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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마음, 다림질이 필요해

'이 쭈구리 같은 마음도 성장통이기를!'

by 크런치바

대체 왜 이모양인지!


마흔이 넘어서도 자신감이 부족한 날들이 많다. 어른이 되면 좀 완전해지고 나란 사람을 이끌어갈 자신감을 갖추게 될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유독 부족했던 자신감은 그리 쉽게, 저절로 다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다가도 꼭 한 번씩 마음이 쪼그라든다. 최근 내가 그러는 이유는 '이룸'에 대한 갈증 때문인 듯하다. 아이 키우는 것 외에 내가 이룬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그래서 SNS도 해보고, 아이들 학교 간 사이 새로운 일도 시도해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도무지 내 자리 같은 곳이 없나 보다. 참여하는 것이 엄청 즐거운 공간도 없다.


마흔이 넘어도 내 갈 길을 모르고 뭘 좋아하는지 조차 정확히 깨닫지를 못하는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 둘을 초등학교 6학년 4학년까지 키우고, 살림도 열심히 하며 '하우스 키퍼'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나에게 스스로 굉장히 많이 얘기해 주지만, 난 여전히 내가 탐탁지가 않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래서 결국, 요즘 내 마음은 일명 쭈구리가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내 마음의 상태를 들키지 않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었다. 남편 외에는 이런 정신 상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 마음이 삐죽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오늘 오전, 낮에 잠깐 일 하는 곳에서 스터디가 있었다. 함께 케이스를 맡았던 선생님께서 준비 및 발표 대부분을 이끌어주셨다. 2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선생님과의 작업은 배움의 시간이고 충분히 좋았는데, 내가 별 기여를 하지 못한 것이 혼자 내내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다. 할 일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것 같은 죄책감이 느껴졌고, 더 솔직히 얘기하면 그 선생님께서 나를 어떻게 볼까도 염려됐다.


덧붙일 말을 해야 하는 시간에 나는 불쑥 "저는 문제를 쭉 풀긴 했지만,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자료 만드는 것까지 선생님께서 다 해주시고... 저는 한 게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버렸다.


진심이면 아무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다.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해 함께 참여해 놓고 고작 그런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런 쭈구리!'


부정할 수 없었다. 이건 감사함의 표현과 겸손은커녕 지나친 겸손과 주눅이었다.


말을 뱉어놓은 그 순간부터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놈의 부족한 자신감이 누군가에게 드러났을까 온 신경이 곤두섰다. 뭘 그렇게 모르지 않았다. 나도 분명 고민하며 찾아낸 나의 생각이 있었는데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왜 그런 말을 지껄였을까...되뇌었다. 나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 이불킥을 하면서도 알았다. 사람들은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렇게 신경 쓰지도 않을 것임을 말이다. 그런데 나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부실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잘 모른다느니 한 게 없다느니, 사실도 아닌데 자신감 없어 보이는 저런 말을 한 내가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내내 생각하는 내가 한심하기까지 하다.


이놈의 정신 상태!


왜 가끔 이렇게 꾸깃꾸깃 해져서, 사소한 순간에도 멈칫멈칫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하면 이 자신감을 채워나가고, 구겨진 마음 상태를 다시 잘 펼 수 있을까?


신세 한탄이 아니다. 내 마음을 다림질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간절하다.


남편은 그랬다.


"괴로운 거 보니, 달라지려고 그러나 보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어느 곳 하나 아직 내 자리 같지 않은 이 시간이 실패가 아니기를. 나의 '이룸'을 위한 과정이기를. 이 쭈구리 같은 마음도 '성장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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