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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물찾기 May 11. 2023

가계부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

'나'를 마주하게 된 뜻밖의 여정

나는 지난해 여름쯤 가계부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전에도 시도한 적은 있으나 흐지부지 끝난 적이 많았다. 사실 이번에도 시작은 여느 때와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족행사와 여행이 많던 1월에는 위기도 있었다. 여행으로 며칠 만에 가계부를 잡으니 나는 의욕이 꺾였다. 보나 마나 지출이 많아 엄청난 마이너스가 났을 것이고, 그럼에도 밀려있는 가계부를 복기하며 쓰기가 무척 싫었다. 과감하게 1월 가계부의 마무리를 포기하고 2월부터 다시 정신 차리고 가계부를 썼다.


그렇게 이어온 시간이 10개월이다. 어느덧 나는 매일 꾸준히 가계부를 쓰고 있다. 지출도 크게 줄였다. 지금 나는 내가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노력해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엄청나다. 무엇이든 초보의 자부심이 가장 높지 않은가? 누구를 만나든 가계부 써보라고 권하며, 참 좋다고 추천까지 하고 있는 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계부를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은 바로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경제관념이 별로 없었다. 내가 돈을 어디에 주로 쓰는지, 혹은 얼마나 쓰는지 잘 몰라 일명 '돈이 줄줄 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계부를 써보니 제일 처음 내가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그 규모를 알게 됐다.


"명품 하나 사지 않는 내가 이렇게 많이 쓴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나는 내가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러기 위해 남편의 엑셀 스킬까지 빌려 사용처를 분류해 표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가장 크게 돈이 나가는 영역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지출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가족 친구들과 수도 없이 많은 음주 자리를 갖고 있었다. 밖에서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달에 2번 이상은 집에 누군가 놀러 왔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지출이 발생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양가 부모님에게 효도가 하고 싶어 수시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모두 우리의 경제 수준을 넘어서며 말이다.


그렇게 지내느라 저축은 물론이고 진짜 우리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위한 소비는 정작 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유독 놀랐던 이유는 나의 고민을 가계부에서도 마주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즈음 왜 내 인생을 '나'를 보며 살지 않고 '남'을 보며 살고 있나 고민해 왔는데, 가계부 속에서도 내 모습을 피할 수가 없었다.


리액션이 좋은 나를 사람들은 많이 부르고 찾는다. 난 그런 시간을 모두 즐거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맞추고 지내느라 정작 나는 내 이야기에 목말라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하느라 막상 나를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한 찰나, 가계부가 '거울 속 나'를 보여준 것이다.


'난 사람을 참 좋아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내 마음은 꼭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답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외벌이로 혼자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남편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나의 이런 모습들로 인해 그가 힘들게 노력한 것들이 쉽게 쓰였다는 생각에 말이다.


혼란스럽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는 성장의 기회가 온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를 열심히 들여다보자."


이렇게 생각을 하자 한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당장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명확히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덜 즐거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먼저 내가 많이 맞춰야 하는 자리를 하나씩 정리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술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려고 했다. 부모님께 하는 효도도 내 능력껏 적당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렇게 덜 좋아하는 것들을 걸러내고 나니, 어느덧 내가 좋아하는 것도 차츰 느껴졌다.


나는 요즘 '나'를 찾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즐겁다.


이렇게 호불호를 알고 나니 내 시간과 돈 역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졌다. 신기하게도 가계부에서 과도했던 지출이 눈에 띄게 줄었고, 예전과 달리 우리 가족의 취미나 꿈, 건강을 위한 소비가 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기인 만큼, 계속 하나씩 달라지고 새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을 아끼려고 썼던 가계부가 내가 내 삶을 직접 마주하게 했고 나를 돌보게 했다.


아마도 당분간 나는 가계부를 꽤나 열심히 쓰며 '나'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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