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되뇌인 진심
'언니한테 갈까, 말까?'
수요일, 목요일은 일주일 중 내가 가장 바쁜 날들이다. 수업들과 스터디가 있고, 짬을 내 중간에 집에 들러 큰 아이 저녁을 챙겨놓고 나가야 한다. 오늘은 여기에 더해 무려 '방학 1일 차'였다. 정신 차리고 하루를 보내자 다짐했지만, 나는 종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날은 깜빡하는 것 투성이인데, 나는 종일 언니 생각이 잊히지 않았다. 갈까 말까, 수도 없이 생각하며 드디어 오후 6시 모든 일정을 마쳤다.
내 육아 동지이자 내가 무척 좋아하는 H 언니. 이제는 제법 멀리 떨어져 살지만, 군대 동기 같은 이 끈끈한 마음은 한없이 선한 언니 덕분에 해가 갈수록 더 깊어졌다. 그런 언니가 지난 6월 갑작스레 암 판정을 받았다.
언니는 용감했다. 두렵지만 두렵지 않은 척 씩씩하게 병원을 다녔고 드디어 내일 수술을 받는다. 오늘 오후 병원에 입원했고 일주일을 머물 계획이다.
수술 후를 안다, 몇 년 전 엄마도 같은 수술을 받았기에. 수술하고 회복될 때까지 언니도 당분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어려울지 모르겠다. 몸에 달린 많은 것들을 떼고 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컨디션도 기분도 회복하던 그때의 엄마가 떠올랐다.
그래서 더 잠깐이라도 언니 얼굴을 보고 싶었다. 사실 내가 가서 도울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음식을 줄 수도 없고, 내가 차은우도 아닌데 내 얼굴 보여주는 것이 대단한 힘이 되지도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가고 싶었다.
왜? 왜 그렇게 가려고 해? 혼자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언니 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말보다 행동으로 전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진료를 따라가 만났던 언니는 얼굴이 반쪽이었다. 늘 선한 언니는 더위에 찾아온 나를 걱정했지만, 난 눈물을 머금은 언니의 눈이 잊히지 않아 걱정이었다.
오늘 일정을 끝내자마자, 당장 병원으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언니를 위한 병문안이어야 했다. 내 마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언니, 나 5분만 얼굴 보고 올까 하는데 괜찮을까?"
병원 공식 홈페이지에 안내된 것과 달리, 병문안은 1층에서 가능했다. 수술을 앞둔 언니가 링거를 꽂고 날 보러 내려와야 한단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안 가, 안 가!! 언니가 웃는다.
"그래, 나 나가면 금방 나아서 우리 놀자!"
하루 종일 언니 생각을 했던 오늘. 결국 나는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언니를 향한 진심이라는 게 미안한 밤, 착한 언니는 이런 마음도 다 알고 있을 것 같다.
"잘 해내고 만나자,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