온 시간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던 나는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어느 순간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잊고 지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마음의 편안함과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문득
나에 대해 다시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또렷해진다.
남은 시간을
조금 더 지혜롭게 사용하고 싶어졌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배울 것이 참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김익환 교수님의 『거인의 노트』에서
“기록한다는 것은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해
언제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그 자유로운 공간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생각과
보고, 느끼고, 흔들리는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저장하듯,
일상의 흐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집이 조용해진 만큼
시간의 여백이 생겼고,
그 여백을 배움으로 하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졌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며
이른 시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록하고 싶어졌다.
시간은 늘 부족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은 처음부터 잘 써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잘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실된 순간의 느낌만큼은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나를 바라봐 주고
끝까지 사랑해 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사랑으로 다른 사람도 품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사라지지 않게,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의 기록
오늘은 휴무였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어 감사했다.
쉬는 날인데도
아들로부터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하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 말 한마디에 먼저 따뜻해졌다.
그 마음이 전해져 또 한 번 감사했다.
귀여운 손녀와 손자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서로 눈을 맞추며 나눈 대화 속에서
행복의 순간이 사랑으로 조용히 흘렀다.
그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다.
무탈한 하루였다.
별일 없어서 더 고마운 하루였다.
펜을 내려놓으며
평온한 마음으로 미소 지을 수 있어 감사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사라지는 하루 속에서 나를 다시 불러 세 우기 위해,
나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