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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혼자 있는 게 좋습니다.

나를 키우기로 했습니다.

by 크런치바

방학을 맞아 줄곧 늦잠을 자던 아이들이 오늘 아침은 일찍부터 일어나 분주했다. 학원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한다.


이틀 밤 자고 올 짐을 미리 챙겨놓은 아이들은 아침 8시 반부터 할머니댁에 가겠다고 했다. 출근 시간 지하철이 얼마나 붐비는지 듣고서야 간신히 출발 시간을 9시로 30분이나 늦출 수 있었다.


9시가 되자 아이들은 더는 붙잡지 말라며 신이 나 집을 나섰다. 6학년 4학년 두 녀석은 평소 7~8 정거장 거리의 할머니댁을 지하철로 다닌다. 오늘도 엄마는 절대 따라오지 말라며 둘이서만 가는 그 길을 그렇게도 좋아했다.

잘 다녀오라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인사를 전하며 헤어졌다. 현관문을 닫고 들어서며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다.


"오예, 자유다!"


나에게 2박 3일의 자유가 주어졌다. 화요일인 오늘은 수업도 없어 진정한 자유의 날이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떠나는 아이들도, 아이들이 온다고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엄마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정말 너무 설레잖아!!


커피를 내려서 소파에 앉았다. 예전 같으면 약속을 잡고 밖으로 나갔을 텐데, 이제 나는 이런 날 집에 있는다. 육아를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귀해져서일까? 나이가 들면서 성향이 바뀐 것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뭐든 상관없다.


요즘 나는 사실 혼자인 게 제일 좋다. 특히 이렇게 집에서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최고다.


오늘도 커피를 마시며 요즘 보고 싶었던 김은희 작가의 영화 데뷔작 <그해 여름>을 봤다. 그 시절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내용도 재미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영화나 드라마를 쓸 수 있지 않겠냐며 행복한 상상을 하며 대사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나는 의무적으로 늘어져 있었다. 오늘은 일도 없고 아이들 챙길 것도 없는 진정한 자유의 날이었다. 이런 날은 반드시 늘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다 일어나 '비빔면' 한 그릇을 해 먹고는 기운을 차렸다.


귀찮지만 제일 하고 싶었던 집 대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의외로 집청소를 매우 좋아한다. 방부터 하나씩 치우고 나올 때면 마치 미션을 하나씩 완료하는 느낌이랄까? 물건들을 모두 제자리로 정리하고, 구석구석 온갖 먼지를 털고, 쓸고 닦았다. 중간중간 나온 빨래들을 모아 세탁기도 돌리고, 마지막으로 거실 걸레질까지 모두 마쳤다.


땀범벅이지만, 깨끗해진 집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쉬는 날 내가 집안일을 하며 좋아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44살의 나는 자유의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집 청소를 하고는 뿌듯하고 행복해했다. 인생은 정말 살아봐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아이들 방에 작은 책장이 도착한다. 늘어난 책들과 장난감이 지저분했는데, 싹 깨끗하게 정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대신 내일은 수업이 있어 중간에 나갔다 와야 한다. 부지런히 하고 와서 집에서 아이들 방도 정리하고 책도 읽고 핸드폰도 하고 이것저것 할 계획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줄 사실 몰랐다. 그런데 아마도 엄청 좋은가보다. 이틀 연속 혼자 하고 싶은 것들이 이렇게나 많이 떠오르고,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으니 말이다.


나를 키우기로 마음먹으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좀 알아보자 싶었는데 벌써 하나 알게 됐다.


"사실 혼자 있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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