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려고 합니다.
'이거 좀 괜찮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변수가 생긴다.
평일 오전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니 참 좋았다. 글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최적의 시간대였다. 온전히 나 혼자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글쓰기 전에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말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일까지 모두 마친 밤에는 맥주 한 캔 하며 쉬고 싶다는 욕구를 이겨야 하고, 좀 일찍 일어나 새벽 시간에 글을 쓰려면 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지 않는가. 참고로 난 이겨내야 하는 변명거리들이 유독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 뒤, 내 일정이 시작되기 전 주어지는 오전 1~2시간은 얘기가 달랐다.
식탁에 정신없이 놓인 아침밥의 흔적들은 후다닥 싱크대 속으로 던져놓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들도 각자의 방으로 던져 놓으면 된다. 냄새가 난다 싶은 옷은 세탁기에 넣고 문만 닫음 그만이다. 딱히 그것들을 아침 시간에 해결할 마음이 나는 1도 없다. 아마도 그 덕에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없는 시간대인가 보다.
나는 간단한 아침 거리를 먹고 다시 싱크대 속으로 툭 던져 놓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타 노트북 앞에 앉곤 했다. 컨디션도 스케줄도 최적화된 시간에 온전히 내 생각에 집중해 글을 쓴다는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최근 '더 이상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된다.'라고 마음먹은 덕에, 시간도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오전 1~2시간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 자유 시간에 생각도 비울 겸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는데, 이럴 수가!! 나 왜 그동안 이런 시간에 글을 쓰지 않은 거야? 아무것도 이기고 견딜 필요 없는 시간대에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거였어?? 몰랐으면 어쩔 뻔했을까?
'진짜, 너무 좋잖아!'
하지만 이런 말과 생각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건 인생 진리인데, 내가 깜빡하고 말았다.
오늘은 잠깐 아침에 일이 있어 후딱 해치우고 11시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키보드 어디를 쳐다보고 있으면 쓸 말이 떠오를까 생각하며 혼자 킥킥거리고 있는데, '띡띡띡' 현관문 비밀 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누굴까?
우리 집 큰 아들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친구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렇지, 오늘은 방학식이었다!!
일찍 끝났겠다, 이제 한 달 방학이지, 신난 아이들이 세상 행복하게 웃으며 떠들썩하게 들어왔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 종일 본인들이 무엇을 하고 놀 계획인지 실컷 얘기하더니 먹을 건 없는지 오늘 몇 시까지 놀아도 되는지 등 등 이것저것 나에게 정신없이 물었다.
난 웃고 있었지만 내 눈빛은 아니었을까? 큰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며, 1시부터는 나가서 놀 거라고 인심 좋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래, 정. 말. 고맙다!!'
시끌벅적 놀던 큰 아이와 친구들이 나가고, 바통 터치하듯 작은 아이가 들어와 방학이 얼마나 신나는지 열띤 브리핑을 하고 다시 뛰어 나갔다. 아마도 1시간쯤 뒤에 잠깐 들를 계획이라고 한다.
역시 사람은 자나 깨나 입조심이다. 드디어 나에게 꼭 필요한 최적의 활동을 최적의 시간에 하게 됐다고, 진짜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남편에게 자랑을 했었다. '이거 좀 괜찮은데?!' 혼자 속으로 몇 번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렇게 변수가 생겼다. 그까이꺼 뭐 대단하다고 좀 할만하다고 하니 또 바꿔버리는구나... 참 뻔하고 얄궂은 인생사 시스템이다.
어쩌겠나, 애들이 뛰어나간 이 시간에 부랴부랴 나는 노트북을 켰다. 또 덕분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일단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시계를 보며 바쁘게 써 내려가면서도 문득 그 마음은 또 좋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의 방학 동안 내 최적의 시간은 언제일까? 아마도 내일부터는 나는 오전 그 시간에 점심 메뉴를 준비하며, 중간중간 내 일을 하러 나갈 채비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글은 언제 쓰나? 내 정신력을 이겨낼 필요 없는 그 시간대가 방학 중 과연 있을까? 정신력 약한 나에게 방학은 곳곳에 변명거리가 가득하다. 내가 혹시 글을 못쓰더라도 누군가는 이해해 주면 좋겠다, '의지 약한 이 사람이 방학을 맞이했구나!'라고 말이다.
그래도 한 번 가능한 시간대를 찾아봐야지, 별 수 있나 싶다. 대신 이번에는 좀 마음에 들어도 나 혼자 비밀로 생각해야겠다.
'자나 깨나 입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